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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Jan 06. 2024

편견을 위한 변명

이민기 속집 외전 - 빅토리아 다운타운 여행 #2

이민 첫 해 크리스마스이브.


당장 앞일도 막막하고 통장 잔고가 계속 줄어가고 있어서 마음은 불안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좀 색다른 저녁식사를 하고 싶었다. 수입이 없으면 당장 마음도 가난해진다. 차림표에 보이는 가격에 팁과 세금이 따로 붙어서 나중에 깜짝 놀라게 만드는 레스토랑 외식은 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민 첫 크리스마스인데, 칠면조는 못 먹더라도 KFC에서 버킷 가득한 후라이드 치킨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당시 운영하던 비즈니스를 일찍 닫고, 한 4시쯤이었나, 집 근처 KFC에 들러보려고 했더니 마지막 주문을 이미 마쳤다고 했다. 쿠쿠쿠궁. 20여 년 전, 그때의 밴쿠버는 아무리 소매점이고,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라 하더라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오전 근무만 하는 것이 당연했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모든 상점과 회사가 닫았다. 신규 이민자인 우리만 그걸 몰랐었던 거다. 쇼핑몰도 닫고, 다른 식당들도 다 닫아서.. 결국 뭘 먹었었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크리스마스 때까지 쫄쫄 굶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날 이후로 지금까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주말에는 (굶어 죽을까봐) 엄청난 식자재 쇼핑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외식하는 것이 좀 편해졌을 무렵부터는 크리스마스 아침은 무조건 딤섬이었다!! 휴일에도 성실하게 일하는 중국인 이민자들 덕분에 우리끼리도 크리스마스 아침을 풍성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당시에는 딤섬이 접시당 3불을 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여행을 왔더라도 올 크리스마스 아침 역시 딤섬이었고, 80년 전통이라는 <돈미 Don Mee (https://www.donmee.com/)>라는 곳에서 즐기게 되었다. 사실 구글 평점이 그리 높지 않아서 좀 망설였지만 아침 10시에 여는 곳이 이곳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 아침, 황량한 다운타운 쇼핑가에는 어젯밤보다 훨씬 많은 노숙인들이 이곳저곳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이곳 차이나타운에는 노숙인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요즘 밴쿠버의 차이나타운처럼 펜타닐에 중독되어 좀비처럼 'ㄱ'자로 꺾인 채 슬금슬금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볼 수 없었다. 길거리를 가득 채운 텐트나, 웃통을 벗은 채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역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라스트 오브 어스 시즌2>를 밴쿠버에서 촬영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 제작비가 정말 절감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어째서 그런 걸까? 이곳 중국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자경단을 운영하는 걸까?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처럼? 그렇지 않고서야 바로 한 블록 저편부터는 노숙인들의 취침장소가 바글바글한데도 여긴 이렇게 깨끗한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생각해 보니, 이곳 다운타운 거리에 누워있는 노숙인들 역시 요즘 밴쿠버의 노숙인들과 좀 결이 다른 걸 느낀 것 같다. 마치 밴쿠버에 처음 왔을 때 거리에서 만났던 사람들처럼. 물론 어젯밤에 빅토리아 항구 산책길을 걷는 동안에도 관광객들을 향해 (아시안 여성들만을 딱 집어서) 소리 지르며 위협하는 사람들도 있긴 했었지만, 전반적으로 봐서는 그냥 누워만 있고, 더러울 뿐이다. 이민 초기에는 노래를 부르는 노숙인들을 만나면 같이 얘기도 했었고 악수도 나누고 했었는데 (그러고 나면 아내는 "자. 지금부터 그 손으로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집에 가자마자 손 닦아"라고 강력하게 얘기하곤 했지만), 언젠가부터 이렇게 노숙인들에게 편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뭘까? 코로나 이후부터 그랬던 것일까? 사실 코로나로 사회가 봉쇄되어 사람들이 우울증을 겪고 동시에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심해지면서, 뉴스를 틀면 항상 거리에서 발생한 무차별 폭력 사건이 도배를 하곤 했었다. 밴쿠버 경찰 리포트에 의하면 2021년에는 (밴쿠버 시에서) 평균적으로 하루에 4.5건의 묻지마 폭력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2023년에는 1.1건으로 줄었습니다 https://bc.ctvnews.ca/steady-decline-in-vancouver-stranger-assaults-since-2021-police-department-report-reveals-1.6658016). 그리고 이런 묻지마 폭행 사건의 경우 주로 다운타운, 이스트 밴쿠버 지역에서 일어났고,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 아동, 노인 대상으로 종종 벌어졌다.


