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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unset Feb 15. 2022

아플 때 드는 생각

2022. 2. 15.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교 다니던 꼬맹이 시절, 머리에 살짝 열이 난다거나 배가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은 기분이 조금 들떴다. 선생님이 걱정해주시고 양호실에 가서 누워있는 것도 왠지 좋았고, 엄마가 데리러 와서 친구들은 아직 학교에 있는데 나는 집에 가는 것이 좋았다. 머리에 차가운 수건을 얹어둔 채 누워있는 그 느낌은 왠지 포근하고 재밌었고 엄마손은 약손이라고 배를 문질러 주는 그 느낌도 좋았다. 뭐가 먹고 싶냐고 엄마가 물어봐주거나, 좋아하는 간식을 가져와서 먹여줄 때면 관심받고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수능이 다가올 때쯤이었나, 감기에 걸려 며칠 열이 나고 아팠던 적이 있었다. 빨리 낫고 싶어서 오렌지주스를 최대한 많이 마시고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무조건 잤다. 책상에 앉아있을 힘도 없어서 침대 옆에 단어장과 오답노트를 놔두고 눈이 떠질 때마다 읽었다. 그것이라도 하고 싶었다. 한 삼일 여만에 몸은 회복됐고, 다시 밤을 지새우며 공부를 했다. 내가 아플 동안 평소처럼 공부했을 수많은 경쟁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잠시도 쉬기가 어려웠다. 그 당시의 노력과 의지만큼은 정말 수능 만점을 맞아도 부족할 정도였는데…… 결과 이야기는 쓰지 않기로 한다.


 자주 아프지는 않은데, 이삼 년에 한두 번 꼴로 크게 아플 때가 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첫 아이를 낳고 아팠을 때인데,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던 터라 혼자 널브러져 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 몸 위에 무거운 벽돌이라도 쌓아놓은 것처럼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서 자꾸만 드러눕게 됐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기는 때에 맞춰 쉬했다고 울고, 배고프다고 울고, 응가했다고 울고, 심심하다고 보챘다. 출근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무슨 정신으로 아기를 돌봤는지 모르겠다.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고 할 일은 다 하고 아기를 재우고 나서 나도 기절한 것처럼 잠들었다. 남편이 돌아와 나의 상태를 보고 놀라서 아기를 데리고 있을 테니 얼른 병원에 다녀오라고 했다. 하늘이 뱅뱅도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병원에 갔고,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아픈데 죽진 않는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온 몸이 아파왔다. 수액을 맞고 약을 받아서 집에 돌아오는데 신기하게도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천근만근이던 몸이 백오십 근 정도로 조금씩 무거움이 덜하게 느껴졌다. 밤에는 몸이 거의 나아서 아기를 품에 안고 모유를 먹이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아기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면서 모유를 먹는 아기 머리를 쓰다듬는 데 내가 아파서 아기를 굶기면 얼마나 속상할까 싶었다. 몸이 나아졌다는 것이 너무 고맙고 다행이었다.


 어제부터 몸이 좀 안 좋았다. 두들겨 맞은 것처럼 근육통이 있고 기력이 없어서 축축 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큰 아이가 엄마를 도와준다며 그릇을 치워주고 빨래 정리를 함께 했다. 작은 아이는 엄마가 아픈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얼마나 심심한 지에 대해서 평소와 같이 계속 호소했다. 다행히 큰 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서 둘이 붙어서 꽤 오랜 시간 놀아줘서 나는 약기운에 늘어진 채로 저녁 시간을 보냈다. 같이 운동하고 게임하고 놀아주는 것은 둘째 치고, 끼니와 간식을 챙기고 씻기고 입히고 하는 일들을 하는 데도 힘이 부치는 것 같았다. 고함량 비타민을 먹고 몸에 좋다는 것은 다 꺼내 입에 넣었다. 아이들에게 웃어주고 싶은데 기운이 안 나서 무엇이든 먹어서 기운을 내야겠다 싶었다. 다행히 오늘은 좀 나아진 것 같아서 아침을 챙겨주고 엄마가 조금 나아졌고 이따 병원에 다녀오면 더 나아질 테니 걱정 말고 학교와 유치원에 잘 다녀오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주었다. 오늘은 같이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아이들이 말해서 그러자고 했다.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약을 사 왔다. 다행히 자전거 탈 만큼의 기력은 회복된 것 같다.


 엄마가 된 후, 몸이 아프면 최대한 빨리 나으려고 기를 쓰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내 걱정에 침울해지지 않게, 아이들과 같이 신나게 웃을 수 있도록. 아플 때 드는 생각이 어린 시절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강해지는 일도 포함인가보다. 며칠 갈 것 같던 몸살이 이렇게 빨리 나은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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