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무서운 꿈 혹은 싫어하는 꿈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귀신에게 가위가 눌리는 꿈이 않을까. 그러나 내게 가장 무서운 꿈은 거대한 감자가 나오는 꿈이다. 그것도 내 키의 세 배가 되는 감자를 이쑤시개로 찍어서 먹는 꿈. 정말 하찮지 않은가. 그러나 나에게 이 꿈은 하찮음이 아닌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이쑤시개로 아무리 찍어도 거대한 감자에는 표시 하나 안 남기 때문이다. 그 찜찜함은 꿈자리를 사납게 만들어 결국 짜증과 우울감에 가득 찬 채 잠에서 깨게 된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확실하게 지칭할 수 없어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못했었다. 그저 내가 예민한가 보다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된 내 감정은 '거대공포증'이었다.
거대공포증의 대표적인 예시
압도적인 크기의 웅장함 앞에서 한낱 인간에 불과해지면서 초라해지는 이 느낌. 그건 바로 공포였다. 나는 이제껏 공포에 느끼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제야 내가 느꼈던 무력감과 찝찝함, 그리고 하찮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내게 거대공포증은 단순히 사물에만 해당하지 않았다. '도전하는 인생을 살자'가 목표일 정도로 원체 일 벌이기를 잘 해왔었다. 그러나 도전과 창업은 달랐다. 제안서는 매일마다 수정사항이 하나씩은 꼭 눈에 띄었고, 협업 메일은 조금이라도 잡상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일주일간 고치고 또 고쳤다. 제안서를 날리는 그 순간에는 '이게 정말 될까?'라는 무력감에 휩싸이며 초라해지는 공포를 느꼈다.
주변에서 창업한 사장님들을 봤을 때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들만큼의 자신감이 없고, 매일같이 느끼는 것이라고는 좌절과 공포뿐이라는 생각에 퍽 슬퍼졌다.
공포증을 이기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많이 접하는 것이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더라도 우선 고양이를 만지고 쓰다듬으면서 내성을 만들듯이, 거대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도 무작정 기획서를 작성해서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이론은 빠삭하게 잘 안다. 그러나 부딪혀 다쳐가면서 실행하는 것만큼 두려운 건 또 없다.
맨 땅에 헤딩, 예전에는 참 낭만 넘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참 쓰라린 단어였다는 걸 몸소 느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별거 아닌 거대공포증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 하찮은 두려움이 되었다. 9개월 뒤에는 하나도 두렵지 않은, 그저 하찮은 존재가 되어 있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