하지만, 과연 이런 묻지마 범죄들이 노숙인들에 의해 일어난 것인가? 안타깝게도 범인들의 인적사항을 도표로 만들어 둔 것이 없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CC-TV에 잡힌 영상에서는 노숙자로 특정할 수 있는 경우는 없었다. 밴쿠버 사람들 행색이 워낙 거지 같아서 외모로는 노숙인과 구분을 할 수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영상에 나온 범인들은 대부분 눈치 빠르게 상대를 고를 줄 알고, 잘 뛰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한 번은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잘 차려입은 (정말 멀쩡하게 생긴) 중년 여성이 나에게 "Excuse me" 하고 예의 있게 다가오더니, "너 날 지금 놀리는 거야, 아니면 협박하는 거야?" 라고 밑도 끝도 없이 따져서 당황한 적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여성이 지저분하게 입은 남성을 몰아붙이고 있으니까 지나가는 사람들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나 역시 그 여성이, "니가 며칠 전부터 날 따라오고 있었다는 거 다 알앗!"이라고 소리치고 나서부터는, 아... 마음이 아프신 분이구나.. 하면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그 여성이 내 뒤통수에다 대고 "Go back to your country!!" 라고 소리 지르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 마법의 문장은 정신없이 바쁜 다운타운 한 복판을 지나가던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순식간에 받았습니다). 정말이지 사람의 정신건강은 행색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경찰 발표에는 없고 CC-TV 영상에 안 잡힌 노숙인들이 저지른 범죄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들 중에는 약물이나 조현병으로 인한 환상 때문에 우발적으로 칼부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상대적 약자들을 골라 위협에 그치지 않고 실제범죄를 실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신질환자나 비열한 인간들은 노숙자들 사이에도, 공무원 중에서도, 대기업 총수들 사이에도 있는 법이다. 기본적으로 거지, 노숙자, 노숙인, 행려자라고 할 때는 고정된 거주지 없이 거리를 떠돌면서 밤이슬을 피하고, 타인에게 동냥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그 신분 자체가 곧바로 편견의 대상이 될 이유는 없다. 한 때는 저들을 보고 에피쿠로스나 디오게네스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정도로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왜 지금 나는 저들을 기피하게 되었는가? 영화 <퐁네프의 연인>을 보며 노숙인들간의 사랑에 감동받은 적도 있었는데 말이지. 그냥 지저분한 외모를 바탕으로 한 편견인가? 쥐와 다람쥐를 차별대우하는 것처럼? 전 세계를 마비시킨 전염병의 공포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 개인위생이 불결한 사람들에 대해 심리적으로 위압감을 받고 있는 것인가? 실제로 내가 일하는 건물에 무단 침입한 노숙인들을 밖으로 내보내려다 보면, 그들이 우리를 향해 침을 뱉거나 기침을 부러 크게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결함에 공포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걸까?


