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하면 떠오르는 기업 레드햇(Redhat). IT에 생소한 사람들은 낯선 이름이지만 적어도 리눅스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이 있을 테다. 오픈소스 코드로 만든 운영체제인 리눅스는 오랫동안 웹서버 운영을 담당해왔다. 바로 이 리눅스를 자신들의 기술로 다듬어 파는 기업이 레드햇이다.
레드햇은 레드햇 엔터프라이즈 리눅스(RHEL·Red Hat Enterprise Linux)라는 제품이 간판이다. 오픈소스는 말 그대로 소스코드를 오픈해 세계 개발자들이 뚝딱거려가며 단점을 보완하는 체계를 말한다. 하지만 순수한 오픈소스만으로는 재빠른 유지보수와 패치가 어렵기 때문에 레드햇 같은 회사가 붙어 엔터프라이즈용 솔루션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리눅스가 레드햇 엔터프라이즈 리눅스고 시장에서는 통칭 '렐'이라 부른다.
오픈소스의 유연함은 유지하면서도 실력 좋은 개발자들이 단점을 보완한 렐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유료 유지보수가 이들의 매출 원천이다. 2018년에는 350억달러에 가까운 거금에 IBM에 인수될 만큼 IT 업계에서만큼은 상징적인 지위를 가진 기업이다.
하지만 레드햇은 지금 유저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지난달을 마지막으로 센트(Cent) OS 지원을 종료했다. 센트OS는 렐의 소스코드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공짜로 렐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리눅스다. 하지만 6월30일 7버전을 끝으로 지원이 종료되면서 사용자들의 반발을 샀다.
사용자들이 반발한 이유는 명확하다. 센트OS의 소스코드를 쓰면 렐의 거의 모든 기능을 활용할 수 있었다. 유지보수를 지원하는 렐 수준의 안정성을 원하는 고급 유저가 아닌 이상 공짜로 렐을 쓰는 효과가 있다.
사태를 이해하려면 '물길'을 우선 알아야 한다. 현재까지 렐을 둘러싼 생태계는 '페도라(Fedora)→렐→센트OS'의 순서였다. 커뮤니티인 페도라에서 1차로 리눅스 개발을 완료하면 이를 바탕으로 한 렐을 공개한 뒤 그 하류에 있는 센트OS에 소스코드를 제공하는 형태였다.
그런데 이 물길이 바뀌면서 사태가 일어났다. 가장 마지막 순서였던 센트OS를 렐 앞에 위치시키면서 센트OS 스트림(Stream)으로 이름 붙였다. 이제는 페도라→센트OS 스트림→렐로 순서가 바뀌면서 렐의 다운스트림이었던 위치했던 센트 OS가 업스트림, 즉 상류에 위치하면서 더 이상 렐의 복제품이 아니게 됐다.
원래대로라면 정제되고 검증된 렐의 소스코드를 쓸 수 있는 게 센트OS였다면, 이제는 센트OS가 렐에 앞선 베타 버전 역할을 하는 셈이다. 완벽한 패치가 돼 있지 않아 정식 렐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젠 동일 운영체제로 보기 힘들어졌다. 고급 유저뿐 아니라 라이트 유저도 결국 렐을 써야 할 처지다.
틈을 노린 대체 리눅스 진영도 흥미롭다. 수세(SUSE)가 대표적이다. 수세는 센트OS 7버전용 호환 제품을 내놨다. 이름은 '리버티 리눅스 라이트'다. Liberty(자유)라는 명칭에서부터 레드햇을 겨냥한 느낌이 배어난다.
리버티 리눅스 라이트는 센트OS에 업데이트와 패치를 적용해 렐과 같은 효과를 주는 솔루션이다. 마이그레이션 없이도 기존의 센트OS처럼 쓸 수 있다. 레드햇에 실망한 수요를 이끌어오는 전략이다.
수세를 비롯해 오라클과 록키리눅스가 꾸린 '오픈 엔터프라이즈 리눅스 어소시에이션(OpenELA)'은 이번 레드햇의 정책 변경이 '열려있는' 오픈소스 정신을 저버렸다고 비토하고 있다. 환승을 노리는 이들이 레드햇을 '수세'로 몰아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