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의 아이콘 럭셔리카 '캐딜락' 브랜드 들여다보기 #1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빈센조’를 보면 우리의 주인공 빈센조가 운전하는 장면이면 늘 나오는,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다소 묵직한 느낌이 드는 낯선 모습의 SUV를 볼 수가 있다.
이 차는 미국에서 만든 차량으로 ‘에스컬레이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드라마 ‘빈센조’의 열혈 시청자이던 어떤 분들은 이탈리아 마피아인 빈센조가 타는 차라면 이탈리아의 자동차 브랜드를 출연시켜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품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흔하게 볼 수 없는 이국적이면서도 강인한 느낌의 이 차량을 보면 다소 이쁘고 곱상한 이미지의 송중기 배우에게 마피아 특유의 좀더 강하고 거친 이미지를 주기 위한 차량으로 이 에스컬레이드의 선택은 그렇게 틀리지 않았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에스컬레이드 차량의 앞부분을 보면 눈길을 사로잡는 3원색을 기반으로 한 방패모양의 브랜드 엠블럼이 눈에 띈다. 이 엠블럼은 바로, 미국의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캐딜락’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100년이 넘는 자동차의 역사 속에 미국의 경제 발전과 문화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캐딜락’이라는 브랜드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시간에는 빈센조의 도로 위 동반자 에스컬레이드를 만들어 낸 미국의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캐딜락’이 어떻게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고 현재는 어떤 이미지와 위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독일 제국의 황제이자 프로이센의 왕이었던 빌헬름 2세는 19세기 초, 그러니까 1800년대 초, 자동차라는 제품이 처음 등장해 엄청난 붐을 이룰 때 요즘 생각하면 참 말 같지도 않은 유명한 말을 남긴다.
“자동차는 잠시 머물다 갈 현상이다. 나는 말(馬)을 믿는다.” (feat. 말 소리 "히히힝!")
이 발언은 당시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일반 소비자들과 자동차 업계 사이 갈등의 불씨가 되었으며, 시장의 혼란을 더하는 계기가 되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생각에는 자동차가 곧 대세가 될텐데 무슨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로 시장 혼란까지 생겼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유럽 및 미국 대도시의 주요 교통 수단이 마차였던 걸 생각해 보면 권력을 가진 사람의 이러한 한 마디가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막거나 늦추는 효과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자동차 발전의 위협(?)으로부터 마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그러니까 마부 아저씨들 생업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빨간 깃발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이 법의 내용을 보면 참 재미있는데 간단하게 정리하면 자동차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위험하니 자동차를 도로 위에서 운행하려면 빨간 깃발을 든 기수가 자동차 앞에서 사람들을 비키게 하면서 다녀야 한다는 법이다. ‘내가 이러려고 자동차를 샀나?’ 하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은 황당한 내용의 법 규정이 아닐 수 없다.
‘캐딜락’은 이런 현상들이 참 안타까웠나 보다. 물론 자동차를 좀더 팔아먹기 위해서였겠지만. 1905년에 캐딜락은 이런 슬로건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당신은 말을 죽일 수는 있지만, 캐딜락은 죽일 수 없다’
이 간결하면서도 임팩트 강한 슬로건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캐딜락이 기존의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말과 마차와의 경쟁에 앞장서면서 자동차 업계의 선구자 반열에 올라서겠다는 선언이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슬로건은 현재의 브랜드 슬로건이나 광고 카피를 뽑아내는 기준으로 봐도 참 멋진 문장인 것 같다. 라임도 맞고 기존의 대세와의 비교/대조를 통해 차별성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캐딜락이 자동차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는 자신감도 엿보이는 슬로건이기도 하다.
아무튼 자동차를 말보다 못한 도구 정도로 치부하던 빌헬름 2세는 매우 아이러니하게도결국 몇 년 후 레이서 출신의 운전기사를 고용하고 벤츠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도 이 분 독일 황제라고 독일 차 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헬름 2세의 이 발언은 훗날 자동차의 가치를 가장 크게 오판한, 앞을 내다보지 못한 발언으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고, 이와 반대로 캐딜락은 자동차 산업의 선두주자이자 아메리칸 럭셔리 자동차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 같다.
이 ‘캐딜락’이라는 브랜드 이름은 프랑스 출신 귀족이자 탐험가인 ‘르쉬외르 앙투안 드라모스 캐딜락(Le Sieur Antoine de la Mothe Cadillac)’경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이 캐딜락 경은 미국의 대표 자동차 도시인 디트로이트(Detroit)시를 개척하고 개발한 사람이기도 하다. 성이 캐딜락이라는 것도 멋있게 들리지만 이 자동차 브랜드는 새로운 도시를 개척한 캐딜락 경의 도전정신과 용감함, 유럽 귀족의 이미지 등을 캐딜락이라는 브랜드에 심고 싶었을 것이다.
맞다. 우리의 예상대로 캐딜락의 창업주인 헨리 마틴 릴런드(Henry M. Leland)-캐딜락의 창업주는 (캐딜락 경이 아닙니다) 1902년 회사 창립 당시, 이 미국 도시, 그것도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를 개척한 캐딜락 경의 개척 정신과 기사도 정신을 이어받고자 했다. 그래서 캐딜락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의 요소를 자동차 엠블럼에 그대로 적용시켰다.
