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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Sep 25. 2024

인도에선 식후 커피 대신 짜이 한 잔과 비스킷

인도의 티타임 제대로 즐기는 방법

인도에 오기 전까진 나는 완전 커피 러버였다. 단순히 더 맛있는 커피를 집에서도 매일 먹겠다는 일념으로 대학생 때 취미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핸드드립 심화과정을 들을 정도였다. 엄마는 하라는 취업 준비는 제대로 안하고 쓸데없는 자격증 딴다고 철부지 딸내미를 걱정했지만 매일 아침 내려드리는 향기로운 커피에 어느새 그 말이 쑥 들어갔다. 그 이후론 아침엔 잠시라도 여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위해 점심 이후엔 업무의 효율을 위해 (살기 위해?) 거의 매일 커피 두세 잔씩은 마셨다.


지금도 커피를 좋아하는 건 변함이 없지만 인도에 온 이후론 우리 집의 커피 소비는 확실히 줄었다. 매일 아침 신선한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 커피나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오후에는 대체적으로 차를 마시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수면의 질 때문에도 커피를 의도적으로 줄이려는 것도 있고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선 나의 최애였던 산도 좋은 맛있는 커피를 구하기가 어려워진 이유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도에 와서 짜이의 매력에 빠진 것도 한몫 한다.


인도가 유명한 차 산지인 건 알고 있었지만 ‘짜이’라는 음료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힌디로 차가 짜이(Chai)인데 흔히 짜이라 하면 진하고 달콤한 그리고 향신료 향이 좋은 밀크티를 의미한다. 맛도 좋지만 가격이 정말 착하다. 인도에서도 웬만한 프랜차이즈의 아메리카노 한 잔이 4,5천원 하는 거에 비하면 물론 양이 훨씬 적긴 하지만 (자판기 커피 정도) 한 잔에 3백원 정도, 고급 식당에 가서 먹어도 2천원 이내인 이 음료는 아주 경제적인 옵션의 국민음료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외식을 하면 자연스럽게 커피보단 짜이에 손이 많이 간다.


내가 짜이를 처음 마시게 된 건 인도에 온지 이주 정도 되었을 때였다. 남편과 함께 유명한 로컬 마켓을 갔는데 마켓 초입에 많은 사람들이 서서 100ml 정도 들어갈 법한 작은 종이컵에 담긴 음료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옆에 있는 상점을 보니 ‘이라니 짜이(Irani Chai)’라고 크게 써 놓았는데 호기심이 생겨 남편을 꼬드겼다. “우리도 저거 한 잔씩만 먹어보자!”


길거리 짜이 VS 왕실 짜이


의심 많고 걱정 많은 남편은 내가 이끌지 않는 이상 낯선 먹거리를 절대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래 뭐 너 먹고 싶으면 먹어.”라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반면 난 맛이 있든 없든 탈이 나든 궁금하면 ‘일단 고!’부터 외치는 사람이라 바로 직진 본능을 앞세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주문을 했다.


한화로 7백원 정도 되는 돈을 내고 두 잔을 받았다. 한 잔은 남편에게 주고 남은 한 잔을 바로 한입 들이켰는데 마시자마자 용암 같은 뜨거움에 눈이 번쩍 뜨이고 순간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아씨 X 뜨거워!” 항상 내가 먼저 먹는 걸 확인한 뒤 먹는 남편은 킥킥거리면서 자기는 얄밉게도 후후 불어서 먹었다. 여기서도 J와 P의 성향이 제대로 나오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40도가 넘어가는 한 여름 더위에 그것도 야외에서 음료를 팔팔 끓여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얼마나 뜨거운지 거의 다 마실 때까지 계속 우유 막이 계속 생길 정도였다. 이건 마치 햇볕 내리쬐는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삼계탕 먹는 기분이었달까. 정말 이열치열의 끝판왕처럼 보였다.


인도 사람들은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음료를 정말 뜨겁게 마시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카페에서 줄 서다가도 “익스트림리 핫 플리즈”를 종종 듣게 된다. 나는 늘 뜨거운 음료를 시키면 “얼음 몇 개만 넣어주세요”라고 주문하는데 저 온도는 어떻게 마시겠다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또 집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다가도 미지근해진다 싶으면 전자레인지에 가져가 다시 덥혀 먹는 게 자연스럽다. ‘굳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게 문화구나 싶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냉면이나 차갑게 먹는 음식을 이해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 아닐까?


