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비건조 Oct 14. 2021

<17화> 잘 지은 영화 한 그릇에 음악 한 방울

김미연 PD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할 때 무반주 댄스라는 코믹한 상황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말 그대로 음악 없이 출연자가 신나게 춤을 추는 건데, 하는 이나 보는 이나 민망함이 주된 정서다. 바보 같아 보이는 황당함에 웃는 거다. 어쨌거나 그것도 음악을 활용한 코미디라고 할 수 있겠다. 있어야 할 음악을 쓰지 않는 데서 오는 코미디.


   음악은 어디서나 상황을 더 비극적 혹은 희극적으로 살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을 이쪽 용어로 “감정 로션이라고 한다. 감정 로션은 영화에서 감동과 웃음 그리고 긴박감과 공포심을 주는 데 특히 큰 역할을 한다. 덕분에 영화를 영화음악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OST가 너무 유명해서 영화는 몰라도 그 음악은 아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방구석1열>에서도 해당 영화의 OST는 꼭 짚고 넘어가는 편이다. 조영욱, 방준석, 달파란, 장영규 감독님 등 한국영화계에도 기라성 같은 음악감독님들이 계신다. 달파란 감독님은 어렵게 한 번 방구석 정모에 모신 적이 있다. 다른 감독님들도 꼭꼭 거머리같이 들러붙어서라도 한 번씩 방문하시도록 만들고야 말리라……!


   큼. 아무튼 <방구석1열>에서 음악영화를 자주 다루는 나의 자신감은 믿고 듣는 ‘인간 USB’ 배순탁 작가님 때문에 나온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꼬꼬마 시절부터 열심히 청취해 온 나에게 배순탁 작가님은 선망의 대상이다. 요즘도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면 ‘<음캠>이 아니면 내가 어디서 이런 음악들을 듣겠나’ 싶을 정도로 딥한 팝송을 선물로 받을 때가 많다. 이런 레퍼토리를 엮어주는 배순탁 작가님은 엄청난 음악 데이터와 관련 지식을 가진 한국에 몇 안 되는 분이다. (요즘은 밤 12시 <배순탁의 B-side>의 DJ로 활동하며 (‘B의 성수’를 뿌리는 등 이상 행동도 하시지만)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명곡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편, 나에게 “영화=영화음악이다”라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영화는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이다. 아니, 영화음악은 존 윌리엄스의 <죠스>이다. <죠스>의 타이틀곡은 첫 등장 이후 예능 프로그램의 BGM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쓰였다. 나 같은 경우는 뭔가 엄청난 아우라를 가진 출연자가 비밀리에 등장하거나, 엄청난 사건이 터지기 전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사용해 재미를 톡톡히 보기도 했다. 


   수영장에서 “빠―밤. 빠―밤~.” 하고 장난치면 <죠스>를 보지 않은 아이들조차 “꺄악!” 소리 지르며 울음을 터뜨리는데, OST에 흐르는 이런 중심 멜로디를 모티프라고 한다. 작곡가 존 윌리엄스가 감독 스필버그에게 이 모티프를 들려줬을 때 스필버그는 “에이~ 형! 장난치지 마요”라고 했단다(솔직히 형이라고 불렀는지는 나도 모름). 나 같아도!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아니 공포의 화신 죠스 님이 등장하시는데 달랑 음표 두 개로 모시겠다니?! 하지만 감독이 가장 힘줬을 부분에 달랑 두 개의 음표를 내민 존 윌리엄스에게는 엄청난 확신이 있었을 테다. 결국 그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인 스필버그의 실험정신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나의 첫 극장 영화 <E.T.>는 나를 영화라는 매체에 푹 빠지게 한, 나에게는 실로 아주 기념비적인 영화인데 역시 OST가 한몫했다. 이티가 자전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터져 나왔던(아슬아슬한 그 순간의 느낌이 머릿속에 각인돼서 그런지 정말 음악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E.T.>의 “Flying theme”이 관객들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게 한 일등공신임에 틀림없다. 이티와 엘리엇이 탄 자전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 자체가 영화음악 때문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게다가 어떻게 보면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엔딩(나에게는 엘리엇과 이티의 이별은 너무 가슴 아팠다)을 존 윌리엄스는 음악을 통해 해피엔딩으로 바꿔줬다. 거장 존 윌리엄스가 작업한 <E.T.>의 OST는 1983년 제5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음악상을 수상하며 “역시 존 윌리엄스! Two thumbs up!”을 외치게 만들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런 띵언을 남겼다. “내 영화는 사람들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지만, 그것을 흘러내리게 하는 것은 윌리엄스의 음악이다.” 역시…… 사람은 말을 잘하고 봐야 해…….


