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용에 관한 유언비어
우리나라는 녹용 수입에 매년 천억 원에 가까운 외화를 소비하고 있다. 한국사슴협회에 따르면 2019년 녹용 수입량은 383톤으로, 세계인구의 1/154밖에 안되는 인구 5천만의 남한에서 전 세계 생산량의 약 70%를 수입한다니 과히 녹용의 블랙홀이라 불릴 만하다. 각종 광고매체에 유명인까지 출연하여 효능을 과대 선전하며 소비를 부추기고 있으니 앞으로 수입량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녹용의 약리작용을 고찰함으로써 효능을 바르게 이해하여 녹용 수입에 따른 외화 유출을 막고 적게나마 건강보조식품의 올바른 섭취를 돕고자 한다.
녹용 성분분석
보약의 사전적 의미는 “몸의 전체적 기능을 조절하고 저항 능력을 키워주며 기력을 보충해 주는 약”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보약 탕제는 가격에 따라 구성성분도 천차만별이겠으나 그중에서도 우리 민족에게 최고의 보약으로 대접받은 것은 녹용이었다. 동의보감에서는 녹용에 대해 “크게 소모된 몸의 기운을 북돋워 재생력과 면역력을 강화하고 기운을 끌어올려 힘이 나게 해 준다”라고 했다.
녹용은 사슴의 종류, 채취시기, 녹용의 부위에 따라 성분이 달라지는데, 많은 연구 결과에서 단백질, 지방, 회분, 섬유질, 각종 무기물( Ca, P, K, Mg, Fe ) 등이 다양하게 함유되어 있다고 하였으며, 성 기능 개선, 면역력 증진, 간 기능 개선, 항노화, 조혈작용, 성장 촉진 등 거의 만병통치에 가까운 효능들이 보고되어 있다.
철(鐵)결핍성 빈혈
녹용이 한국인의 유별난 사랑을 받으면서 보약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철분과 빈혈과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철결핍성 빈혈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적혈구는 혈액 전체 부피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다. 적혈구가 붉은빛을 띄는 것은 철분을 함유하는 단백질 분자인 헤모글로빈 색소(혈색소) 때문이다. 헤모글로빈은 산소와 결합하여 전신 장기에 산소를 운반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만약 철분이 부족하여 헤모글로빈을 만들 수가 없으면 산소배달 능력이 떨어져 조직의 저산소증(hypoxia) 즉, 빈혈을 일으키게 된다. 철분이 부족해서 생긴다고 하여 철결핍성 빈혈이라고 한다.
임상적으로는 적혈구의 크기가 작아지고 혈색소가 감소하여 피부가 창백해지며, 두통, 피로감, 운동기능 저하, 심계항진(두근거림), 흉통 등이 관찰되고 산소 공급부족으로 심장이 과도하게 뛰게 되어 심근 비대를 일으킨다.
기생충 감염과 빈혈
1960년대 한국인의 기생충 감염률이 80%를 넘었다고 한다. 2017년 휴전선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 장병의 수술 과정에서 보도된 회충감염 기사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인분(人糞)을 비료로 사용하여 채소를 키웠기 때문에 기생충 감염률이 매우 높았다. 지금 60대 후반 이후 세대들은 초등학교 시절 구충제인 산토닌을 단체로 복용하고 난 뒤에 복통을 앓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조선시대로 가면 당시 국민들의 기생충 감염률은 상상을 초월하리라고 생각한다.
십이지장충은 소장점막에 붙어 흡혈하기 때문에 철결핍성 빈혈을 일으키고, 어린아이가 회충에 농 감염되면 영양 손실로 인해 발육장애를 일으킨다. 평소 육류섭취가 절대 부족했던 시절에 기생충 감염률까지 높았으니 대다수 국민들은 철분을 비롯한 총체적인 영양결핍 상태에 빠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빈혈로 인해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모든 장기들의 기능이 떨어질 것이며, 이때 가장 두드러지는 증상은 산소를 많이 소모하는 뇌가 민감하게 반응하여 두통과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생리적 경험적 욕구 때문에 먹기 시작했을, 녹용에 많이 함유된 철분은 당시 빈혈증 치료에 극적인 효능을 보였을 것이며, 녹혈(사슴피)과 자라(토종 거북)나 소의 생피를 마시는 관습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체내 철분의 약 2/3가 저장된 적혈구는 약 120일이면 수명을 다하고 분해되는데, 이때 철분은 다시 재활용(recycling)된다. 그러므로 위궤양과 여성의 생리현상에서 일어나는 만성 실혈(失血; 출혈로 인해 혈액이 몸 밖으로 빠져나감)이나 철분 요구량이 급증하는 임산부가 아니라면, 평소 육류섭취를 통해 공급되는 철분의 양만으로도 철 결핍 현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편식하지 않고 정상적인 식생활을 한다면 철분제를 따로 먹을 필요는 없으며, 영양과잉과 비만을 걱정해야 하는 현대인에게 녹용의 효능은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광록병(狂鹿病; 사슴 광우병)의 원인체인 프라이온(Prion)의 정체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녹용을 꼭 먹어야 한다면 국내산을 권하고 싶다.
표지사진: Phillip Pilz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