다시 짜이 얘기로 돌아가서, 당시 혀와 입천장이 데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맛과 향은 강렬했다. 한 입 머금은 입에선 이국적인 향이 가득 피어올랐고 입이 얼얼해질 정도의 달달한 밀크티 맛이 느껴졌다. 짜이의 맛은 가게마다 만드는 방식이 다른지 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곳은 밀크 캐러멜 씹는 것처럼 농축된 우유의 진한 맛이 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생강 향이나 다른 향신료의 향이 도드라지기도 한다. 이런 미묘한 차이들 때문에 다양한 짜이를 맛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번은 인도 여행을 하며 투숙하게 되었던 한 호텔에서 조식을 먹었는데 특이하게 짜이 코너가 있었다. 조리복을 입은 요리사가 직접 짜이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줬는데 생각보다 많은 향신료가 들어가 놀랐었다. 그 요리사는 앞에 한가득 널린 향신료 유리병들에서 홍차 잎보다 훨씬 많은 양의 카다멈, 팔각, 정향, 시나몬, 생강, 넛맥, 후추 등을 주전자에 넣고 우유와 함께 끓였다.


우리는 두 잔을 받아와 자리에서 맛을 봤는데 단맛 하나 없이 목이 칼칼하게 시원해지는 맛이었다. “짜이는 역시 설탕이지!” 하고 테이블에 있던 조금한 설탕 한 팩을 잘라서 넣었는데 미미한 단맛이 났다. 남편은 성에 안찼는지 바로 한 팩을 더 뜯어 넣었다. 바로 “음, 이 맛이야!” 했다. 시중에서 파는 짜이에 얼마나 많은 설탕이 들어가는지 느끼는 순간이었다 인도 사람들이 왜 우리나라 맥심 믹스커피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짜이를 먹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쿠키와 페이스트리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하이데라바드에서 유래됐다는 ‘오스마니아 쿠키’는 짜이 가게에 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간단 스낵이다. 사실 이 쿠키는 처음 먹었을 때 이가 없어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과하게 부드러운 식감과 밍밍한 맛 때문에 그저 그랬었다. 근데 어느 짜이 가게를 가나 이 쿠키를 팔고 있어 한 번씩 먹어보게 되고 선물로도 받고 하다 보니 계속 먹을 일이 생겼다. 입 심심할 때 혹은 후식으로 차와 함께 야금야금 먹다 보니 은은하게 달고 짭조롬한 이 쿠키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었다.


오스마니아 비스킷과 많은 종류의 비스킷들


몇 번 그냥 먹다가 주변에 있던 인도 사람들이 이 쿠키를 짜이에 찍먹 하는걸 보고는 떠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주로 첫 입은 순수하게 버터 향을 즐기며 쿠키의 맛을 보고 두 번째는 짜이에 살짝 콕 찍어서 입에서 녹는 더 달콤한 쿠키의 맛을 보는데 그 맛이 꽤나 중독적이다. 집에서 먹을 때는 짜이가 없어서 주로 녹차나 홍차에 곁들여 먹는데 티 비스킷으로 먹기에 정말 딱이다.


이 쿠키에는 몇 가지 유래가 있긴 한데 가장 유력한 것이 하이데라바드의 왕이 이 쿠키를 너무 좋아해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는 썰이다. (참고로 인도는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기 전 각 주의 왕이 따로 있었다.) 하이데라바드의 7번째이자 마지막 왕이 된 오스만 알리 칸(Osman Ali Khan)은 선진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고 1937년에는 타임 매거진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커버에 오를 만큼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왕이라고 한다. 이 분이 자주 가던 호텔이 있었는데 그곳의 쿠키를 너무 좋아해 매일 저녁 차를 보내 쿠키를 실어 오게 했다는 것이다. 그 호텔은 이 쿠키에 왕의 이름을 붙여 오스마니아 쿠키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인도 내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티 비스킷이 되었다.


요즘 집에서 먹는 음식만큼은 밀가루 음식을 줄이고자 저탄수 빵과 쿠키들을 직접 만들고 있는데 이 오스마니아 쿠키는 대체할 수 있는 레시피가 없다. 안 먹으면 되지 싶지만 남편과의 티타임에 디저트가 없으면 좀 섭섭한 느낌이라 한 박스씩 사놓게 된다. 정신 건강에 좋을 수 있으니 길티 플레저 라는 핑계를 대본다. 작은 행복을 얻는 대신 조금 더 걷고 실내 사이클을 돌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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