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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unset Mar 04. 2022

괜찮아서 울었다

2022. 3. 4.


 그때는 그게 무슨 감정인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종종, 다른 사람들은 괜찮아 보이는데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거나 차마 울지 못해 눌러서 참으면 목구멍이 따끔거리고 얼굴이 뜨거워지는 때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어떤 감정 때문이었는지 알게 될 때가 있다.


 호주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였다. 멜버른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모나쉬대학교의 어학원 수업을 들었다. 매일 즐거운 것 같으면서도 타지에서의 생활은 무언가 불편하고 그리움인지 뭔지 해결되지 않는 미묘한 갈증이 불쑥불쑥 외로움이나 불안감으로 튀어나오곤 했다. 고작 대학교 2학년이었지만 졸업이 곧 다가온다는 생각과 스펙을 충분히 쌓지 못했는데 해외에 나와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자책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너무 잘하고 싶은데 유창해지지 않는 영어실력도 불만스러웠다. 그 와중에 청춘의 한가운데 놓인 주변인들의 복잡스러운 감정의 갈등 또한 어렵기만 했다. 신기하게도, 그런 감정들은 꼭 혼자 있을 때만 파도처럼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잠들 수 없게 밀려왔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학교에 가면 또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주말에 호주까지 왔는데 집에서 지낼 수는 없다는 한 친구의 강력한 추진력 덕분에 친구들과 ‘그레이트 오션 로드’라는 곳에 갔다. 처음 보는 특대형 버스를 타고 코코넛으로 만든 파이를 먹으며 잠들었다가 깨는 것을 반복하면서 꽤 오랜 시간을 이동했다. 바닷바람이 거칠었는데 차갑지 않아서 상쾌했다. 잠에서 막 깬 나는 비몽사몽 한 얼굴로 관광객들이 이동하는 경로대로 무작정 따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12 사도를 보았다. 가파르게 깎아놓은 절벽에서 한 조각씩 떼어놓은 것 같은 거대한 돌기둥들이 해안선을 따라 쭉 서 있었다. 사진을 찍을 테니 좀 서 보라는 친구들의 말에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부여잡고 포즈를 취한 다음 멍하니 그 거대한 돌덩이들을 바라봤다. 사람이 그 옆에 선다면 아주 작은 조약돌 정도의 크기로 느껴질 만큼 커다랗고 웅장했다. 그저 자연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파란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돌에 부딪히는 장면을 보는데 목구멍이 따갑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영겁의 시간을 지나 바람과 물과 햇볕이 닿아 만든 위대한 자연의 작품 앞에서 나는 말없이 혼자 서서 몸에 수분이 다 빠져나가도록 울었다.


 사진을 찍으러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멀어진 친구들을 등지고 나는 실컷 울었다. 두꺼운 후드티 소매에 눈물도 닦고 콧물도 닦으면서, 후드를 푹 눌러쓴 내게 관심 하나 없는 신이 난 관광객들 사이에 서서 속이 시원해지도록 울었다. 어차피 바닷바람을 맞아 만신창이가 된 얼굴에서 눈물을 쓱쓱 닦아내고 선글라스를 야무지게 낀 채로 친구들을 만나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다음 이동지까지 창문에 머리를 부딪혀가며 단잠을 잤다.


 그리고 남은 기간 동안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즐겼다. 매일 똑같이 지나던 길이 아닌 곳을 일부러 가고, 혼자 전철을 타고 낯선 여행지에도 갔다. 오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쇼핑몰에서 책을 사고 식료품을 사다가 요리를 하고, 동네를 기웃거리면서 이웃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를 알렸다. 아무것도 싫은 날에는 당당하게 쉬었다. 방바닥에 몸을 붙인  아홉   호스트의 딸아이와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맑은 하늘이 보이는 빨랫줄에 앉았다가 날아가는 외래종 새들을 구경했다. 그동안 괜스레 불안했던, 조바심 나던   없는 감정들이 어디론가 연기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조금 지나, 12 사도를 바라보며 눈물을 쏟던 나를 떠올리면 뭔가 웃기고 이상했다. 거기서 눈물이 왜 나와? 하고 자신에게 물어볼 만큼,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크고 대단해서, 자연이 만든 위대한 유적에 감동해서 그랬나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더 지나, 불안하고 조급해하는 마음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후에서야 비로소 나는 그날의 나를, 후련하도록 쏟아지던 눈물에 섞인 감정을 알게 됐다.


 넓고 크고 대단한, 수많은 시간을 지나 만들어진 그 자연을 보기 위해 몇 시간을 달려갔었던가, 그 거대함 앞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 중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에는 다하지 못할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나는 나의 걱정과 고민이 얼마나 작고 나약하고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달았던 것이다. 하염없이 부족해 보이던 이십 대의 나에게 자연이 알려주었다. 시간을 붙잡을 수 없고 밀려오는 파도를 막을 수 없기에 바람과 햇빛의 품 안에서 맞서고 버티면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임을.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다른 모습을 맞이하게 됨을.


 그 엄청난 것을 깨닫게 해 준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신이 만든 것 같은 거대한 돌기둥 앞에 서 있는데 불안해하고 조급해할 것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나는 괜찮아졌다. 그래서 눈물을 쏟았다. 남아있는 힘든 감정을 다 흘려보내고, 너무 시원해졌다. 그랬구나, 나는 다 괜찮아서 울었구나, 꽤 시간이 흘러서야 알 수 있었다.


 꾹꾹 눌러 담아도 자꾸만 삐져나오는 어려운 감정들이 마구 생겨날 때, 그날의 나를 떠올린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라고 자신에게 말해준다.

 이 커다란 지구에, 그 위대한 자연 안에서 작고 작은 인간의 삶이란 결국 다 괜찮다고. 마음껏 웃어도 좋고 시원하게 울어도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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