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찬란함의 이면, 생성AI의 그림자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의 열기가 계속된다. 챗GPT가 생성AI의 가능성을 증명하며 끓는점을 만들었다면 여기서 파생한 기반 기술이 열기를 계속 이어간다. 잠깐의 센세이션으로 끝날 것 같던 열풍이 장기전으로 번졌고 AI는 IT의 새로운 미래로 자리 잡았다.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IT의 판세를 바꿀 변곡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인데, 앞으로 생성 AI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끓어넘친 기술 경쟁, IT 시장의 변화를 돌아본다.
때는 2023년 6월9일. 내로라하는 스타트업 대표들과 한국의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한자리에 모였다. 작은 스타트업의 대표에서 세상이 주목하는 남자가 된 샘 알트만 오픈AI CEO를 만나는 자리다. 알트만은 이날 여의도에 마련한 대담에서 AI 규제에 대한 필요성과 한국 기업과의 협업 확대를 시사했다.
IT 매체를 비롯해 종합지와 경제지, 방송까지 거의 전 매체가 현장을 대서특필했다. 더 재밌는 건 이날 관계자들의 자세다. 그의 표현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거의 신격화나 마찬가지였다는 말이 돌았다. 이영 장관은 김치를 먹어봤냐는 클리셰 같은 질문에 이어 한국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알트만의 평가에 반색하며 팬심을 드러냈다.
같은날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던, 그리고 몇달 전까지만 해도 이름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았던 알트만의 입에 우리 IT 업계가 들썩거렸다. 과학 정책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알트만을 미리 데려오지 못한 것에 뼈아파 했다는 후문이 돌았다.(과기정통부는 그 다음달 구글과 함께한 AI 행사를 열며 쓰린 마음을 달랬다)
허나 호들갑으로만 끝낼 것이 아닌 것이 오픈AI가 쏘아 올린 공은 스노우볼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새로운 LLM 모델의 범람은 그렇다쳐도 IT 솔루션과 서비스에 생성AI가 기본이 된 건 분명 의미있는 변화였다. IT 시장 규모가 팽창했고 옥석을 가리는 계기가 됐다. 'K-스타트업 meet OpenAI'에
빅테크 외에도 IT 기업이라면 거의 모두 AI 적용에 사활을 걸었다. AI가 없는 제품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여겼고, 수사(修辭) 차원에서라도 AI를 전면에 내세웠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웹브라우저 엣지(Edge)에 생성AI 기능을 붙이고 과거 왓슨(Watson) 헬스로 쓴맛을 봤던 IBM이 다시 AI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구글은 워크스페이스에 AI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데이터베이스의 맹주 오라클, ERP 솔루션의 대명사 SAP도 생성AI라는 단어를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AI 모델에 특화한 GPU를 만드는 엔비디아의 주가는 계속 상향 곡선을 그렸다.
국내 기업들에도 분명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다. 네이버는 LLM ‘하이퍼클로바X’와 이를 기반으로 한 챗봇 '클로바X'를 내놨다. 8월24일 베타로 나왔던 서비스는 도메인에 특화한 답변을 설정할 수 이는 스킬 기능과 더불어 한국어에 강하다는 강점으로 챗GPT에 도전장을 냈다. 지금은 포털 검색에 적용한 '큐:(CUE:)'까지 선보이며 세계 생성AI 기술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했다. 이 밖에도 코난테크놀로지, 솔트룩스, 업스테이지 등 국내 다수의 스타트업이 LLM을 출시하면서 한국에서만도 경쟁 시장이 만들어졌다.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 생성AI가 수면 위에 떠오른 것도 이 시기다.
건전한 기술 경쟁이야 언제든 웰컴이다. 하지만 팽창하는 시장에 늘 뒤따랐던 부작용에서 생성AI도 예외는 아니었다. 챗GPT나 바드 같은 챗봇을 붙인 솔루션들이 모두 AI 네이티브로 둔갑했다. AI 학습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한다고 선전하는 스토리지 기업, 예전 버추얼 휴먼을 약간 스핀오프한 AI 휴먼이나 모니터링 엔진을 AI라고 표현한 보안 위협 분석 솔루션 등 약간의 여지만 있으면 AI 기술 기업을 표방하는 흐름이 업계 전반에 퍼졌다. 아예 주력 사업 분야를 생성AI로 바꾼 기업까지 등장했다.
무엇보다 AI의 오판이나 비윤리적인 활용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나온게 2023년 하반기다. 상반기에는 생성AI의 모습 자체에 놀랐다면 슬슬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해서다. 내부 데이터를 외부로 유출하거나 영글지 않은 답변값을 내놓고 이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문제, AI가 검색한 내용을 범죄에 악용하거나 사람의 노력 없이 AI에 무임승차하려는 도덕적 해이가 열띤 논의를 낳았다. 각국 정부와 규제당국, 그리고 AI 기업들은 헌장이나 개발 원칙을 내세우며 책임감 있는 AI 활용 방안을 고민했고 노력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2023년 11월의 '샘 알트만 드라마' 사태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 사건이 됐다. 열풍의 주역인 오픈AI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회사 이사회가 최고경영자인 샘 알트만의 해임안을 의결했고, 알트만이 마이크로소프트 행을 예고하자 직원들이 그를 따라나서는 드라마가 펼쳐졌다. 결국 이사회는 백기를 들었고 알트만은 본래 자리로 복귀했다.
이 과정에서 신선한 개념이 회자됐다. 알트만과 그에 반기를 든 이사진이 '효과적인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을 놓고 맞붙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기존 이사회 멤버 일부가 공익을 우선시하는 유사 철학 운동인 효과적 이타주의를 신봉하는 가운데 회사 성장과 상업화에 초점을 맞춘 알트만에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거액의 투자를 받고 회사가 승승장구하는 상황에서도 AI의 올바른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또는 충돌)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오픈 AI는 이 시기 'GPTs'와 'GPT 스토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발표했는데 이 또한 변곡이 됐다. 사용자가 쉽게 자신만의 챗봇을 만들 수 있는 GPTs와, 여기서 만든 모델을 사고팔수 있는 GPT 스토어는 LLM과 AI 챗봇의 홍수 속에서도 GPT 기반 서비스로 사용자를 락인시키는 생태계를 만드는 꼴이라 시장의 주목과 경계를 동시에 받았다.
클라우드서비스제공사(CSP) 빅3로 불리는 기업들은 모두 생성AI 솔루션을 바탕으로 전략을 다시 세팅했다. 구글클라우드플랫폼은 바드, 마이크로소프트 애저는 오픈AI의 챗GPT를 붙인 것에 더해 AWS은 '아마존 Q'를 출시하는 등 생성AI가 만든 파도는 끝이 없는 바다처럼 퍼져나갔다.
※이 글의 표지는 이미지 생성AI '달리(DALL·E)3'를 탑재한 빙(Bing)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