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OTT, 넷플릭스, 편성, 문화지정학, 현지분리창작, 로그라인
1. 서론: 문화지정학과 OTT 콘텐츠의 현지분리창작
전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글로벌 OTT의 콘텐츠 편성은 기존의 TV 편성과는 다른 시각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콘텐츠 편성은 서비스되는 지역의 목표 수용자에게 적합한 콘텐츠를 적절한 시기에 공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TV 편성은 국경을 경계로 한 국가 내 동일 문화권의 수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지적 문화기획이었던데 반해, 글로벌 OTT에서 그것은 특정 국가에서 콘텐츠를 생산, 소비되면서도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글로컬의 문화기획이다.
따라서 글로벌 OTT 편성은 전세계 각기 다른 지역에서 표출되는 시청의 욕망을 정교하게 포착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분산 배치하는 역량이 핵심이 된다. OTT 산업의 리더인 넷플릭스는 일찍부터 이 점을 간파해 왔다. 콘텐츠 수급을 위해 넷플릭스가 취해 온 수직적 통합 체계와 전지구적 유통의 지리학은 일찍부터 지배적인 OTT 담론 중 하나였다(Dominique, 2018; Holt & Sanson, 2019; Lobato, 2019; Lotz, 2021). 라몬 로바토(R. Lobato)는 글로벌 OTT의 콘텐츠 유통이 단순한 시장침투 논리가 아니라, 글로벌과 로컬이 맺는 문화적 연쇄망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 속에는 오리지널 제작과 지역별 라이선싱, 콘텐츠 허브의 지정, 데이터 분석 기반의 제작 기획 등이 포섭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는 주로 ‘유통’의 관점에 집중하여, OTT 콘텐츠 편성의 관점에서 '창작'과 ‘수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이는 글로벌 OTT 연구가 전세계 주요 국가들로부터 어떤 논리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수급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글로벌 OTT가 특정 국가로부터 어떤 종류의 서사를 생산하는지는 곧 OTT 창작법(creative logic)에 대한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중요하다. 글로벌 OTT가 주요국에 적용하는 콘텐츠 창작법을 파악하는 것은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분업체계를 이해하고, 각국의 콘텐츠 생산의 방향과 정책 수립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지정학(cultural geopolitics)은 이러한 질문에 좋은 길잡이가 된다. 문화지정학은 세계체계론의 연장선 상에서 근대 이후 세계 정치경제 질서 속에서 문화와 기호, 이미지가 어떻게 ‘공간적 권력구조'(spatial power structures)를 재현하거나 재조정하는지를 탐구한다(Cosgrove, 2001; Sharp, 2009). 이를 OTT 산업에 적용하면, 글로벌 플랫폼이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특정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 장르적 특성, 미적 코드가 ‘지정학적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지정학적 배치는 지난 두 세기 동안 정치적 동력이 견인해 온 지정문화(geoculture)에서 지구문화(global culture)로 변주하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주요국의 OTT 창작법을 문화지정학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은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분업체계를 읽어내는 일이다. 이는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과 유사하다. 주지하듯이, 대만이나 한국, 일본 등지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는 미국의 애플이나 엔비디아, 아마존 같은 기업에 공급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OTT 콘텐츠는 미국에 소재하는 글로벌 OTT 본사의 기획 구조 속으로 흘러간다. 이때 국가별로 기술적으로 상대적 우위에 있는 반도체가 공급되듯이, OTT 역시 특정 지역이 가진 ‘문화적 우위’(cultural advantage)에 있는 장르나 스타일, 주제의 콘텐츠가 공급될 개연성이 크다. OTT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문화지정학이 작동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 연구는 OTT 콘텐츠 창작법과 문화지정학을 연결하는 이론적 가설로서 ‘현지분리창작’(local opt-out creation)을 제안한다. 현지분리창작은 글로벌 OTT가 콘텐츠 창작 과정에서 특정 지역이 지닌 문화의 상대적 우위를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차별적으로 콘텐츠를 기획·생산하도록 ‘선별적 유도’ 또는 ‘특화된 창작 기회’를 부여하는(opt-out) 전략을 의미한다. 이때 상대적 우위는 장르, 주제나 소재, 형식, 스타일, 정서 등 다양한 서사적 차원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일본은 애니메이션, 남미는 텔레노벨라, 인도는 춤과 안무 스타일 등이 상대적 우위에 있는 콘텐츠 형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리지널 콘텐츠에서는 사회문제극이 상대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공급망 체계는 개별 국가 내 산업과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지에서 익숙한 장르나 스타일, 주제 등이 자국 내 콘텐츠 산업 체계를 ‘우회하여’(opt-out) 글로벌 콘텐츠 공급망에 편입됨으로써 독자적인 로컬문화와 산업이 글로벌 보편문화와 산업체계로 재편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처럼, OTT 콘텐츠의 현지분리창작은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함의를 내포하는 개념이다. 이에 이 연구는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글로벌 OTT의 콘텐츠 창작법을 문화지정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주요국의 콘텐츠가 구체적으로 어떤 서사로 분리 창작되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OTT 시리즈물이 주요 생산국별로 어떤 서사적 차이를 보이는지 분석한다. 분석자료는 넷플릭스 코리아 서비스 공간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메타 데이터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물이 제공하는 설명문(description)을 자연어 처리한 후, 챗GPT가 로그라인(log-line) 형식에 맞춰 국가별 서사 내용을 재구성한다. 독자는 이 연구에서 글로벌 OTT의 전지구적 서사가 어떻게 편성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