   위에 언급한 영화가 둘 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윌리엄스의 작품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내심 고마워했을 거다. 내가 만든 영화를, 그리고 내가 만든 음악을 탁월한 재주로 이렇게 멋지게 조명해주는 파트너가 있다니……. 작업할 때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주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어떤 것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니까.


   <죠스>와 <E.T.>만 봐도 알겠지만 스필버그는 누구보다 영화와 음악을 ‘극적’으로 묶어내는 재주가 탁월하다. 바야흐로 1993년, <쥬라기 공원>에서 처음 스크린을 통해 공룡을 마주하던 순간을 기억하는 분이 있으시는지? 그 순간 나는 조용한 극장에서 엄청난 데시벨로 “우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렸을 적 책에서만 보던 공룡이 실제 눈앞에서(물론 스크린 안이지만) 살아 움직이는 걸 봤으니 오바할 수밖에. 그때 흘러나왔던 OST “Welcome to Jurassic Park” 역시 존 윌리엄스의 작품이다. 솔직히 그때는 눈앞에 펼쳐진 공룡들의 웅장한 등장에 홀려 정신이 없었다. 그날 느낀 벅찬 감정에 존 윌리암스의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특히 <쥬라기 공원> 음악 감동의 백미는 쥬라기 공원에서 브라키오 사우르스를 만나는 순간이다. 잠시 어렸을 적을 되돌아보자. 공룡 대백과사전에서 처음 보았던 브라키오 사우르스는 비록 2D였을지언정 어쩐지 감동스런 모양새이지 않았나. 초식성이고 둥글둥글 가장 순해 보이는 이 녀석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존 윌리엄스와 스필버그는 몇 시간씩 본격 토론을 벌였을 거다. 몇 시간이 뭐야, 밤을 새가며 브라키오 사우르스를 처음 본 그 순간에 대한 추억을 앞다퉈 얘기했겠지? “거 참, 나도 얘기 좀 합시다.” 으악……. 상상만 해도 너무 설렌다. 타임슬립 능력만 있다면 그 대화 현장의 커튼 뒤에라도 숨어서 엿듣고 싶을 정도로. 인류가 머릿속으로만 상상해오던 태곳적 생물을 눈앞에서 보게 되는 그 순간, 어떤 음악으로 어떤 감정을 전달할지 머리에 피나도록 고민했겠지. 


   국내에서도 많은 오케스트라들이 방학 기간에 꼭 존 윌리엄스나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를 한다. 올해만 해도 엔니오 모리꼬네, 존 윌리엄스, 그리고 한스 짐머 등 다양한 영화음악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다. 나도 얼마 전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콘서트에 다녀왔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꼭꼭 낀 팬들이 공연장을 메웠다. 존 윌리엄스 없는 존 윌리엄스 콘서트인데도 객석이 꽉 찼고 연주 내내 공연장에 탄식과 감동이 가득했다. 


   그날 무대에 오른 WE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모든 파트가 훌륭했지만 특히 금관과 타악기가 아주 탄탄했는데, 존 윌리엄스의 음악이 금관과 타악기가 효과적으로 활용된 음악임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동적인 연주였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맨>부터 <인디아나 존스>, <스타워즈>와 <E.T.> 그리고 <해리포터>까지…… 나와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저들의 유년기를 떠올리고 있음이 확실했다. 공연장 안이 행복의 기운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한스 짐머의 음악도 좋지만 나는 역시 내 유년기 정서를 만들어준 존 윌리엄스의 음악이 더 좋다.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며 추억을 떠올려 그때의 행복했던 마음을 기억하고 다시 행복해하는 게 아닐까?


   만약 나처럼 영화음악을 영화만큼 좋아하는 분이 있다면 2016년에 개봉했던 <스코어: 영화음악의 모든 것>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그 시절 우리를 가슴 뛰게 했던 명작들과 OST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 하워드 쇼어, 브라이언 타일러 등이 전하는 작업의 기술과 영업비밀(ㅋ)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두 가지다. 


   1. 역시 영화의 모든 것은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탄생한다.

   2. 거장들은 거장스럽게 생겼다……. 하…….




   <계속>



    김미연 PD

    JTBC <방구석1열>

    JTBC <전체관람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