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입하고 직접 참여하고 있는 학회는 딱 하나이다. 바로 한국동남아학회. 나의 전공이 정치학이어서 모두 "정우님, 혹시 한국정치학회도 나가세요? 아니면 정당학회에 나가시려나?"하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그러다 내가 아니라는 소리를 하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이내 동남아학회를 나간다고 하니, 이것저것 묻는다. 정치학회를 나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동남아학회에선 무엇을 주로 다루는지.
정치학회나 정당학회를 나가지 않는 이유는 딱히 없다. 준회원에 가입되어 있지도 않고 활동할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완전히 동남아를 공부하겠다는 결정을 하기 전부터 동남아학회엘 나갔으니까 그랬다. 정확히는 한국동남아연구소 활동을 했었다. 2020년 이전까지는 한국동남아학회와 연구소가 별도의 법인이었다. 연구소에 대학원생 모임이 존재하고 있었다. 연구회원이라는 이름이었다. 나는 2018년 후기와 2019년까지 연구회원모임의 마지막 회장이었다. 남성역에 위치하던 연구소 마지막 이사날에도 짐정리에 함께 했었고 이사장이셨던 박사명 선생님을 뵈러 자주 찾아가곤 했다.
이번 학회는 부경대에서 2024년 8월 29일, 30일 이틀 간 열렸다. 올해는 동남아학회 신진학자대회도 부산에서 열렸고 동남아언어캠프도 해마다 부산에서 열리기 때문에, 부산에 갈 인연이 많았다. 갈때마다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쓰고 있는 논문에 대한 좋은 코멘트를 받을 수 있어서 좋다. 학회에선 지도교수의 지적처럼 받기 보다는 앞으로 발전적인 논문을 쓰기 위해서 이렇게 고치면 좋지 않을까하는 방식으로 서로서로 코멘트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번에도 교수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새벽 늦게까지 같이 있었던 어느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우씨는 생각이 너무 많아. 내가 정우씨 페이스북을 보는데 박사 공부하는 데 있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은 좋거든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해서 시간을 너무 끌고 돌아가기 보다는 우선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박사받으면 그 이후의 공부는 결국 이제 자신의 몫이거든요. 그러니까 정우씨, 정우씨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는 충분히 다른 사람에 비해 차별성이 있어요.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는 자신만이 잘 알아요. 그러니까 자신감 갖고 우선 결과를 만든다고 생각하세요."
요즘 방법론에 대한 회의감도 많이 들고 연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았는데, 이렇게 위로를 얻게 되다니. 학회의 효과란 결국 나와 비슷한 주제 혹은 같은 동남아 연구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 받는 것, 그리고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는 것 같다. 물론, 학교에서 지도교수에게 지도를 받게 된다면 저렇게 좋은 말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아닐테지만 말이다.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의 중간에 어떤 성취를 해서 효능감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기말 과제인 텀페이퍼를 쓰더라도 계속 지적을 받아야 하고, 혼나고 수정하고 혼나고 수정하는 과정을 계속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지적없이 한 번에 논문을 쓰는 천재라면 이 바닥에 들어와서 이렇게 공부하지 않았겠지. 효능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쓴 텀페이퍼를 빨리 발전해서 학회에서 발표하는 것이다. 지도교수가 가라고 해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학회라는 곳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기 지도교수와 관계없는 학회에서 발표를 하고 코멘트를 얻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야 스스로 논문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 많이 배운다. 과정생이 지도교수에게 배우는 것은 영향력이 크지만 평생 공부에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결국 자신이 어떻게 공부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한국동남아학회는 나에게 스승같은 분들을 만나게 했고 앞으로 학문의 벗으로 삼을 수 있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했다. 2018-2019 연구회원모임에서는 벌써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도 있다. 뉴욕주립대에서 박사를 받은 양현이 형, 늘 논문에 대한 코멘트를 잘 주고 조언도 잘 해주고 위로도 해주는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이번에 싱가포르 국립대에서 박사를 받는 송지은 선생님에게도 정말 감사하다. 항상 만날 때마다 위로를 얻을 수 있어서 좋다. 요즘은 최근에 구성된 준회원 모임 분들을 많이 만난다. 예컨대, 서강대 박사과정 전경진, 김지혜, 석사과정 성민쌤, 서울대 박사과정 박준영, 경환이 형, 은정 누나, 경민 누나, 석사과정 조규린 선생님, 캐임브리지대 박사과정 채균이까지. 일일이 나열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생각나는 사람들은 여기까지.
동남아학회로부터 받은 것도 너무 많다. 전제성 회장님의 도움과 조언을 받아 2024년 전반기를 보람찬 결과물들로 채울 수 있었다. 앞으로 나도 동남아학회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기를. 그래서 이번에 평생회원으로 전환했다. 항상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태국 연구자 분들께도 감사하다. 채현정 선생님, 현시내 선생님, 이미지 교수님. 너무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먼저 다가와서 이런저런 도움을 요청하는 석사과정생을 보면 학교에 상관없이 너무나 반갑다. 물론 조언을 하는 나를 보면 꼰대같지만 그래도 무언가 도움이 되기를. 내가 동남아학회에서 받은 사랑과 관심, 그리고 지원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