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내놓고 그것을 소비하는 것에 대하여
낙하산 같은 사람들이 있다.
끝도 없이 떨어지는듯한. 아래로, 더 아래로.
그러면서도 그들은 생각한다.
계속해서 낙하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떨어지는 사람 하나 품고 가겠노라.
내가 침잠하는 것을 어찌할 순 없으나 그럴 바엔 다른 사람 하나라도 살려야 되지 않겠나-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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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인디 아티스트의 노래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그를 소개해준 친구는 그가 어떤 하루들을 지냈길래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지 묻게 된다며 그의 플레이리스트를 내게 보냈고, 그 곡들을 한숨에 들어 버린 나는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응축된 단어들로 간결히 서술하는 감정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자들만 이해할 정확한 묘사들. 곱씹고 되새김질하고 소화해서 뱉어냈을 문장들.
시련에 대한 내용을 담은 (특히 자전적인듯한) 창작물을 마주하면 늘 묻게 된다. 가지런한 활자로 정리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온전히 그 속에 침잠해 지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다시 살아가는 노동을 왜 택했는지.
또 그것을 소비하는 것에 대한 옅지만 꾸준한 죄의식을 갖는다. 미운 감정 투성이인 삶인데 굳이 시련에 대한 창작물을 찾아 소비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원치 않는 시련에 간신히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공감이던 위로던 자기위안이던 나의 필요에 따라 타인의 고난을 사용하고 가치를 매기는 것에 동조하는 것이 맞는 일인가. 아무리 창작가가 이 모든 것을 참작하여 자신의 상처를 세상에 내놓았데도. 그래도.
이 아티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를 보며 내린 결론은, 이 노동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선하기를 추구하려 애쓰는 사람의 모습 중 하나라는 것이다. 겪지 말아야 할 것을 겪어야 한다면 나의 경험을 누군가의 결핍을 충족할 수 있는 형태로 조금 떼어 주길 택하는 것. 단어나 몸짓, 음악이나 문학의 다양한 형태로 기꺼이 자신의 상처를 들추고 마음을 내주고 함께 허덕이는 것.
치이고 치인 끝에서도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는 그들이 같은 보살핌을 받길 바랄 뿐이다.
그 행위가 어떤 결심을, 어떤 바람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내 친구와 나의 모습이기도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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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오너스! 응원을 담아 싱어송라이터 GYE0M 노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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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젊음과 자주 헤매던 새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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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것을 공유해 준 친구에게 격한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