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룰(Pence Rule).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이 2002년 한 인터뷰에서 "아내 외의 여자와 절대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구설에 오를 일은 만들지 않겠단 뜻이지만,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선 2018년 '미투 운동(Me Too Movement)' 때 이 말이 다시 회자됐다. 물론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비현실적인 이 단어는 슬프게도 현실에 존재했다. 내가 경험한 펜스룰은 2021년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있었다. 저녁 6시 이후 사적모임을 2명으로 제한한 그때다.
늦은 저녁, 한 취재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평소 일방적으로 걸기만 하던 전화를 받아 얼떨떨했다. 들어보니 술자리에서 모 선배가 내 칭찬을 해주어 내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반가운 전화를 마칠 무렵 나는 내게도 저녁시간을 내달라고 청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어떻게 여자랑 둘이 술을 먹나"
당황한 나는 대충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저도, 같이 일하는 선배(여성)도 백신을 맞았으니 같이 보면 된다"고.
본질은 꿰뚫지 못한 채, 백신 접종자에 투명인간 예외가 적용된다며 변죽만 울렸다.
취재원은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분이다. 그를 비난하거나 탓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분은 술김에 솔직한 진실을 말했고 듣는 내가 도리어 당황했던 순간이다.
회사 밖에만 펜스룰이 있었던 건 아니다. 비슷한 시기, 공공연히 누군가의 펜스룰이 회자되었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했다. 비슷한 연차의 남성 기자들이 그와 단둘이 밥을 먹었다는 얘기는 꽤나 많이 들었지만, '비슷한 롤'의 여성 기자들에겐 열리지 않는 기회였다.
특정인에 국한한 얘기는 결코 아니다. 2인, 4인으로 묶어둔 사적모임 제한은 가까운 사람들은 더 가깝게,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더 멀게 만들었다. 9시, 10시의 영업제한은 집, 모텔, 심지어 사무실 등 시간제약을 받지 않는 곳에서 더 끈끈한 모임을 만들어냈다.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들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런 자리들이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회식을 기다리던 타입은 결코 아니지만, 어려운 상사와 소통하는 '기회'란 순기능을 여실히 느끼게 한 시기였다.
언젠가 식사 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털어놓자 모 선배는 반론을 제기했다. 코로나로 사조직은 해체된 것 아니냐고. 웃어넘겼지만 나는 생각했다. 그 사조직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더 좁고, 깊고, 단단해졌다고. 그것은 비단 언론계만의 얘기는 아닐 거라고.
'코로나와 펜스룰'이란 글을 반년 전쯤, 그러니까 취재원의 전화를 받았을 즈음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실행은 늦었다. 편치 않았기 때문일 거다. 엔데믹을 얘기하는 지금, 더 늦기 전에 기록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간 일'에 불과하길 바란다. 5년 주기로 또 다른 팬데믹이 올 거란 전문가들의 예측이 빗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