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인도로 오게 될 줄이야
내 인생에서 인도 음식을 향한 여정은 한국에서 시작하여 영국을 거쳐 현재 인도에 도착해 진행 중이다.
처음 인도 음식을 접하게 된 건 어언 십수 년 전 한국에서의 대학생 시절 교양으로 세계 음식 문화 수업을 들을 때였다. 난 늘 먹는 거에 진심인 사람인지라 교양으로 음식 수업을 들을 정도로 무척이나 열의가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엔 맛있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개인적으론 전공 수업이었던 셰익스피어보다 중요했던 인생수업이었다.
하루는 인도 음식에 관한 수업을 했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교수님은 인도의 ‘커리’ 어떻게 우리가 아는 일본식 ‘카레’로 변해왔는지 역사적 배경을 들어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인도의 많은 요리들이 여전히 탄두르라고 하는 전통 화덕에서 구워진다거나 낙농업이 발달해 유제품이 다양하게 활용되는데 디저트들이 특히 많다 등 나름 알아두면 쓸데 있는 다양한 지식들을 알려주셨다.
음식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마다 사진이 같이 띄워졌는데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는 생소한 비주얼이지만 왠지 느낌적인 느낌으로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에 대한 상상력으로 머릿속이 가득 찰 때쯤 교수님은 꼭 주제에 해당하는 맛집들을 소개해 주셨는데 이 부분이 이 수업을 정말 좋아했던 이유기도 하다. 맛집들이 너무 멀지 않으면 알려 주신 곳들을 대부분 찾아 다녔는데 하나씩 도장깨기 하는 느낌으로 새로운 음식들을 체험하고 오면 짜릿함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이보다 실용적인 학문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날도 어김없이 한곳을 집어주셨는데 그곳은 동대문 근처에 있는 ‘에베레스트’라는 레스토랑이었다. 난 또 호기심이 발동되었고 나만큼이나 향신료 들어간 음식을 잘 먹는 취향 비슷한 베프를 꼬셔 함께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둘 다 길치라 헤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동대문역 3번 출구에서 정말 조금만 걸어가니 에베레스트 레스토랑 간판이 보였다.
계단을 올라가 2층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들숨에 알 수 없는 향신료의 냄새가 코를 훅 치고 들어왔다. ‘응..? 너무 낯선데?’라는 생각만 들뿐 식욕을 자극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게다가 벽 전체를 덮고 있는 특이한 민트색 페인트 때문인지 보통의 식당들과는 다르게 덜 밝은 분위기였고 알록달록한 내부 인테리어 장식들도 그쪽에서 가져온 것 같은 것들로 가득 채워져 어수선해 보였다. 그때만 해도 인도에 대한 컨텐츠나 식문화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낯선 부분들이 많았다. 지금 보면 이해할 수 있지만 20대 초반 여대생에겐 첫인상이 좋은 레스토랑은 아니었다.
우리는 인도 혹은 네팔 쪽에서 오신 것 같은 직원분의 안내를 받고 착석하게 되었다. 이곳 안의 모든 것들이 신기했는지 우리는 미어캣 두 마리처럼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하며 계속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수업 시간에 가졌던 기대와는 달리 강렬하고 낯선 첫인상으로 입맛이 맞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갔지만 친구까지 데려온 마당에 그 말은 차마 뱉을 수가 없었다. 기대는 내려놓고 경험이나 해보고 리포트나 쓰자 생각했다.
