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력은 학습된다
유튜브 웹예능 <전과자>를 보다가 이 멘트가 들렸다.
저는 이십이학번(22학번)이에요.
이 별 것도 아닌 것에 꽂힌 이유는 학번을 말하는 방법 때문이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15학번인 나는 대학 첫 자기소개에서 "십오학번"이라는 단어를 썼고, 선배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게 참 수치스러웠다. '일오'가 아닌 '십오'라는 단어를 썼다는 이유로 조롱을 당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뭔진 몰라도 쪽팔림은 면하고 싶기에, 그 사건을 계기로 언제나 '일오'라는 말을 썼다.
그리고 이듬해가 되어 후배가 들어왔을 때, "십육학번"이라고 소개하는 후배가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1년 새에 선배들에게 물들어버린 것이다. 나름 수치스러웠던 과거가 있었기에 후배를 비웃기보다는 후배가 자연스럽게 알아채기를 바랐다. 그래서 후배 앞에서 '일육'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썼다. 이후 언제부턴가 내게 물들어 후배 또한 자연스럽게 '일육'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진짜 꼰대였구나를 절실히 느낀다.
흔히들 태어난 해를 말할 때 89년생을 '팔십구년생'보다는 '팔구년생'이라 말한다. 학번도 마찬가지였다. 02학번은 '이학번'이 아닌 '공이학번'이라 부르곤 했다. 왜인지를 생각해 보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들이, TV에서, 영화에서 다들 그렇게 말했으니깐 그러는 것이다. 딱히 엄청난 이유가 있지는 않다. 굳이 따져보자면 '이학번'이란 말의 어감이 애매하니 앞의 숫자 0을 언급해 주기 위한 방안 중 하나였던 것이 굳어진 게 아닌가 싶다.
코로나시국을 맞이하면서 대학생들은 선배를 만날 길이 없었다. 학교도 제대로 등교하기 어려웠던 마당에 학년 모두가 모일 수 있는 행사를, 동아리를 경험해 볼 수 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학번을 부르는 법에 대한 교육(?)이 없었다. 이십이학번이든, 이이학번이든 그냥 말만 통하면 되니깐 말이다. 한마디로, 학번 명칭은 선배의 행동으로 학습된 나의 꼰대력에 불과했던 것이다.
선배가 중요하다는 것은 늘 체감하고 있었다. 선배의 지적에 행동을 바꿨고, 선배의 카리스마에 반해 따라 해보기도 했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선배는 틀에 벗어났다며 무시했었다. 그러나 내게 가장 큰 교훈을 준 건 '이십이학번'이었다. 후배로서 배울 생각만 했지, 선배로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내 말 한마디에, 내 행동거지 하나에 후배들은 모두 영향을 받는다. 꼰대는 내가 키워내고 내가 물려주는 것이었다.
물론 이미 내 안에 자리 잡은 꼰대 DNA를 무시하기는 참 어렵다. 간혹 참지 못하고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아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쟤는 왜 저런데.' 그럼에도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해 본다. 정말 저 친구가 잘못한 걸까. 그다지 중요한 문화가 아니지는 않을까. 지적을 할 때는 대뇌의 즉각적인 반응보다 이해를 위한 한 템포의 여유가 꼰대생산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의 꼰대DNA를 없애는 건 덤으로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