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 주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흑백요리사2>가 입소문을 타고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백사부' 때문인지 넷플릭스는 조용하고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흑백요리사2>는 전편의 <흑백요리사>에 비해 벼랑끝 전술은 더욱 강력해진데 반해, 백종원과 안성재 판관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그리고 경연 참가자들의 캐릭터성이 이목을 끈다.
최연장자 ‘후덕죽’은 마치 요리의 성인인 듯 보인다. 흔들리지 않는 표정과 간명한 대사에서 신라호텔 조리총괄 상무에 올랐던 이력의 무게감을 느낀다. 20년 넘게 청와대에 근무한 ‘천상현’은 그런 후덕죽의 제자다. 맞상대로 만난 사부와 제자의 정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찡하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의 ‘임성근’은 마치 요리 천상계를 터치한 듯 행동한다. 무엇을 하든 거침이 없고 결과로 증명한다. 그와 짝을 이뤄 가장 먼저 Top7에 오른 ‘술 빚는 윤주모’는 자생 요리가로서 진정성이 매력이자 경쟁력이다. 이 두 사람이 빚어낸 박포갈비와 쌈은 우리 조상들의 고기파티 ‘설후야연’을 떠올리게 한다(그리고 10여년전 우리의 설후야연이 떠오른다).
‘최강록’은 비정형의 형식으로 끊임없이 생존을 이어가는 ‘흑요’의 피닉스다. 전편에 이어 특유의 캡 모자를 고집하는 모습은 마치 일본 만화 주인공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은연자중하면서 계속 생존하는 그가 예사롭지 않다.
‘손종원’은 요리 왕자 같다. 그의 외모는 빛났고 그의 요리 실력은 그보다 더 빛이 났다. 위기를 대처하는 그의 태도에서 차원이 다른 사람임을 느낀다. 그는 늘 앞줄에 있다.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요리괴물’은 외모로나 이름으로 이번 시즌의 빌런이다. 어떤 미션도 해치우리라는 모습은 <흑백요리사> 출연자 ‘나폴리 맛피아’와 '요리하는 돌아이'를 섞어놓은 듯 하다.
사찰 음식의 상상력을 펼쳐내는 ‘선재스님’과 음식 열공에 빠져있는 듯한 ‘김희은’ 두 사람이 만든 김밥의 차이는 현실 불교와 기독교 간의 거리를 은유한다. 불가에 귀의한 선재스님이 음식에 한 일가를 이룬게 흥미롭다. 김희은은 좀 더 과감하게 행동해도 되었을 요리 엘리트다. 젊은 나이에 ‘아기맹수’를 제자로 둔 스승이기도 하다.
그 외에 미디어 요리계의 다작자 ‘정호용’과 ‘샘킴’, 고기 부심으로 똘똘 뭉친 ‘바베큐연구소장’과 ‘부채도사’, 지역성의 요리 장르 개척자 ‘김성운’, 맑다 못해 투명해 보이는 국물의 '뉴욕에 간 돼지곰탕', 확실히 삐닥한 '삐닥한 천재' 등도 있다. 모두 ‘맛’의 캐릭터들이다.
대본없는 다큐멘터리성 예능에서 이토록 쫄깃한 서사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은 회차를 거듭하며 요리사들의 캐릭터성이 쌓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은 3면의 바다가 유난히 강조되고, 그것을 ‘요리’하는 참가자들의 역량이 더욱 캐릭터화했다. 참가자 개인으로나 사회적으로 K-푸드를 염두에 둔 콘텐츠로 보인다.
거기에 운도 많이 따르는 것 같다. 흑과 백 요리사 집단간 대결에서 마지막 판관인 ‘이모카세’의 판정이 나올 때까지 엎치락 뒤치락하는 것은 그 어떤 작가도 쉬이 뽑아낼 수 없는 장면이다.
<흑백요리사>는 거대한 세트장 안에서 진검승부를 벌이는 <오징어게임>의 예능판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지난해 <흑백요리사>가 게임을 알레고리화한 서사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포맷, 규모, 섭외, 만듦새 등등에서 넷플릭스는 예능마저 참 잘 만든다. 한류의 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예능에서조차 '보편성의 서사'를 축적해가는 그들의 기획력과 노하우를 먼저 배워야 한다. <흑백요리사2>는 지금 전세계 쇼 부문 시청 1위다.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눈이 오면 설후야연에서 '설화맥적'이나 해야겠다.
2025. 12. 31
JS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