한 직원분이 메뉴를 건넸고 수업에서 들은 지식을 바탕으로 사모사와 탄두리 치킨, 양고기 마살라 커리, 팔락 파니르(시금치 치즈 커리), 버터 난, 흰밥, 그리고 라씨 두 개를 주문했다. 궁금했던 메뉴들을 다 시켜버린 바람에 여자 둘이 먹기에는 양이 좀 많나 싶어 나는 “너무 많이 시켰나? 했지만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먹어보겠어.” 하며 금방 수긍하는 친구였다. 하지만 둘 다 말만 그랬을뿐 사실 그때는 뷔페에서 10접시씩 가득 먹어도 소화가 되던 시절이라 막상 많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주문한 메뉴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해 조심스럽게 맛을 보기 시작했는데 친구와 나의 눈에선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우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쳐다보았고 방금 느낀 맛의 충격을 공감했다. 이국적인 향신료 향에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음식들이 적당히 칼칼하고 짭짤하고 부드러운 게 우려했던 것보다 입맛에 너무 잘 맞았다. 그때부터는 “오 이거 뭐야! 미쳤는데?”를 연발하면서 폭풍 먹방을 시전했다. 그리고 그날 모든 그릇들을 싹싹 긁어 배 터지게 먹고 나왔다. 그 이후론 인도 음식 맛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너무나 많이 빠르게 생겨났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인도 음식은 후순위로 밀리게 되었다. 가끔 비슷한 입맛을 지닌 친구들과 술을 마시지 않는 식사 약속을 잡을 때나 찾게 되는 정도였다. 그러다 몇 년 뒤 런던으로 3년간 유학을 가게 되었다. (TMI 지만, 공부라면 질색팔색 학을 떼는 나였는데 당시 하고 있던 패션 쪽 일이 적성에 맞았고 비전공자였던 나는 공부를 하고 싶다며 시집이나 가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늦은 나이에 유학길을 선택했다.)
런던의 겨울 날씨는 우리나라의 겨울처럼 마이너스 한참 아래를 곤두박질치는 그런 추위는 아닌데 으슬으슬 추운 날이 계속되었다. 방에 들어와도 라디에이터 한두 개로 난방을 하다 보니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도 추운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몸 속까지 데워줄 수 있는 따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나 칼칼한 음식들이 당겼는데 그때 많이 먹었던 음식들이 인도 음식들과 쌀국수였다.
영국이 200년 동안 인도를 통치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 그런지 특히 런던에는 인도 사람들과 인도 음식점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테스코나 세인즈버리 같은 대형 마트부터 편의점 같은 곳만 가도 간편식품 코너엔 바로 전자레인지에 덥혀 먹을 있는 형태의 인도 커리들이 늘 구비되어 있었다. 덕분에 종종 애용했는데 종류도 꽤 많아 질리지 않았고 저렴하고 든든하게 한 끼 채울 수 있어 좋았다.
어느 날은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델리 형태로 되어있는 10평도 안 될 것 같은 작은 규모의 인도 음식점을 보게 되었다. 가격도 저렴해 보이고 인도 혹은 중동 쪽 사람들로만 가게가 꽉 차 있길래 동네 사람들의 맛집인가 싶어 호기심에 들어가 보게 되었다.
메뉴를 천천히 보니 비리야니(Biriyan)i라는 메뉴가 제일 많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이곳의 간판 메뉴인 것 같아서 직원분께 “비리야니가 뭐에요?”라고 물어봤다. 주인으로 보이는 나이 많은 아저씨께서 서툰 영어로 “스파이스 라이스! 굿!” 이러시길래 “오케이!” 하며 추천해주신 양고기 비리야니를 테이크아웃 해왔다. 가격은 4파운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양이 김밥 3줄 정도 들어가는 일회용 은박지 직사각형 용기에 밥이 가득 차 있어서 물가 비싼 런던에선 완전 혜자템이었다.
비리야니는 각종 인도 향신료들을 넣고 찐 매콤한 볶음밥 같은 맛이 났는데 인도 음식을 좋아했던 내 입맛엔 잘 맞았다. 게다가 양념된 양고기도 제법 큰 덩어리가 여러 개 있어서 단백질 섭취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따뜻한 음식이었다. 비리야니를 사면 늘 사이드로 누가 봐도 강황이 많이 들어간 것 같은 노오란 ‘달’(Dal)이라는 뜨끈한 렌틸콩 숩을 주먹만한 봉지에 넣어 같이 주셨는데 이 숩은 한 숟갈 떠서 밥 위에 뿌리면 약간은 퍽퍽할 수 있는 밥이 더 부드럽게 넘어가게 해주는 매력이 있었다.
그 가게가 있는 동네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었던 가을부터 눈 내리는 겨울까지 살았는데 말썽쟁이 플랫 메이트 때문에 몇 달 만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나름 단골이었던 그 집의 양고기 비리야니가 종종 생각났다.
다행히 난 졸업을 했고, 3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재취업하고 결혼도 하고 그렇게 몇 년을 정신없이 지냈다.
그러다 2023년, 운명처럼 나와 남편은 인도에 이사를 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