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순오 Jun 22. 2024

첫 공지는 조촐하게 수원화성성곽길 반 바퀴로!

수원화성성곽길

오늘은 수원화성성곽길 걷는 날! 영화도 보고 야경도 보려고 기획을 해본다. 알파산에서 약 보 전에 코스모스 대장 등극식을 하고 첫 공지이다. 2월에 산악회에 가입해서 총 5번 정도 산행에 참여하고 대장이 된 터라 아직 친분이 쌓일 만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겨우 두세 명 신청에다 구두로 오겠다고 한 이들도 댓글이 없는 걸 보면 호응도가 낮다. 거기다가 두 명 신청자 중  한 명이 막바지에 취소를 했다. 나를 대장에 추천한 신난다 회장님 뒤풀이에신단다.


알파산님들은 대체로 서울 사는 이들이 많다. 특별히 자주 산행에 나오는 이들은 일산, 합정, 백석 쪽 사람들이나 강동, 광진 쪽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거기서 수원까지 오려면 두세 시간은 보통으로 걸린다. 그러려면 지방 원정산행을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하기에 이 쪽은 빈 공간이다. 수원, 안양, 군포 쪽 산행 공지는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쪽 근교산 공지를 하려고 대장 수락을 한 것이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나으니까."

"아무도 신청을 안 하면 혼자라도 간다."

내  자세는 이러하다. 꼭 인기가 있어야만 대장은 아닌 것이다. 무어든 꾸준히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이곳을 좋아하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다.


만남 장소인 화성행궁광장 가는 길에 뒤풀이 장소에 찾아가 본다. 수원에 와서 산지가 벌써 10여 년이 다 되었는데, 그 유명한 수원통닭거리를 지나 만 가고 못 들어가 보았다. 하긴 술을 안 마시니까 거기 갈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신난다 회장님도 오신다 하니 꼭 가보리라.


수원남문통닭은 팔달문(남문)에서 화성행궁광장 가는 길 중간에 있다. 세븐일레븐 편의점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거의 끝부분에 있다.

"바로 여기군!"

눈을 맞추고 화성행궁광장으로 간다.


오후 3시 10분 도착이다. 여기서 자작님을 기다린다. 광장이 넓어 누구인가 찾아본다.

"남자인가 여자인가?" 

닉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


화성행궁 정문까지 갔다가 자전거대여소 쪽으로 온다. 옆에는 의자가 많이 있고, 뒤쪽으로는 수원문화재단이 있다.

"여기가 좋겠군!"

늘 지나다니는 길인 데도 화성행궁광장을 자세히 살펴보기는 또 오늘이 처음이다.


자작님이 내 전화번호를 알 테니까 전화가 올 것이다. 그 사이 신난다 회장님한테 전화가 온다. 아직 약속시간은 남아 있지만 아는 이에게 물어서 자작님 전화번호를 알려주신단다. 곧 전화가 온다. 자작님 친구분이란다.

"네네."

자작님한테 전화가 온다. 만나서 서로 반갑게 인사한다.


실은 영화 보는 장소는 수원미디어센터라 그곳 로비에서 만날까 하다가 조금 걸어가더라도 찾기 쉬운 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인데 잘한 것 같다. 자작님이 글쎄, 용인에서 오셨단다. 지하철 타고 한 번 환승해서 버스를 타고 화성행궁에 내렸단다.

"길이 처음이라 혼자서는 찾아가기 어렵겠는데요."


수원미디어센터까지 10여 분 정도 걸어가서 영화 <그녀>를 본다. SF영화이다. 주인공 남자가 요즘 뜨는 AI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조커>에 나오는 남자네요."

자작님도 영화를 꽤 좋아하나 보다. 나는 <조커>를 보았는 데도 기억을 못 한다.


영화가 끝나고 감상을 가슴속에 담은 채  바로 뒤에 있는 화성성곽길로 올라간다. 시간은 이제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점이다. 야행을 기했으나 해가 지려면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아까 신난다 회장님이 사당역에서 지금쯤 버스를 탄다 했으니 7시는 넘어야 수원에 도착하실 듯하다. 수원화성성곽길은 반만 걷기로 한다. 시간을 맞추려면 창룡문~동북공심돈~연무대~방화수류정~용연~화홍문 이렇게 걸으면 되겠다. 성곽길에서 가장 예쁜 방화수류정과 용연(왕의 연못)은 빼놓을 수가 없다.


나는 초록 양산을 쓰고 자작님은 베지지색 모자를 쓰고 걷는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주어 시원하다.


수원화성성곽길의 특징은 수원시내 집들과 차가 다니는 도로 사이로 성곽길이 나 있고 길 주변으로 나무가 없다는 점이다. 여름이 아닌 계절에는 모자만 쓰고 걸어도 좋은데, 한여름에는 양산이 필수이다. 길은 잘 닦여 있어서 구두, 샌들, 운동화 등 어느 신발을 신어도 괜찮다.


자작님과 둘이서 걷노라니 살방살방이 저절로 된다. 주거니 받거니 사진을 찍으면서 걷는다. 성곽길은 풍경 자체가 예쁜 포토존이라 그 어디에서 찍어도 예쁘다.


한 30여 분 걸으니 방화수류정이 나온다. 정자에 올라가면 아래쪽으로 용연(왕의 연못)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데 올라갈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있고 금지줄이 쳐져 있다.


아쉽지만 북암문을 통과해서 용연으로 간다. 정조대왕이 왕가의 아픔을 견디며 걸었을 장소에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와서 쉬고 있다. 군데군데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는 이들도 있다.


방화수류정이 우뚝 솟아 위용을 자랑하고, 수양버들이 흐드러지게 가지를 드리우고, 연꽃이 풍성하게 잎을 펼친 용연을 바라본다. 나무의자 벤치에 앉아서 간단하게 싸간 찹쌀떡과 참외를 꺼내 한두 개씩 먹는다. 물도 한 모금씩 마신다. 곧 통닭집에서 뒤풀이를 할 예정이어서 배가 부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신난다 회장님이 수원역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온다. 택시를 타고 오시겠단다.

"아뇨, 그럴 거 없어요. 버스를 타고 오시면 시간이 얼추 맞겠어요. 팔달문에서 뵈어요."


드디어 셋이 만난다. 수원남문통닭집 2층으로 올라간다. 멀리서 오셔서 내가 대접해 드리려고 했더니 한사코 격려차 오신 거라며 뒤풀비를 쏘신다. 키오스크로 그때그때 주문해서 먹어야 하는데 동작이 빠른 사람이 돈을 낼 수밖에 없다. 내가 배낭에서 지갑을 꺼내고 카드를 빼내는 동안, 신난다 회장님은 듵고 있던 카드를 키오스크에 잽싸게 꽂으신다.


이야기는 무르익는다. 알파 이야기, 개인사 이야기, 이사 이야기 등등 뒤풀이 자리는 언제나 화기애애하다.


누구는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뒤풀이를 하기 위해서 산에 온다."

수원화성성곽길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뒤풀이가 고픈 이들은 수원화성으로 오세요. 한 달에 한 번은 공지를 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멘트가 있다.

"함께 걸어준 자작님 담에 또 뵈어요. 신난다 회장님 격려와 관심에 감사드려요. 또 오세요. 그때는 제가 쏠게요."

창룡문에서
동북공심돈과 연무대
시간이 이르지만 살짝 석양 분위기가 난다.
방화수류정과 용연(왕의 연못)
수원통닭거리 <남문통닭>에서 뒤풀이
매거진의 이전글 코스모스 대장 등극 산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