하지만, 밴쿠버의 노숙인들 사이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약물중독과 정신질환이 급상승했다는 이유가 더 클 것 같다. 연구에 의하면 2020년 1월 밴쿠버에 코로나 첫 환자가 발생할 때부터 2021년 7월 코로나 2차 유행이 조금 잠잠해질 무렵까지 BC주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의한 사망자가 1,800명이었는데, 약물오남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3,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https://vancouversun.com/news/opioid-deaths-in-b-c-far-outpaced-those-from-covid-19). 펜타닐과 같은 신종 약물이 급격하게 퍼진 탓도 있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약물 중독 보호기관 방문이 매주 6,000명 규모에서 2,000명 수준으로 떨어진 탓도 크다. 밴쿠버의 경우 대마초도 합법화되어 있고, 약물중독자들의 경우 약을 천천히 끊을 수 있도록 안전한 경로의 마약을 제공하는 보호시설도 있지만, 거리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어떤 정신질환 때문에 약이 필요한 사람들의 경우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거리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짝퉁약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내 직업과 관련해서 말을 하자면, 노숙인들을 내 보내고 그 자리를 치워야 하는 일이 있을 때, 그전에는 지저분한 침구류 등을 보면서 빈대 걱정을 해야 했다면, 이제는 그 주변에 수도 없이 쌓인 주사 바늘들을 보고 겁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모든 편견들은 결국 두려움과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마녀사냥도 그랬고 종교전쟁도 그랬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진심으로 사회에 동성애자들이 정신없이 늘어나서 AIDS를 동네 곳곳 퍼뜨릴까봐 두려워 그럴 수도 있고, 무슬림들의 난민들의 정착을 결사 반대하는 사람들 역시, 단지 피부색이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슬람 문화의 유입으로 한국 여성들이 억압을 받게 될지도 진심으로 생각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코로나 당시 아시아인들에게 묻지마 폭력을 가했던 서구 사람들도 아시안들로부터 죽음의 병균이 전파되는 걸 진심으로 막고 싶어서 그런 거였을지도 모른다. 요즘 유행하는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첫인상에 대한 편견을 지지한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존재하는 한, 인간 사회에서 편견을 없앤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집중해서 막아야 할 것은 극단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사태와 사회 / 경제적 손실이 먼저일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크리스마스 날 셔터를 내린 빅토리아 다운타운 쇼핑가를 걷고 있는데, 어느 젊은 아가씨가 큰 가방에서 이불을 꺼내 어느 노숙인에게 건네는 걸 보게 되었다. "너, 이거 혹시 필요해?" 하고 물으니, "오,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아. 고마워."하면서 시원한 웃음으로 보답한다. 그러고 보니, 저쪽에서는 중절모를 쓴 어느 중년 신사가 노숙인에게 담배를 건네며 수다를 떨고 있다. 이래서 빅토리아의 노숙인들이 현재 밴쿠버 노숙인들과 달라 보였던 걸까? 뒷주머니에 주사기 여러 개를 차고 있을 것만 같았던 이 노숙인들도 저렇게 웃을 수 있구나 생각이 든다. 아...... 어떤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았었던가? <드래곤 길들이기>에서... '나이트 퓨리'라고 사람들을 공포에 잠기게 했던 그 공룡에게 히컵이 처음 손을 뻗던 장면. 그 장면을 보고 왠지 모르게 갑자기 마음이 무너벼 버렸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공포와 편견 때문에 증오로 무너지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용기를 내서 먼저 손을 뻗는 것뿐이었다. 이 도시에서는 아직 내가 배울 게 많구나. 미드 <테드 라소>를 통해 ‘월터 휘트만’의 격언으로 알려진 “Be curious, not judgemental  (재단하려 들지 말고 호기심을 가지자)"이 생각이 났다. 말했듯이 편견이라는 건 자기 방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편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소중한 인연들을 놓치고 살게 되는 걸까.


(그래도 제가 일하는 건물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쓴 주사 바늘 정도는 자기가 좀 치웠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빅토리아에 있는 차이나타운이 북미에서 두 번째로 오랜 된 곳이라는 (최초의 차이나타운은 샌프란시스코) 것이었다. 그걸 기념하듯이 거리에는 불그스름한 각종 시설들과 용 모양 조각상, 그리고 이정표까지 차이나타운스럽게 만들어져 있다. 왜 이제껏 이걸 유심히 안 봤을까? 빅토리아에 아무리 출장을 많이 왔더라도 역시 여유로운 관광일정에서만 알 수 있는 게 있다. 캐나다 최초의 차이나타운이라고는 하지만, 밴쿠버 차이나타운에 비하면 무척 아담하고 소박한 편이었는데, 차이나타운이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와 다르게 무척 깨끗하고 아기자기하며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그게 앞에서 언급한 대로 자경단 때문인지, 아니면 캐나다 최초라는 브랜드에 걸맞은 관광지로서 BC 주정부에서 관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비하면 밴쿠버의 차이나타운은 뭔가 더 생활감각 (땀냄새, 피냄새+약냄새?)이 난다고 할까? 오래전 불법도박 장소로 유명했던 거리를 (도박의 이름을 따서) <판탄앨리 Fan Tan Alley (https://en.wikipedia.org/wiki/Fan-Tan)>라는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낸 것도 재미있다.


