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선 Jul 08. 2024

공산당 선언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05

그러고 나서 샘플 원고를 만들어 각자 글 스타일을 맞춰 보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그즈음에 이연 작가님이 브런치에 영화 <니 얼굴>에 관한 글을 올리셨었거든요. 투병생활 동안 변해가는 자신의 외모,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 자신과 가족의 모습에 대해서. 그걸 보고 저는 두 가지 이야기로 긴 댓글을 썼었죠. 하나는 전혀 다른 이야기 - 영화 속 은혜씨의 이야기처럼 그림을 그리는 재능과 가족의 지원에 대해서 썼고, 다른 하나는 이연 작가님이 쓰신 외모 이야기를 받아서 외모로 평가받는 일 - 특히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얕잡혀 보인다는지, 무례를 겪게 되는 이야기를 썼었죠. 동안(童顔)이라는 것이 딱히, 특히 어릴 적에는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글 스타일을 합의하는 과정



이 과정에서 편지 톤보다는 댓글 톤으로 가는 게 낫다는 얘기가 있었고, 가능하면 뒤에 쓰는 댓글 원고에는 앞에 써놓은 본문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는 합의가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출판을 준비하면서 자기 얘기를 한 마디라도 더 떠들고 싶어서, 상대방의 본문 글에 대한 언급은 대부분 잘렸지만요. 예를 들어, 이연 작가님의 <밑줄만> 꼭지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모른 척 한 적 있나요? … 전 있어요."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제 글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담은 부분은 나중에 삭제되었습니다.



초고에는 그래도 댓글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요즘도 그런 얘기들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영화 좋아한다고 잘난 체를 하고 다니면 꼭 그런 질문을 받았었죠. 내 인생의 영화가 뭐냐고. 근데 사실 그것만큼 곤혹스러운 질문이 없어요. 옛날에는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본 영화를 다시 봤을 때는 아놔, 왜 저렇게 오바야... 하며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또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아무래도 오래된 영화일수록 불리합니다. 장르의 관습을 최초로 이끌었다는 찬사는 이성적인 판단일 뿐이지, 감성적으로는 받아들이기엔 그냥 똑같은 클리셰인 경우도 많으니까요. 게다가 영화를 처음 극장에서 감상했을 당시 내 주변에 있었던 상황도 많이 영향을 미치겠죠. 뭣보다 수용자인 제가 계속 변하잖아요. 절 둘러싼 세상도 변하고 있고. 또, 어떤 영화를 보고 글감을 뽑아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의 글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래서 책에 수록될 영화를 리스트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큰 틀만 잡고 써가면서 그때그때 필요하면 영화 리스트를 바꾸기로 했어요.


일단 한국 극장에서 개봉한 작품 중심으로 (OTT 전용 작품처럼 구독이 필요한 작품은 제외), 희귀영화보다는 많이 알려진 작품들 (네 ㅠㅠㅠ 그나마 많이 알려진 영화랍시고 골라낸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개봉한 지 5년 이상이 되어 2차 판권 흥행 수익에 영향이 없는 작품 위주로 골랐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카테고리 - 살고, 보고, 맺고 - 에 어울리는 글을 뽑아낼 수 있는 작품들을 나열해 봤죠. 그래도 또 쓰다보면 결국 할 얘기가 많은 작품들을 고르게 되어 있어서 최종적으로 책에 실린 작품들과 최초에 선정된 영화들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뭐, 이미 구상해 놓거나 써둔 글을 포기해야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받거나 하는 일은 없었어요. 기본적으로 둘 다 워낙 말들이 많아서 그거 말고도 할 말이 넘쳐났거든요. 4000자, 원고지 20매, 책으로 5페이지 내외로 하자고 그리 약속을 해놓고 썼다 하면 4800자, 5천 자를 넘기기 일쑤였으니까요. 예전 노인네들은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고 핀잔을 줬었는데… 저희도 서로를 공산당이라고 부르며 글을 써나갔습니다.


공산당 선언



99%는 개뿔. 처음 리스트에서 50%도 못 건졌습니다.  이연 작가님 리스트에선 딸랑 3편만 ㅋㅋㅋㅋㅋ



긴 투병기간 동안 남은 건 영화뿐 ㅠㅠ


제가 선정한 첫 작품은 고레에다 히로카츠의 <걸어도 걸어도>, 이연 작가님이 선정한 두 번째 작품은 후시와라 켄시의 <인생후르츠>였어요. 처음에 쓴 글들은 아직 형식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면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서로의 가족들에 대한 찌질한 불평이 마음 밖으로 튀어나와서, 이후 출판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 양심적으로 300매는 넘지 말자> 프로젝트에서 걸러지게 되었습니다. 뭐 또, 전체 48 꼭지를 36 꼭지로 줄였다는 안도감으로 방만하게 퇴고하다가 결국 300매가 넘어가는 만행이 일어나긴 했지만요. 아무튼 제가 선정한 세 번째 작품 <굿바이 레닌>부터 책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덧,


조 위에,  영화 <니 얼굴>을 보고 동안의 서러움에 대해서 썼던 얘길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2023년 초에 갑자기 한국 방문을 할 일이 생기면서 겸사겸사 친애하는 공저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우.. 어찌나 긴장되던지... 안 그래도 과민성 대장 증상이 심한데... 만나기 바로 직전까지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지 뭐예요 (손은 비눗칠해서 잘 씻었습니다). 같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반년이 넘고 나서야 서로의 인연이 시작된 노원역 극장 <더 숲>에서 처음 이연 작가님을 뵙는데... 아니 이건, 절 보자마자 막 우시는 거예요. 어우.. 좀 무섭게 말이죠. 이건 뭐지? 나 냄새 나나?  그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걱정을 했는지...


일단 진정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커피를 주문하러 카운터에 가는데 제 팔을 한 차례 때리시더니 (무슨... 영화 <범죄도시>에서 본 것 같은 풀 스윙이었거든요), 그러시더라구요.



- (훌쩍) 동안이라메에…!! 어흑…





그거였구나










대머리가 뭐 어때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