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 Aug 15. 2021

국경을 넘는 방법

걱정의 바다를 건너 다른 걱정 속으로 안착하는 과정

비록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나라와 나라 사이를 지나는 것이 어려워졌다지만, 더 오랜 옛날과 비교해 본다면 이미 현재의 상황도 세상을 여행하는 것은 매우 쉬워진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그 초록색 여권을 가지고 더욱더 제한 없이 세상을 여행하기 쉬워진 것이다. 상대 국가에 허가 없이도 여행이라는 명분으로 국경을 지나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온다고 할 지라도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행이라는 과정은 여전히 매우 손이 많이 가는 일에 틀림이 없다. 지낼 곳을 알아보고 날씨에 따라 지낼 날짜에 따라 짐을 챙기고 또 그곳에서 필요할 물건들을 챙긴다. 그것만으로 커다란 가방이 가득 차 버리는데 이게 또 짐에 넣을 수 있는 무게 제한으로 짐을 넣었다가 뺏기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현재 지내는 곳과 다른 날씨를 가진 곳이라면 이것은 특히나 예측과 예상의 연속이 되기 십상인데, 마치 점쟁이가 점을 치듯 날씨 검색을 해도 이것이 실재 온도와 같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다른 나라로 들어간다는 자체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전혀 예상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중에서도 날씨는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인 것이다.


사실 이렇게 보면 언어가 다른 것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아니 이미 상상을 벗어난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면 짧지만은 않은 공항으로의 작은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여기까지가 스스로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가 된다. 짐의 무게를 확인하고 내가 그 나라로 들어갈 자격이 되는지 그 작은 초록색 수첩으로 검사한다. 물론 난 무적의 초록색 여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것은 웬만하면 무사통과될 터이다. 힘찬 미소와 함께 여권 검사를 통과한다. 아직까진 괜찮다. 아직은 난 내 나라에 있으니까. 큰소리 뻥뻥 쳐도 아직까지는 괜찮다. 난 이 나라에 세금 내고 있는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자랑스러운 국민이니까.


두 번의 손잡이 움켜쥠을 끝내면 전혀 다른 공기가 나를 맞이한다. 이게 무슨 냄새인가. 분명 한국은 아닐 것이다. 그 오랜 시간 엉덩이 아픔과 싸워 쟁취한 보상이 이 바로 첫 번째 다른 냄새이다. 떡진 밥과 퍽퍽한 닭고기도 아니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게 옴팡지게 뭉처있는 예쁜 구름 덩이들도 아니고 바로 이것이 나의 첫 보상이다. 다른 공기 속에서 흘러들어온 이 요상한 냄새는 분명 내가 다른 나라에 왔다는 혹은 내가 다른 세상에 도착했다는 첫 번째 코를 향한 전언이다. 이제 당당하게 나아갈 일만 남았다. 나는 모든 것을 준비해 왔으니 두려워할 것은 없다. 국경에서 물어볼 예상 질문들은 이미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모의해 보았고 필요한 서류들은 내 손에 고이 쥐어져 있다. 10년 전에 만들어 놓은 여권 상의 얼굴과 현재 얼굴이 좀 많이 달라져 있을 수 있다는 걱정이 잠시 내 걸음을 방해하지만, 그래도 잘 통과할 수 있으리라고 긍정적인 나를 최대한 끌어낸다.

긴 줄 속에서, 여행은 시작하지도 않았건만, 이미 녹초가 된다.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내 걱정을 읽어서 내가 다른 목적으로 왔다고 의심하지 않을까도 걱정된다.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 최대한 위협적이지 않도록 짜증 난 여행객, 희망에 찬 여행객, 지친 여행객, 혹은 경험 많은 여행객 등으로 나를 연기한다. 이럴 때 핸드폰은 매우 유용하니 미리 와이파이를 준비해 놓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하지만 너무 소셜미디어에 빠져있지는 말도록 하자. 여행 중이며 나는 곧 내 의도를 검사받아야 한다는 것까지 잊어버리게 될 위험성이 있다. 어디까지나 연기를 위한 소셜미디어이므로 종종 옷매무새를 재정돈 하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걱정과 소셜 미디어 중독과의 사이 속에서 헤매고 있다 보면 금세 내 차례가 돌아온다. 그리고 어색한 웃음과 함께 속성 중매가 진행된다. 어디에 묵을 것인가. 아 큰일이다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 내 핸드폰 번호도 내 머릿속에서 숨어버렸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위해 내 철저한 준비성이 내 손에 있는 종이 속에 보관되어있다. 이런 것도 기억 못 하는 것이 의심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별로 신경을 쓰진 않는 눈치다. 사실 시간이 지체되는 것이 더 싫은 눈치이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돌아가는 비행기에 끌려가는 내가 있지만 다행히 현실 세계는 나에게 좀 더 다정하다. 순식간에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는 덩그러니 국경 너머에 있다. 순간적인 긴장이 끝나고 남는 것은 안도와 바로 좀 전의 긴장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나의 "뭐 별거 없네"라는 작은 한숨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제 국경을 넘었을 뿐이며 아직 짐을 찾지도 못했고, 짐을 잃어버릴 확률도 아직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에어컨에 의해 구성된 가짜 날씨는 예상했던 기온이 맞는지 조차 확인시켜주지 않았고 숙소까지의 주소도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핸드폰에선 정부에서 보내온 수개의 문자들이 노래를 부르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제한의 와이파이이지 무제한의 요금 폭탄이 아니다. 이제 한 과정이 끝났고 안심했던 한 순간의 순간도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래도 어쨌든 난 국경을 지나왔고 하늘에서 이미 지났다는 사실보다 더 피부로 느껴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