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이 어떠냐는 물음에 "너무 좋다"고 말할 이들이 있을까. 십중팔구 먹고 사는 게 쉬운 줄 아냐며 눈을 흘길 게 분명하다. 회사를 다니든 사업을 하든 아르바이트든 사회생활은 너무 어렵다.
이유가 뭘까. 낮은 급여? 많은 업무량? 쉽지 않은 인간관계? 무엇이 됐든 본인의 이상에 못 미치는 현실의 결핍 때문 아닐까.
기자로 일하면서 사건이 터지지 않은 날은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무탈히 지나갔다는 안도감이 퇴근길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기사화해야 할 이슈가 터지면 그날 처리가 원칙이다. News이기 때문에 하루가 지나면 이미 상황 자체는 지난 소식이 되어 버린다.
분석이 붙은 기사도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을 때(최대치로 궁금해할 때) 풀어야 하는 게 일간지의 숙명이다. 물론 날짜가 넘어가도 되지만, 메가톤급 소식이 아닌 이상 보통 2~3일이 이슈의 유통기한이다.
반대로 보면 사건이라는 불가항력에 편히 지냈을 시간이 더 바빠졌다는 뜻이다. 정해진 시간에 기사를 마감해야 하고, 이미 쓰기로 약속했던 기사도 처리해야 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었던 불가항력이 업무 밀도를 급속도로 높인다.
전 직장은 초과근무가 많았지만 수당에는 인색하지 않은 회사였다. 하지만 당직을 서지 않는 이상 수당도 없고 정규업무 시간에는 받을 명분도 없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기는커녕 더 일하고 똑같이 버는 하루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른 직군이라고 다를까. 사무직이든 서비스직이든 갑작스러운 상사의 지시나 고객의 클레임, 몰려드는 주문량처럼 딱 정해서 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급여가 그대로인 게 문제겠다. 일부 전문직을 빼고 중앙부처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 1금융권 같이 세칭 좋은 직장이라 불리는 곳도 마찬가지다.
급여가 조금 높고 업무 강도가 조금 낮을 수는 있겠지만 '고민 총량의 법칙'은 어디에서나 적용된다. 늘 월급은 부족한 것 같고, 내 옆사람은 왜 이리 답답하며 일은 갈수록 많아지는지... 언제 어디서나 걱정에 머리를 감싼다.
10년간 내가 느낀 결핍은 돈보다 사람이었다. "돈은 전혀 상관없다" 따위 낭만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허나 사람이 돈까지 결정하는 게 이치였다. 현명한 상사는 자기 파이를 쪼개서라도 수당을 챙겨줬고 기민한 업무 지시로 팀의 불만을 잠재웠다.
개개인의 능력치를 잘 알고 업무분장하는 능력에 무릎을 쳤던 기억이 있다. 팀 전체 성과가 높아지니 인센티브가 나오고 팀장의 권위가 바로 서고 성과의 달콤함을 놓치지 않으려 더 노력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업무 쏠림에서 조금 더 편해지거나 급여를 많이 받고 싶은 마음- 즉 보상에 대한 결핍이 사람의 힘으로 채워지니 핑계가 지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아쉽다는 마음은 마음 한켠을 간질인다. 대통령이 된다거나 판검사, 의사가 돼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누구나 선망하는 일을 해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100%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아쉬움이 남겠지.
변화의 논리는 여기서 작용한다. 마음을 다잡는 것도 한계가 있다. 현재가 아쉽다면 미래에 베팅할 차례다. 다른 환경(전문직이라면 다른 일터)를 찾아보고 내가 제대로 쓰일 곳이 있는지 기웃거린다.
이때 중요한 게 메타인지다. 그냥 고단해서인지, 내가 과대평가 또는 과소평가 받고 있는지, 지금 내 입지가 다른 곳에서도 그대로일지 면밀히 판단하는 게 중요할 듯싶다.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에 열정적이라는 자기애 담긴 자평이 세상이 보기에는 좌충우돌 정리되지 않는 캐릭터로 읽힐 때가 있을 테다.
회고라는 좋은 방법이 있긴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위험한 방식으로 흐를까봐 무척 경계한다. 그냥 내가 뭐뭐를 했고 이때 뭐가 있었고 정도는 업무 일지에 그치면 안 된다. 보람이 있었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무엇을 더 해야 하고 덜 해야 했는지 냉정하게 비판하는 보수적 시각이 필수다. 애써 자책할 건 전혀 없지만 내 성과에 취해 자기PR 용도로 쓰면 안 될 일이다.
내가 진짜로 채워야 할 결핍이 무엇인지. 타인이 지적하는 나의 단점은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한다. 특히 타인의 평가는 굉장히 중요한데 개인적인 감정이 섞인 지적이라도 쓸모가 있다. 완전무결하면 그 감정도 끼어들 여지가 없을 것 아니겠나. 나를 미워할지 모르는 그 사람이 굳이 찾아낸 내 단점은 가장 새겨들어야 할 조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