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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만 Jul 30. 2021

<비북스 방문동기>

-에세이-

 "태어났기에 그저 살아간다는 말, 전 이런 말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유년기에 본 만화 속 등장인물의 대사였지만 그 명대사는 뇌리에 박혀 오늘날까지도 행동영역의 한 원천으로 종종 활용되고 있습니다. 늘 일관성 있게 따르며 사는 것은 아닌데  권태나, 혹은 일련에 사건을 통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  기억의 언저리 끝, 뽀얗게 먼지가 쌓여가던 것을 털어 내고 다시금 대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되묻습니다 "너 지금 괜찮은 거니?" 정비의 시간입니다.


이번엔 권태라기 보단 사건이 계기로  이 글쓰기라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막역한 편집디자이너 친구와 만남에서 근황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최근엔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거라는 겁니다. 예전 같았으면 약간 조소를 띄면서 아니 디자인하는데 바이올린이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까?라고 터부시 하며 말했을 겁니다. 인과관계를 따져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저에게는 다소 불필요한 시간이라 관념이 맴돌았을 테니까.. 선택과 집중이라는 하나의 미덕에 매료되었던 저에게 보이지 않았던 아니 어쩌면 보지 않으려 했던 항목이었습니다.


"나 이번에 바이올린 배우고 있어"


파가니 니니라는 바이올린리스트가 현이 끊어지면서도 현란하게 연주하던 쇼맨쉽 영상을 저에게 보여주며 소위 "쩔지 않냐?"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오.. 그래? 재미있겠다."


그런데 존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대체로 말이 아닌 지난 행적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친구의  발자취가 꽤나 깊게 파여있더군요. 이정표 마냥 제가 보고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바이올린 이전에 취미 피아노반을 다니며 바이엘로 연주하던 영상을 저에게 종종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사실 곤욕이었습니다. 정제되고 감미로운 음악을 멜론으로 늘 듣던 저에게 엇박과 기괴한 음은 친구라는 미명하의 안전창치가 없었다면 결코 들어주지 않았을 겁니다. 여하튼 그런 곤욕에서 점점 불편함이 사라지는 연주가 되더니 완성도가 꽤나 높아졌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연말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가족 지인들과 함께 작은 연주회가 열렸고 저도 초대받아서 방문했습니다. 소규모이지만 격식을 갖추어 정장을 입고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녹화하며 연주를 했습니다. 때문에 생소하지만 그 격식에 걸맞게 작은 꽃다발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일반 클래식 곡을 연주했고 다들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친구는 특이하게도 선정곡이 개인적으로 제 인생 영화로 여기는 인터스텔라의 OST, Firtst-Step이 었습니다.  곡자체 선률에서도 특유의 감성을 담은 경건함이 느껴지는데 더욱이 그 선률 마디마다 영화 속 명장면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기에 더욱 몰입의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완곡을 끝낸 친구는 박수갈채를 받았고 웃기게도 그 조명 아래에 있던  친구에게 "빛나 보였다"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았습니다. 물론 남자끼린 그런 말 직접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배웠기에 기름기를 다 겉어내고  "오~!! 멋진데"로 순화시켰습니다. 시공간이 왜곡되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뒤풀이 때 피아노 지인들의 에피소드를 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분은 뭐하시는 분이고 저분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같이 합주하기도 했다. 등 그러다가 분위기에 취해 너무 본인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한 친구는


"넌 요즘 어떻게 지내?"


"음.. 나 뭐 회사일 하고 개인 포트폴리오 만들고 그러지"


"그렇구나 똑같네"


그리고 술잔에 들뜬 연말 분위기를 담아 입에다 털고는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똑.같.네" 사실 그냥 지나가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세 마디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고 오랜만에 자신과 다시 대면하는 의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불편하지 않음은 편안함이고 편안함을 지향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본능적인 욕구임을 체득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때론 올가미가 되어 새로운 경험을 방해하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건 개인이 성향이 될 수도 있고 혹은 그 익숙해진 세상의 지인들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나름의 큰 그림을 그려 제가 하는 업무에서 외 다른 파트가 관심이 생겨서 공부를 하는 기간을 가졌을 때 주변 지인들은, 아니 "하나만 해서 경력 쌓고 연봉 띄워야지"라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었고" 헬스로 내외면을 단련시킬 때는 "트레이너 할 거냐?"라는 말에 귀안에 딱지가 생겼습니다. 물론 효율의 생각에서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제가 바이올린 배운다는 말을 꺼넨 친구에게 든 속마음과 다를 게 없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산책로를 거닐면서 더욱 부끄러운 심해의 자기 내면의 영역까지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진솔하게 고찰해 보았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의 마음만큼, 아니 그 이상 마치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고 진심으로 오래 걱정해 본 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말일까?


"그렇다"라고 한치 부끄러움 없이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이미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지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로 이성을 훈련시킵니다.  본성을 다스릴 수 있는 고삐의 강도는 편협하지 않은 가치관이라 생각했고 그리고 줄이기 위한 도구 중 하나로 책을 선택했습니다. 그 딜레마의 넘기 위한 나침반의 이름은 "플라톤의 동굴 우화"이고 나름 지금은 잘 작동하고 있어 걸어가는데 크게 지장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혹 걷다가 고장이 날것을 생각해 또 다른 나침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와카스 아메드의 폴리매스을 이미 사두었으니까요.


나침반 사용설명서_ver_210430

-플라톤의 우화-

"우리의 명성과 완벽한 배우자 직책 열광하는 일들에는 그저 ´우리´의 문화에 의하여 투사된 결함 많은 허상일 뿐인 것이다."

"다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어릴 때부터 그것을 ´교육´받았기에 진짜라 믿는 것이다."

"개인적인 그 아무도 동굴에 있기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비 나침반

 1. -데미안-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2. -폴리매스-

 • "기존의 인간의 전문화가 인간에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4차 혁명 때는 그 가치를 오래 유지하기 힘드니 다재다능 다빈치형이 되어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유년기에 읽었을 때는 그 전반적인 스토리 라인만 읽고 크게 느끼는 바가 없었는데 시간이 흘러 많은 경험이 쌓인 후 다시금 읽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되먹임 됩니다. 모진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버젓이 생존해오는 유명 고전의 내구성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나침반 경유지가 이쪽을 향해서요 들려봤습니다. 방문하자 느낀 건데 나침반이 아주 잘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 선배님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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