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dsunset Apr 21. 2022

소소한 여름날의 기억

기억해야 하는 이유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내 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 ‘이만큼이나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이 들만큼 믿어지지 않는 순간.


 어렸을 때는 그런 순간들이 아마도 큰 상을 타거나 엄청난 행운을 거머쥐게 된 순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알게 됐다. 결코, 아주 거창하고 무척 놀랄만한 찰나의 행복이 꼭 그런 순간으로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물론, 내게만 적용되는 기억의 방식일 수도 있다. 나는 사람들이 흔하게 흘려보내는 장면에 의미를 과하게 담기도 하고, 소소하고 담담한 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고 직감하기도 하니까.


 대학생 때였던 것 같다. 날이 뜨겁던 여름날, 가까운 곳에 계곡이 있으니 시간이 되는 외가 가족들끼리 모여 나들이를 가자는 연락을 받았다. 급하게 빌린 펜션 앞 계곡에서 나는 친척 동생이 가지고 온 튜브에 몸을 눕힌 채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차가운 계곡물 위를 동동 떠다녔다. 수건도 가리지 못한 여름날의 뜨거운 해가 이글이글 타는 것처럼 보였고, 물에 닿은 엉덩이와 허리께는 냉동실에 들어간 것처럼 시원했다.

 냇가에는 어린 친척동생들과 이모부들이 물장난을 하며 놀고 있고, 물가에 놓인 평상에서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가장 나중에 태어난 막내 이모의 잠든 아기를 눕혀놓고 부채질을 해 주고 있었다.

 행복이 계곡의 물처럼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졸음이 밀려와 잠깐 눈을 감았다. 말소리가 들려와 눈을 떴을 때 막내 이모가 내 튜브에 묶인 끈을 잡고 물 밖으로 나를 끌고 가는 중이었다. 어떻게 거기서 잠이 드냐며, 여기 계곡이 물살이 센 곳이었다면 쓸려 내려갈 뻔했는데 태평하게 잠을 자고 있더라며 가족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튜브 밖으로 두 다리를 꺼내놓은 채 잠든 바람에 내 다리는 불덩이가 됐고, 이모부가 차가운 물을 끼얹어주어 겨우 큰 화상은 면했다. 이모가 아이스박스에서 꺼내 준 캔맥주를 건네길래 잠이 덜 깬 눈으로 목을 축이기 시작했다. 그 시원하고 달콤 쌉싸름한 맛에 신이 나서 몸을 흔들어대는 나를 외할머니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평상에 앉아있던 외할머니 곁으로 가서 맥주를 마시며 앉아있는 나에게로 그 뜨거운 여름날과는 어울리지 않는 봄바람 같은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것을 느꼈다. 붉게 익어버린 내 다리를 향해 외할머니가 살랑살랑 부채질을 하고 계셨다.


 “언제 이렇게 다 커서 우리 강아지가 맥주를 마시네. 고것이 그리 맛있냐?”


 외할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맛있지! 할머니도 드셔 봤으면서.” 캔맥주를 따서  캔에 부딪히던 이모가 같이 웃었다. “애도 우리  앤데 술이 맛있지, 맛이 없겠어, 엄마도 !” 이모의 말에 모두가 함께 웃었다. 점점 뜨겁게 불타오르는   다리에 얼음주머니를 올려놓고 뜨거운 태양이 하루의 빛을  태워내면서 멀어지는 동안 외할머니는 물놀이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향해 계속 부채질을 하셨다. 하나도 지치지 않은  같은 정성스러운 손짓으로 땀을 닦아주시며,  행복에 겨운 시간이 눈가의 주름 가닥가닥에 담겨 세상 무엇하나 부러울 것이 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나는 신기하게도 알았던  같다.  순간을 기억해야 함을,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임을.


 노쇠한 할머니가 위독한 상황을 여러 번 넘기고 집에 돌아오셨을 때, 오랜만에 뵌 할머니의 손을 만지며 나는 어떤 말도 못 하고 계속 울었다. 여전한 미소로, 별 말씀 없이 내 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에 나는 자꾸만 그 여름날의 계곡이 떠올랐다. 불과 한 십여 년 전일뿐인데, 그때의 할머니와는 다르게 몸이 축 늘어져 작고 힘이 없어진 모습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려왔다.

 내 뜨거운 다리를 식혀주던 할머니의 부채질이 그리워서, 꼴깍꼴깍 맥주를 마시는 손녀를 재밌다는 듯 바라보며 놀리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그리워서, 이렇게나 세세하게 정정했던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 고마워서, 그렇게 그날의 기억이 떠오를수록 자꾸만 눈물이 났다.

 같이 식사를 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한 자리에 누워계시는 할머니의 곁에서 나는 이런저런 추억을 다 끄집어내어 수다를 떨었다. “그렇지? 할머니, 우리 그때 재밌었지?” 하면 할머니는 눈가 주름을 축 늘어트린 채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소소한 행복의 기억이 이토록 소중해지는 순간에는,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는 현실적인 직감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의 뇌 일부에 대한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결국 굴복하면서, 지난 시간에 미리 받아놓은 행복에 감사해하면서, 그렇게 기억을 꺼내어 위안을 삼고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므로, 기억해야 한다. 소소한 행복의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눈빛을,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그 재밌는 인생을. 어떤 슬픔이 다가와도 서로 위로받고 위로하기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시간을 지켜보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