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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Jan 08. 2024

내 논문과 나를 구분하자

글에 대한 지적은 나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석사과정 처음 입학했을 때를 돌이켜보았다. 첫 학기에 적었던 기말 텀페이퍼가 생각났다. 그 페이퍼는 지금 이 컴퓨터 하드 어딘가 깊숙이 보관되어 있다. 꺼내서 다시 읽지도 않는다. 그런데 지금 되돌아보면 참 좋은 추억이었다. 고려대학교에 처음 입학해서 양적 분석을 처음 하게 되었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일단 찾아서 R을 통해 코드를 무작정 돌려보았던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매달려서 실수할 수 있는 그때가 생각해 보면 열정적이었고 순수했다. 두 번째 학기에 적었던 기말 텀페이퍼는 거기에서 좀 더 발전해서 학술지에 1년이 지나 게재할 수 있었다. 논문 하나하나 무언가 결실이 되어 나타날 때마다 나의 능력이 발전되어 가는 것 같아 석사과정으로서 너무나 뿌듯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논문 혹은 학술 페이퍼 하나하나가 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게 되고, 심지어는 그 논문이 나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내 논문에 대한 공격이었다. 시간과 정성을 모두 쏟은 내 논문에 대해서 교수가, 혹은 주위의 박사가 난도질을 할 때 드는 자괴감은 막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들이 내 논문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제대로 듣지 않는 것 같은데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것"같은 모멸감이 심해졌다. 기획서나 글 하나 읽고, 나랑 길게 이야기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글에 대한 지적이 나에 대한 공격인 것 같고, 공격을 계속 받다 보면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계속 깎여나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렇다.




  중요한 것은 내 논문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주지하는 것이다. 내가 대학원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대학원에 들어온 것은, 논문 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연구 질문을 찾아서 나의 논문을 구성하는데서 기쁨을 찾는다. 그러나 그것이 내 취미도 아니고 그 기쁨으로는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다. 스트레스는 무조건 생긴다. 어떤 때에는 정말 필요한 논문인데 읽기 싫을 때가 있다. 논문 쓰는 데서 쾌감을 느낄 때가 있다면,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거나 혹은 학술지 게재 확정이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을 때? 그때를 제외하면 논문 쓰기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정말 크다.

  논문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면 낮은 자존감과 자신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수단은 따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논문이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것에 무감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나의 논문이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방향으로 보이는 것이 보인다. 쉽지 않다. 대학원생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이 잘 없다. 학교 다니면서 교수에게 지적만 당하고, 혼나기만 하고 인건비를 받기 위해서 연구소의 노동으로 얼마나 힘든가. 그런 과정에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이는 것이 참 어렵기만 하다. 그렇게 논문에 지적을 받고 2년이 지나면 분명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있을 거라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석사/박사과정 코스웍의 2년이 지나면 무언가 달라져있다.




  타 학교의 석사과정생이 어느 날 나와 밥을 먹으며 말을 걸어왔다. 학교에서 자신의 텀페이퍼에 대해 코멘트를 받았는데 너무 화가 나더라고 말이다. 그 자리에서 조금 들었으면서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계속 공부를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텀페이퍼가 학술지에 게재될 만하면 그런 소리를 안 하겠지"라는 잔소리는 다른 사람이 많이 할 것이다. 한국에는 생각보다 자신의 글엔 관대하지만 남의 글엔 잔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내가 그래서 논문에 얼마나 관심을 쏟았는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속상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무언가 슬픈 표정을 짓는 석사과정생. "그 이후부터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왜 그렇게 말한 것일까요?"하고 묻는데, 내가 직접 코멘트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배경에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말을 듣고 보니 코멘트를 주는 사람도 너무 맥락 없이 무례하게 말하기도 했다.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하다 보면 논문에 대한 공격이 너무 많고, 심지어 인신공격도 많다. 그렇게 듣다 보면 논문에 대한 공격이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꼰대들은 교수들은 다 그런 거고 대학원은 다 그런 거니 뭘 그런 걸로 속상해해라고 생각하겠지만)

  석사과정 선생은 방법론을 다른 사람들과는 좀 특별한 것을 차용해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기존에 주류 방법론으로 연구하는 어느 박사님이 이 석사과정 선생의 논문을 보고 "곱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좀 과격하게 표현한 것이다. 방법론 중에 틀린 것은 없지만, 학자들 간에 서로 다른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다면 심리적 거리감이 좀 멀긴 하다. 심지어는 증오하기도 한다. 방법론이 달라지면 학문에서 연구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연구의 목적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의 논문에 빠지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논문 보는 눈도 과격해진다. 학자들은 그렇게 방법론에 매몰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나의 글에 대해서 관대하고 남에 글에 대해 관대하자는 것은 서로 칭찬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 논문을 어떻게 하면 잘 살려서 학술지에 투고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다. 이게 잘못되었고 저게 잘못되었다는 지적만 할게 아니라면 말이다. A 부분은 이렇게 고쳐보고 저렇게 고쳐보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이라도 하게 된다면 스트레스는 덜 받을 것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고, 또 논문을 가지고 인신공격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논문에 대한 공격을 나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대학원에서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교수, 박사를 받아 대학원생을 교육하는 사람들도 논문을 지도할 때에 인신공격을 하지 않고 알려줄 수 있는 법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같은 어른으로서 서로 존중하며 교육하고 교육받을 수 있으려면 말이다. 그렇게 함께 노력하다 보면 분명 나의 글은 변할 것이고 나는 성장할 것이다. 나의 논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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