2016년 여름, 빅토리아 차이나타운
1882년에 건립되었다는 차이나타운 입구 정문. '대청국'이라고 쓰여진 깃발이 보인다


중국식 홍등 모양의 간판과 기와 모양 입구를 지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돈미>의 리셉션이 우리를 맞이한다. 언뜻 보니까 식사공간은 이미 많이 차있어서 조금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역시 2인용 테이블은 자리가 아직 남아 있었다. 요즘은 밴쿠버에서도 이렇게 카트에 음식을 싣고 다니면서 테이블 손님에게 선택을 받는 전통 방식의 딤섬집이 찾아보기 힘든데 <돈미>에서는 아직 이렇게 운영을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딤섬집 주방의 실력을 가능하기 위해 제일 처음 주문하는 딤섬은 Lo Mai Gai (糯米雞)라고 해서, 여기서 '스티키라이스'라고 하면 알아듣는 요리인데, 중국식 소시지, 돼지고기 등을 넣고 여러 가지 양념을 한 찹쌀밥을 연잎에 싸서 쪄 내온다. 식당에 따라서 표고버섯이나 메추라기 알 노른자가 들어있을 때도 있는데, 그 식당 주방의 개성을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딤섬이라 생각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요리라서 그런지 몇몇 딤섬집에서는 그냥 기성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통 찜기 하나에 손바닥 만한 크기의 쌈밥이 두 개 나오는데 이 집처럼 접시 가득 커다란 쌈밥 하나가 달랑 나오는 건 처음 봤다. 그리고는 가위로 턱턱 연잎쌈 윗부분에 칼집을 내어준다. 알아서 퍼 먹으라는 뜻인가? 그런데... 아... 닭육수 맛이 진하다. 닭고기와 버섯도 풍성하게 들었다. 80년 전통이라더니... 이 집 주방장 대단하다. 구글평점이 낮을 이유가 없는데.... 하고 봤더니, 음, 단가가 조금 비싸구나. 그래도 이 정도 양과 퀄리티면 이 가격이 납득이 갈 수도 있겠는데...



딤섬 식당 <돈미>의 입구와 서빙 카트


<돈미>의 '스티키라이스'와 '진저포크'



아내는 부추 새우만두의 만두피가 다른 곳에 비해 두껍다는 불만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건 사실 만두 역시 기성품이 아니라 이곳에서 직접 빚는다는 반증이 될 수 있겠지. 게다가 밴쿠버에서 볼 수 없었던 딤섬도 꽤 있었는데, Ginger Pork라고 소개받은 물만두스러운 딤섬은 생강향이 짙어서 한국의 동그랑땡 느낌이 강하게 났었다. 이렇게 차림표 없이 카트로 주문하는 딤섬집에 오면 가끔 내 정량보다 많이 먹게 되는데, 막판에는 배가 너무 불러 정말 먹고 싶은 걸 놓치게 된다. 스티키라이스 외에 또 하나 항상 찾게 되는 '무케이크 (Lo Bak Go/蘿蔔糕)' 역시 이 집에서는 카트에 있는 프라이팬에서 즉석으로 데워서 서빙했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 뭔가를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는 소화능력이 떨어져서 이 정도로 많이 먹고 나면 억지로라도 걸어줘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차이나타운을 천천히 돌다가 다시 다운타운을 향하니 텅 빈 크리스마스 쇼핑가에는 여전히 노숙인들만 많이 누워있었다. 과연 내가 먼저 손을 뻗을 날이 올 것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지난 밴쿠버 시 선거에서 경찰력을 증대하겠다고 선언한 신규정당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이 되고, BC주 야당인 BC 보수당 쪽에서는 마약류 통제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걸 보면, 밴쿠버의 약물 문제나 노숙인 문제들에 대해 유권자들의 걱정이 좀 더 우경화되어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가. 21세기 밴쿠버에 삼청교육대를 만들면 해결할 수 있겠다는 건지, 의도를 모르겠다. 당장 내 눈에 거슬린다고 어떤 사람들을 잠재적인 범죄집단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여전히 내가 먼저 손을 뻗고 껴안기 겁이 나지만, 그래도 어떤 특정 신분에게 낙인을 던지는 것만큼은 의식적으로라도 거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집숙소 방면을 지나 항구 산책로를 다시 한 바퀴 돌다 보니 숙소 뒤쪽으로 크리스마스에도 문을 연 커피숍이 있다고 해서 그리로 향했다. 고마워라. 그 집 앞 가로수에는 벌써 새싹이 움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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