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더 글로리>와 <모범택시> 리뷰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보자
주인공 문동은의 복수는 증오로 시작된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증오. 30년간 이 악물고 철저히 준비한 복수는 의외로 동은의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진행된다. 동은은 판을 짜는 철저한 설계자이자 관찰자이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은 알아서 서로를 물고 뜯는다. 가해자들의 우정 아닌 우정은 얼마나 의미 없는가. 돈으로 맺어진 관계만큼 얄팍한 게 없다.
이 사람이, 나의 구원이구나
반대로, 사랑만큼 깊은 게 없다. 동은과 그의 남자친구 주여정은 복수를 위해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 든다. 여정은 여자친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칼춤 추는 망나니를 자처한다. 시신에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몰래 추가해 가해자를 확실하게 징벌한다. 그러니깐 이 모든 복수는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것이다.
사랑은 학교폭력 가해자 박연진의 남편인 하도영과 배다른 자식인 하예솔의 관계에서도, 그리고 가정폭력 피해자 강현남과 그의 딸의 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연진의 상간남이자 오랜 친구인 전재준의 핏줄이란 걸 알았을 때조차 도영은 예솔이 걱정만 한다. 현남은 같은 피해자임에도 딸을 구출시키고자 백방으로 노력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었고, 납득할 수 있었다.
세상엔 많은 피해자, 그리고 많은 가해자들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피해자는 본인의 탓으로 돌리고 숨는다. 오죽하면 이런 밈까지 생겼겠는가.
그렇기에 더욱 피해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줄 드라마가 필요했다. 그리고 등장한 <모범택시>
죽지말고 복수하세요. 대신 해결해 드립니다.
두 드라마는 분명 결이 다른 복수를 한다. 그럼에도 결국 똑같은 위로를 건낸다.
<더 글로리>는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내 손을 잡아', <모범택시>는 '혼자 힘들어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앞으로도 피해자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전해줄 수 있는, 대중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 있는, 가해자들에게는 평생 속죄할 죄책감을 갖게 할 수 있는 드라마가 생기기를 바란다.
딩거의 한 줄 리뷰 : 복수는 피해자를 위로하는 또 하나의 장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