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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unset Feb 19. 2022

미디어의, 미디어에 의한, 미디어를 위한

2022. 2. 19.



 어떤 책에서 미디어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문장을  적이 있다. 미디어 중독에 대해 언급하며, 미디어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한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손에서 쥐었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   명으로, 괜히 뜨끔했다.


 미디어가 정보를 전송하는 모든 매체를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미디어에 의한 생각과 행동을 세상에 태어나 언어를 구사한 이래로 계속해왔던 것 같다. 방송이나 책 속에서 묘사되는 인물 중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정하는 인물의 행동과 생각의 방식을 따라 하기 위해 노력하고, 뉴스를 보고 경각심을 일깨우거나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을 짐작했다. 수많은 광고의 자극에 반응해 지갑을 열고, 전문가가 말하는 방식대로 육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노력했다. 나의 일상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SNS에 올리고, 그것이 요즘의 SNS에서 활동하는 방식에 나름 걸맞은 것이라 생각하며, SNS 계정에 나만의 기록을 쌓아가는 것이 트렌디한 생활방식이라는 것 또한 미디어를 통해 알았다.


 내 인생의 전부가 꼭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만난 타인과의 대화에서, 가족 문화에서, 내 안에 있는 어떤 유전적이거나 환경적인 조건에서 고착된 기질에 의해,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깨닫고 배웠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 안에 또 미디어의 영향이 군데군데 녹아있다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 혹은 동시대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결국 미디어의 선택을 따라가며 미디어에 의해 행동하고 미디어를 위해 일상을 채워나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중요한 것은 같은 것을 보고 판단하여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어차피 결정은 인간의 몫이라 대량으로 투입되는 미디어의 폭격에 의해 선택을 해가는 인간의 삶이 주체적이지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예를 들어 나는 한 SNS에서 화장품을 사라고 광고하는 솔깃한 피드를 볼 때, 저번에 비슷한 것을 샀던 것을 떠올리며 흘려보낸다. 연예인에 관한 서사를 서두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상품을 광고하는 피드를 반복해서 볼 때면, 마치 사 줄 생각이 전혀 없는 물건을 반복해서 사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를 보는 느낌이다. ‘영원히 살 리 없는 물건이다, 아가야.’하고 친절하게 글이라도 써 주고 싶다.


 각종 매체의 정보들은 꽤 흥미롭고 재밌다. 심지어 이제는 쌍방향이 된 것과 마찬가지라, 나만 일방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도 별로 없다. 다만, 이것이 내 나이 사십이 되어가는 즈음에 생기는 나름의 절제력과 판단력으로 보채는 아이 울음소리와 같은 정보의 홍수에 조금은 덤덤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예전에는 혹! 했을 이야기들, 돈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사 봤을 물건들, 잠 설쳐가며 무서워했을 세상 다반사 소식들이 어느 정도는 다소 인위적이거나 과장됐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나와 미디어 사이에 끼워 넣으려고 노력한다.


 나라는 사람 안에 더 많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자꾸 되뇌려고 한다. 이곳에 쏟아놓은 글보다 앞으로 쓸 수 있는 글이 내 안에 더 가득 담겨있어서 이 핸드폰 속 어플 하나에 담긴 나라는 사람의 감성과 필력보다는 폰 밖에서 숨 쉬고 있는 나에게 더 진하고 그윽하고 무궁무진한 어떤 것들이 계속 채워지고 있으면 좋겠다.


 미디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가지 않고, 미디어의 판단에 나의 사고를 맞춰가지 는 방식으로 나는 미디어와 함께하는 생활을 즐기면서   있다고 믿는다.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것보다는 덜하겠지만, 사람들도 미디어의 지배력을 견제하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 (아마도 언젠가 뒤집어서 다시 써야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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