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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Mar 06. 2024

두 번째 신혼여행?

사진: Unsplash의 Mak



우리 부부는 제대로 된 여름휴가를 써 본 기억이 없다.

남편이 대기업에 다닐 때는 워낙 바빠 남들이 다가는 여름에는 휴가를 쓰지 못했었고(요즘엔 상상도 못 할 일이겠지만), 이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엔 미국에 있는 언니네 가족들이 나오는 시기에 맞추느라 우리의 휴가는 매년 10월 그리고 단체여행일 수밖에 없었다. 


회사를 정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 부부는 TV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채널버튼을 이리저리 누르다 특별히 우리 마음을 끄는 것이 없어 아무거나 틀어놓자 한 것이 여행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코로나의 세력이 힘을 잃어가면서 그동안 사라졌던 여행 프로그램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떨 땐 다른 방송사인데 같은 장소가 나오기도 한다. 조금은 식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 남편이 "우리 둘이서만 여행을 게 언제였지?"라고 묻는다.

음~~ 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지만 그 시간이 길어진다.

둘이 떠올리는 기억의 속도가 비슷했는지 거의 동시에 "신혼여행!"하고 외친다.

우리는 그 상황이 너무도 웃겨 박장대소했지만 이내 현실로 돌아와 이게 말이 되냐고 어이없어한다.

가족여행 혹은 단체여행은 해마다 갔지만 둘만의 여행은 당일치기가 전부였다.

아, 진정 신혼여행이 마지막이었단 말인가?




시간도 많은데 우리 여행 가자, 단둘이!


그렇게 우리는 즉흥적으로 여행 일정을 잡았고 장소는 우리 둘만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제주도로 정해졌다.

뭐 특별한 이유라고 말하기엔 하나도 특별하지 않았지만, '단둘이 여행'의 마지막 장소에서 다시금 '단둘이 여행'의 출발을 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여행의 시작은 비행기에 오르면서부터가 아니라 여행을 마음먹은 날부터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매일 아침마다 어제와 조금은 달라져 있는 일기예보를 찾아보면서 나는 설렘과 행복을 미리 맛본다.

2박 3일의 짧은 제주도 여행이라 하루 전날 짐을 챙겨도 충분할 터였지만, 나는 3일 전부터 거실 한편에 여행가방을 펼쳐 놓았다.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어 옷이며 필요한 것들을 펼쳐진 가방 안에 던져놓는다. 나의 설렘이 드러나지 않게 무심히 툭.


마침내 우리는 제주도에 도착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함덕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영롱한 청옥빛을 품은 함덕의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나의 환호는 어느새 모습을 감추고 그 빈자리를 숙연함이 대신한다. 벅찬 마음에 살짝 눈물이 맺힌다.

이것이 자연의 위대함 앞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이다.

여전히 이 맑음을 지켜내고 있는 함덕의 바다에 감사하고, 이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할 두 눈을 주심에 더없이 감사하다.


때마침 용머리 구름이 기차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그야말로 장관이며, 절경이다.

우리 부부의 두 번째 신혼여행은 감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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