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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마주한 지렁이

양심의 소리에 뜨끔하다.

by 돌콩마음


5km 빠른 걸음 걷기


올바른 자세를 취하기 위해 안으로 살짝 말려 있는 어깨를 쫘악 펴고 몸을 곧추 세운다.

컴퓨터를 보느라, 휴대폰을 보느라 늘 아래로 향하던 시선을 정면 저 멀리 어딘가에 둔다.

이제 워치의 운동시작 버튼을 누르고 출발!


바람은 상쾌하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두 귀에 청량감을 가득 채워준다.

가로등 불빛에 자신의 속내를 다 보여준 노란 나뭇잎들을 바라보니 그 아름다움에 작은 미소가 번진다.

시선을 의식적으로 멀리 두고 걷긴 하지만 땅바닥의 사물들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떨어진 나뭇가지와 잎들이 채 마르지 않은 빗물과 하나 되어 반짝이는 모습이 희끗희끗 두 눈에 들어온다. 순간 나뭇가지라 생각했던 하나의 직선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지렁이다.

피부호흡을 하는 지렁이는 비가 오면 땅 속에 물이 차 숨쉬기가 힘들어져 땅 위로 올라오는데, 다시 땅속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들이 햇볕에 말라죽거나 사람의 발이나 자전거, 자동차 바퀴에 깔려 죽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눈앞에 보이는 저 녀석도 자신이 뚫고 나온 흙밭을 찾지 못하고 우레탄 바닥 한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 듯하다.

지렁이의 모습을 한 번 본 이상 나의 시선은 더 이상 '정면 저 멀리'를 유지할 수 없다. 컴퓨터를 보듯, 휴대폰을 보듯 또다시 고개는 구부러지고 시선은 땅바닥을 향한다. 빠른 걸음 걷기를 하고 있으니 속도를 줄일 수는 없고 길을 잃은 지렁이들을 피해 요리조리 날렵한 자세와 발걸음을 내디뎌야만 한다. 마치 장애물 경기라도 하듯 폴짝 뛰어넘기도 하고 보폭을 크게 하여 성큼 내딛기도 한다.

이제 나의 신경은 온통 지렁이에게로 향해 있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밟게 될까 봐, 밟았을 때의 그 느낌이 온몸에 전해질까 봐, 나의 신발에 일말의 흔적이라도 남게 될까 봐 나는 최선을 다해 그렇게 지렁이를 피하고 있었다.


산책길을 벗어나 집으로 향하는데 문득 조금 전 만났던 지렁이가 생각났다.

오늘 나의 발걸음이 지렁이의 생사와는 무관하게,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양심의 두드림에 뜨끔한 마음이다.


-비가 그친 어느 날의 기록.




#지렁이 #산책길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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