이후 100여년 동안 캐딜락은 엠블럼에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였는데 유럽귀족 가문의 문장에서 흔히 보이는 우아하고 강인한 인상의 방패 모양 이미지는 큰 틀에서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1999년 추상주의 작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뜨거운 추상이라고 배웠던 바로 그분! 몬드리안의 삼원색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엠블럼을 제작하였는데 기존 캐딜락의 이미지는 유지하면서 현재 감각에 맞는 심플함을 엠블럼에 넣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깐! 이 몬드리안이 그린 추상화가 얼마인지 아는가? 놀라지 말자. 201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몬드리안의 1929년 작품인 ‘빨강, 파랑, 노랑, 검정의 구성 No.3’가 5056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600억 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캐딜락의 엠블럼은 이 몬드리안의 ‘삼원색 구성 시리즈’를 차용하고 있고, 캐딜락 차주분들은 이런 미술 명작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2014년에는 새롭게 정립한 캐딜락의 핵심가치인 열정(Passion)과 용감함(Brave?), 최고를 추구하는 정교함(Sharpeness?) 등에 맞게 몬드리안 엠블럼을 더욱 간결하고 강렬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한다. 캐딜락의 새로운 브랜드 철학이 ‘아트&사이언스’라고 하니 추상 미술의 명작을 엠블럼에 반영한 것도 이 철학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우리가 캐딜락 차량 앞부분에서 볼 수 있는 방패 모양의 엠블럼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러고 보니 캐딜락의 엠블럼은 다른 자동차 브랜드의 엠블럼에 비해 더 화려한 컬러와 독특한 모양, 격이 다른 예술의 느낌을 갖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캐딜락의 디자인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할리 얼’.
1937년 할리 얼은 GM(이 당시 캐딜락은 미국 자동차 회사 GM의 럭셔리 카 브랜드가 되어 있었다)의 첫 번째 디자인 총괄 책임자가 되어 자동차 디자인에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개념을 불어넣었다.
그 당시 자동차 업체 간의 경쟁은 기계적 성능 중심으로 매우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할리 얼은 여기에 한 발 앞서 디자인팀의 명칭을 ‘아트&컬러’에서 ‘스타일링’으로 바꾸고, 단순한 스케치나 모델링 뿐만 아니라 렌더링과 같은 다양한 방식을 도입하였다.
특히 가공 시간이 오래 걸리고, 디자인의 변형도 쉽지 않아 불편함이 많았던 기존의 나무모형 제작 방식을 버렸다. 나무 모형으로 제작하면 디자인이 잘못되는 경우 나무를 새로 깎아서 모형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리 얼은 변형이 쉬우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클레이 점토’를 사용하여 차체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통해 시간도 절약하고 비용도 절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할리 얼이 이 당시 개발한 다양한 디자인 테크닉들은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자동차 디자인의 기본 방식이 되고 있다.
할리 얼은 1953년 자동차 생산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모터라마 오토쇼(Motorama auto show)를 개최했는데 이때, “캐딜락은 자동차의 미래를 선도하겠다”라고 밝히면서 당시 최고급 사양의 컨버터블 모델인 엘도라도(Eldorado)를 발표하였다. 이때 발표된 엘도라도는 캐딜락을 ‘전설적인 50년대’로 이끌 수 있도록 기여한 모델이기도 한데 우리가 캐딜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연상하게 되는 매끄럽게 빠진 기다란 차체, 그리고 비행기 꼬리 날개 디자인을 접목한 일명 ‘테일핀’을 장착하였고, 이것은 미국 드림카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캐딜락이 만들어낸 세계 최초의 기록들 중에서 필자가 뽑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바로 ‘자동차에 컬러를 입혔다’ 라는 사실이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자동차에 컬러를 입혔다는 말을 들으면 “그게 뭐 어려운 일인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생각 아닌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자동차에 컬러를 입힌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혁신적인 일이었다.
‘자동차의 왕’이라고도 불리는 포드 사 창립자인 ‘헨리 포드’는 캐딜락이 컬러를 입혀 출시한 라살(La Salle)이라는 자동차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하며 비웃었다.
“원하는 색은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단, 검은색에 한해서 말이죠.”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도로 위에 있는 모든 자동차의 색상은 검정만이 존재하던 시기였고 그 누구도 감히 자동차에 색상을 입힐 생각을 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런데 캐딜락의 생각은 달랐다. 1927년 GM과 캐딜락은 ‘아트&컬러(미술과 색채)’ 부서를 설립하고 세계 최초로 디자인 자동차를 시판하기 시작하였고 포드 사의 검은색 일변도였던 ‘모델T’를 압살하는 경쟁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과에 자동차 왕 포드도 적잖이 놀랐던 것 같다. 6개월의 기간에 걸쳐 포드의 모든 생산라인을 전면 중단하고 공장을 재정비했던 걸 보면 말이다. 이후 많은 자동차 브랜드들이 다양한 컬러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디자인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 부드러운 이미지의 배우가 연기한 빈센조의 마피아로서의 강한 힘을 캐딜락이 잘 보완하고 있는 것 같다. (feat. 드라마 PPL)
2. 캐딜락은 새로운 이동수단인 자동차에 표준(Standard)을 제시해 왔다.
3. 캐딜락 엠블럼은 몬드리안(따뜻한 추상, 600억원 작품 화가)의 삼원색 작품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4. 캐딜락은 최초의 스타일링과 컬러 사용으로 자동차 디자인의 새 지평을 열었다. (Designed by 할리 얼)
다음편에 계속! (대중 문화 속 캐딜락, 영화와 캐딜락, 숫자로 보는 캐딜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