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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Jun 24. 2024

아주 먼 옛날, 브런치 저 너머에선...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01

게으름 때문에 핑계만 계속 대면서 차일피일 미루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된 건, 저 스스로 개학날을 정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러면 밀린 방학숙제처럼 벼락치기로라도 쓰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2022년 개학날은 이민 20주년 기념이라는 명분이었어요. 워낙 제 잘난 맛에 살아왔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 없이 완전 독립군처럼 살 수는 없다는 걸 알 정도 염치는 있었거든요. 이민 5주년 때, 10주년 때는 카드와 편지를 만들어 생존신고도 할 겸 그동안 신세 진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렸었는데 이번에는 이민 기록을 책으로 엮어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이민기와 캠핑 여행기를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 밴쿠버 땅에 정착하는데 도와주셨던 고마운 분들께 증정을 마치고 나서는, 그냥 다시 침대와 소파와 만화와 함께하는 조용한 삶을 이어가려고 했어요. 아.. 술도 함께. 근데 기왕 글 쓸 공간이 생겼으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남기자는 생각이 들었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브런치의 다른 작가들 글을 많이 찾아 읽거나 하는 편은 아니에요. 품앗이스러운 '좋아요'나 댓글도 잘 안 다는 편이죠. 원체 사교성도 없고 글 읽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50이 넘어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팔랑팔랑 쉽게 영향을 받거든요. 노래도 모창만 하고. 말투나 생각도. 줏대 없이. 어떨 때는 80년대 중반에 TV 방영 외화를 나도 모르게 표절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제 팔랑귀를 타인의 글을 안 읽는 게으름에 대한 변명으로 써먹고 있어요. 그래도, 기왕 내 브런치까지 찾아오셔서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의 글을 읽는 편이었지만요. '삶의 촉수'라는 독특한 필명을 가지신 이연 작가님도 그렇게 알게 되었던 거였어요. 매번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작가님!" 하며 씩씩한 댓글을 다시는데, 어우... 완전 수컷냄새가 물씬... 빼박 갓 제대한 젊은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022년 3월 14일. 운명적인 첫 댓글




그런데 하루는 아주 긴 댓글을 남겨주셨더라구요. 코고나다의 <콜럼버스>와 <애프터 양>을 두 번 보게 된 경위에 대해서. 댓글 달아주신 분들의 모든 글을 꺼내 읽는 것도 아니고 기브 엔 테이크 식의 댓글 품앗이를 하는 편도 아닌데도 그분의 글 - 영화 <애프터 양>을 보고 난 에세이가 눈에 들아왔어요. 처음에는 그냥 예쁜 글을 쓴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한 문장 한 문장 꾹꾹 눌러 담았구나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뺏기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기억들을. 그러고는 마지막 문장이 절 후욱하고 과거로 데리고 갔었어요.  


내가 되고 싶은 건 양의 기억 장치 안에 거의 다 있었다. 놀랍게도.

(이 글은 현재 서랍 속으로 감춰진 상태입니다. 순순히 다시 꺼내놓으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텐데)




마침 이연 작가님이 그 영화를 보셨던 극장이 제가 잘 아는 곳이더군요. 한국에서 사는 동안 자주 가던 서점에는 지하에 문구코너가 있었는데, 신학기 시작할 무렵이면 노트며 필기도구를 사는 학생들로 바글바글했었거든요. 완전 통제가 안 될 정도로. 그러다 보니 점장 정도 되는 분이 탁상 위에 올라가 학생들을 감시하곤 했습니다. 누가 뽀리까나 안 까나 보면서 말이죠 (그때는 카메라 폰도 없을 때니). 그렇게 강자만이 살아남던 정글이 복합문화 공간으로 변모해서 예술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하고 있다니!!! 그래서 제가 또 댓글을 남겼었죠 (하지만 이건 착각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두 장소는 같은 건물의 다른 곳). 그랬더니 이연 작가님은 네이버 블로그에 극장 <더 숲>에 대해서 글과 사진을 쓴 후 절 초대해 주셨어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이 끈질긴 인연이 시작된 것이.







아직 이연 작가님이 출간하신 책을 찾아볼 방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블로그나 브런치 글들을 구독하면서 읽게 되었어요. 글을 읽고 영화도 찾아보게 되고 말이죠. 자극을 받아 덩달아 긴 댓글도 뱉어내게 되고.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줄기를 끌어내는 게 이토록 즐거울 수 있다니요. 30년 전 대학 영화 써클 생활 동안에는 영화 같이 보고 나면 꼭 쌈질로 끝나곤 했었는데 말이죠. 예전에 한 선배는 제가 어떤 영화감독의 필모그래피에 대해 줄줄 꿰고 있는 걸 신기해한 적이 있었죠. 전, 그게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된 거라서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런 걸 그냥, 팬심이라고 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고, 좋아하는 작가의 글과 그가 추천하는 영화를 찾아보는 걸.


그럼 어쩌다 이런 팬심이 출간까지 이어졌는지, 과연 누가 먼저 공동집필을 제안했는지, 이 스토리는 다음 편에 밝힐까 합니다.


아니 그전에, 다음 편은 브런치와 한동안 소원하셨던 이연 작가님이 기억하는 이 꿍꿍이의 시초가 기술될 예정입니다. 이 글이 좋아요를 500개 넘게 받으면 (자칭) 명리학적 신비주의 작가께서 사진을 공개하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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