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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딩거 Feb 13. 2023

농놀이 덕심을 자극하는 방법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리뷰

대부분의 스포츠 영화는 주인공이 어떻게 그 종목을 시작하게 되고, 어떤 훈련과정을 거쳤고, 중간에 위기가 있었지만 으쌰으쌰 극복해서 결국은 우승하는 서사다. 이는 뻔한 클리셰인 동시에 클래식이 주는 감동이 있어 보는 내내 주인공과 물아일체의 경지에 올라 주인공의 행복은 곧 내 행복이 된다. 제발 망하지 않기를 간절하게 빌면서 말이다.


그런데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 공식을 모두 파괴했다. 2시간 내내 한 경기만 보여준다. 전국대회라고만 말할 뿐 이게 예선전인지, 16강인지, 8강인지, 결승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가장 압도적인 상대인 산왕공고와의 대결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송태섭의 이야기로 비하인드 스토리를 슬쩍슬쩍 알려준다. 이 모든 걸 보면서 내가 송태섭이 되는 게 아니라 송태섭의 불알친구마냥 그가 우승하기만을 목 터져라 외치는 응원단장이 된 기분이었다.


어쩌면 불친절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강백호와 영감님의 서사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서태웅이 농구 천재라는 것도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다. 굳이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마치 톰 홀랜드가 스파이더맨을 처음 맡은 후 단독 영화가 나왔을 때, 이미 오래전 등장했던 캐릭터니깐 어떻게 거미에 물리게 됐는지는 자연스럽게 패쓰하고 그 이후의 사건사고를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단 하나, 덕심에만 모든 걸 쏟아붓는다. 덕후의 애간장을 녹이는 데 전력을 다 했다. 경기하면서 강백호가 어떻게 동료들을 응원하는지, 20점 이상의 압도적인 차이에도 굴하지 않고 달려 나가는지, 그 사이에서 송태섭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그려준다.


그리고 이게 먹혔다. 슬램덩크 덕후들에게는 내가 이걸 위해 20년을 기다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부심이 차오르고, 머글들에게는 '아니 세상에 이런 명작이 있었는데 그동안 몰랐다니, 원작 정주행간다.' 라는 다짐의 씨앗을 흩뿌린다. 이보다 똑똑한 영화가 있을까.


넷플릭스 '지금 뜨는 콘텐츠'에 당당하게 자리한 슬램덩크. 원래는 대한민국 top10에 있었는데, 뒤늦은 리뷰로 인해 순위권에 오른 걸 캡쳐하지 못한 통탄스러움..


농구 관련 산업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온라인 상에서 농놀이 유행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여기서 '농놀'이 농구하는 게 아니라 슬램덩크 덕질을 칭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 포인트.


딩거의 한 줄 리뷰 : 덕후가 세상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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