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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딩거 Apr 18. 2023

복수에도 결이 있다

드라마 <더 글로리>와 <모범택시> 리뷰

화가 많은 시대 속에서, 이를 제대로 풀고 해소할 창구가 없다. 그래서 우리들의 화를 대신해서 속 시원하게 질러주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더 글로리>와 <모범택시> 이 둘은 복수의 형태는 같으면서 다르다.


더 글로리


복수의 시작(파트1)과 끝(파트2)를 보여준 포스터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보자


주인공 문동은의 복수는 증오로 시작된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증오. 30년간 이 악물고 철저히 준비한 복수는 의외로 동은의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진행된다. 동은은 판을 짜는 철저한 설계자이자 관찰자이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은 알아서 서로를 물고 뜯는다. 가해자들의 우정 아닌 우정은 얼마나 의미 없는가. 돈으로 맺어진 관계만큼 얄팍한 게 없다.


이 사람이, 나의 구원이구나


반대로, 사랑만큼 깊은 게 없다. 동은과 그의 남자친구 주여정은 복수를 위해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 든다. 여정은 여자친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칼춤 추는 망나니를 자처한다. 시신에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몰래 추가해 가해자를 확실하게 징벌한다. 그러니깐 이 모든 복수는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것이다.


사랑은 학교폭력 가해자 박연진의 남편인 하도영과 배다른 자식인 하예솔의 관계에서도, 그리고 가정폭력 피해자 강현남과 그의 딸의 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연진의 상간남이자 오랜 친구인 전재준의 핏줄이란 걸 알았을 때조차 도영은 예솔이 걱정만 한다. 현남은 같은 피해자임에도 딸을 구출시키고자 백방으로 노력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었고, 납득할 수 있었다.



모범택시


세상엔 많은 피해자, 그리고 많은 가해자들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피해자는 본인의 탓으로 돌리고 숨는다. 오죽하면 이런 밈까지 생겼겠는가.


그렇기에 더욱 피해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줄 드라마가 필요했다. 그리고 등장한 <모범택시>

모범택시 포스터


죽지말고 복수하세요. 대신 해결해 드립니다.


주인공 무지개운수 5인방은 각자 다른 사건의 피해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들은 피해자 연대를 만들어서 대신 복수해 준다. 그들은 다른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안다.


피해자의 아픔은 후시딘을 바른다고 새살이 쑥쑥 돋는,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없는 상처다. 깊게 베인 상처에 어렵게 딱지가 생길 때쯤, 주변 사람들의 말로, 시선으로, 단순 상황이 주는 PTSD만으로 너무나도 쉽게 새 흉터를 얻는다. 그들의 영혼에는 과거를 딛고 일어난 영광의 상처가 아닌, 과거를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무지개운수 5인방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복수를 실행한다. 자신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이 적길 바라면서. 그렇기에 5인방은 범법인걸 알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대리 복수를 해준다.


5인방은 단순 복수에서 멈추지 않는다. 파랑새 복지 재단이라는 설정으로 피해자들의 복수를 도운 이후에도 끊임없이 지원한다. 그들의 무너진 삶이 다시 재건되길 위하는 바람으로.



두 드라마는 분명 결이 다른 복수를 한다. 그럼에도 결국 똑같은 위로를 건낸다.

<더 글로리>는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내 손을 잡아', <모범택시>는 '혼자 힘들어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앞으로도 피해자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전해줄 수 있는, 대중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 있는, 가해자들에게는 평생 속죄할 죄책감을 갖게 할 수 있는 드라마가 생기기를 바란다.


딩거의 한 줄 리뷰 : 복수는 피해자를 위로하는 또 하나의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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