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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현 Sep 01. 2022

내가 온라인 경제매체를 그만둔 이유

무너진 경계

유튜브가 미색의 한복을 입고 시댁 제사에 참석하는 노현정 전 아나운서의 쇼츠 영상을 띄웠다. 한 언론사의 콘텐츠였는데 아들이 노 전 아나운서보다 키가 크다며 노현정이 누구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왜 내게 이런 콘텐츠를 띄웠는지 알고리즘을 이해할 수 없지만 영상은 12년 전의 기억을 소환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나는 온라인 기반의 신생 경제매체에서 수습을 갓 뗀 기자로 재계를 출입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의 미션은 청운동에 모인 현대가의 제사를 취재하는 것. 누가 오고 누가 오지 않는지를 체크했던 것 같고 기사를 직접 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취재가 끝난 늦은 밤엔 현대 홍보팀이 기자들을 모아 밥을 샀다.


당시 나는 왜 그 시간에 남의 집 제사를 챙겨야 하는지 당최 이해가  안 됐다. 백번 양보해 그룹 내부의 경영권 다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집안 제사를 취재할 일인가 싶었다. 내가 부족한 건지 이 일을 10년 넘게 한 지금도 잘 이해는 안 간다. 그날의 일은 나의 퇴사를 앞당긴 한 단면으로 남아있다.


그 외에도 에피소드는 많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기자들과 미술관(?) 투어 뒤 밥을 먹는 자리가 있었다. 막내 주제에 하루 일정을 통으로 썼는데 ‘얘기되는’ 게 너무 없어서 쫄리던 차에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최 전 회장이 식사 중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대한 동병상련을 표한 걸 보고했다가 지면에 대문짝만 하게 기사가 났다. 다음날 새벽부터 대노한 회장님의 심기를 전하는 한진해운 홍보팀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이 같은 업무 프로세스는 내가 여전히 겪는 것이기도 하다. 미숙함은 좀 덜어냈지만)


대우조선해양 계열사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던 날에도 무력감을 느꼈다. 검찰 출입이  돼서 취재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현재  매체는 법조는 물론 정치분야에도 출입기자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내게 맞지 않았던 건 하루에도 몇 건씩 써야 하는 속보였다. 긴급하고 중요한 사안이라면 모를까. 메일함을 꽉꽉 채운 유통분야의 보도자료를 처리하다 보면 회의감이 들었다. 점심, 저녁에 티타임까지 사람을 만났지만 제품 ‘홍보’의 쓰나미 속에서 내가 쓰고 싶은 기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물론 가장 큰 퇴사의 이유는 방송을 하겠단 것이었다. 오랜 꿈이기도 했고, 당시 생각에 그림이 중요한 방송기자는 적어도 앉아서 쓰지 않고 현장을 갈 것이란 생각이 컸다. 또 무한대의 인터넷이 아닌 한정적 전파에선 보다 공적이고 더 중요한 문제를 다룰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재밌게 일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소파에 앉아 TV로 저녁뉴스를 보지 않는다. 방송기자들도 인터넷 속보를 양산해야 하는 환경이 됐다. 나로선 어렵사리 매체를 전환해 왔더니 10년 만에 그 경계가 무너진 셈이다.


방송사든 신문사든 인터넷 매체든 너도나도 유튜브를 한다. 그런데 휴직을 하고 한 발짝 떨어져 보니 각 분야의 전문가나 셀럽들의 유튜브가 훨씬 재밌다.


다시 예전 매체의 이야기로 돌아가 당시 동기들은 각 분야의 취재팀장이 되어 전문성을 뽐내고 있다. 결국 어디서든 의미를 찾고 잘 적응해내면 성장할 수 있는 걸까. 업의 본질이 흔들리는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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