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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임프리 Feb 15. 2022

타국을 방문하는 여행자의 작은 성의

헬로우? 아니, 메르하바(Merhaba)!


 진지하게 고백하건대 나는 영어를 못한다. '저 영어 못해요'라고 말하면 의례 한국인 특유의 겸손인 줄 아는데, 나는 아니다. 그래도 중고등 교육을 받았는데 기본 문법은 알지만 회화를 못하는 거겠지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영어 시험을 보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점수는 곧잘 나오는 미스터리 한 상황이 수능 때까지 이어져 (과연 이것은 행운인가 저주인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제대로 된 영어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이후 대학 전공도 취업한 회사도 영어와 전혀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그 흔한 토익시험조차 쳐보지 않았다.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니까. 내 영어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게 된 건 서른에 가까워 뒤늦게 해외여행에 빠지고 난 뒤였다.



 지금까지 다녀온 해외 여행지는 아시아권(싱가포르, 상해, 홍콩, 베트남, 태국, 일본), 유럽권(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헝가리, 체코)   아랍에미레이트와 몰디브 등이 있다. 혹시 공통점을 눈치채셨는지? 물론 취향의 문제가  크긴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는 거의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알못의 쓸데없는 고집이라고나 할까. 심적으로 '너나 나나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가 왠지  편하다고 느껴지는 탓이다.



 그리하여, 나는 보통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를 여행하기 전 아주 간단한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곤 한다. 일정이 짧거나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면 적어도 '감사합니다.' 정도는 미리 알아간다.


"Thank you" 라고 말하는 대신,


스페인에서는 Gracias [그라시아스],

이탈리아에서는 Grazie [그라찌에],

포르투갈에서는 Obrigada [오브리가다],

태국에서는 ขอบคุณค่ะ [컵쿤카],


라고 말하기 위함이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싱가포르는 영어권 국가라 할 수 있고, 두 번째로 갔던 일본은 소싯적 관심 있었던 '일드' 덕분에 자동으로 알게 된 몇 마디 일본어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았었다. 이후 내가 본격적으로 영어가 아닌 제3 국의 언어를 사용할 때의 재미와 효용을 느낀 것은 영어 못하기로 유명한 (라떼는 그랬읍니다..) 파리를 여행할 때였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입학할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와 프랑스어중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어디선가 일본어가 처음엔 쉽지만 결국 한자 때문에 어려워진다는 걸 주워 들었던 나는 고민 없이 프랑스어를 선택했다. 한자보다야 알파벳이 낫지 싶어서. (불어가 남성/여성형이 나눠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 할 수 없는 발음이 있는 고약한 언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 덕분에 프랑스어가 아주 낯설지는 않았고, 인터넷에서 '여행 프랑스어'를 검색해 알아낸 짧은 문장을 따라 하는 데에 거부감이 적었다. 물론 10년도 넘은 먼 옛날, 일주일에 한두 시간 수업이 전부였던 제2외국어를 제대로 기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지라 여행 중 사용한 프랑스어는 대개 아주 짧고 기초적인 것들 뿐이었다.



✔️C'est combien? 쎄꽁비엥? (얼마예요?)

    (돌아오는 대답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Merci beaucoup. 멕시보꾸. (정말 감사합니다.)

✔️Excuise moi. 익스뀌제 무아. (실례합니다.)

✔️Je suis Coreen. 쥬쒸꼬레앙.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oui 위 (네) / non 농 (아니오)



뭐 이런 수준.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당당하게 사용했으며 현지인의 반응도 좋았던 프랑스어는 단연, "L'addition, s'il vous plaît." (계산서 주세요) 였다. 아무래도 여행 중에는 식당에서 식사할 일이 많고, 우리나라와 달리 앉은 자리에서 계산하는 문화이다보니 사용할 기회가 많을수 밖에 없었던 것. 불어가 통용되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아서 프랑스 외에도 벨기에, 스위스 등에서도 이 말을 잘 써먹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흐뭇했던 기억은 프랑스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의 일이다.



프랑스 마르세유 뒷골목



 파리와 리옹에 이어 프랑스에서  번째로  도시인 마르세유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이날 저녁 항구 뒤쪽 골목을 거닐다 선택한 식당의 종업원은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어차피 우리도 "디스  플리즈." 정도를 시전 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마저도 소통이 불가능한 그는 우리에게 영어가 가능한 다른 웨이터를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그의 얼굴엔 곤란인지 불쾌인지 모를 표정이 가득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나는 계산을 하기 위해 손을 들었고, 하필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고, 또다시 동료를 부르려던 그에게 "라디씨옹 씰부뿔레" 라고 웃으며 말했는데, 그때 보았던 것이다. 무표정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한 미소로 바뀌며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모습을. ..  순간 얼마나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던지. 벌써 몇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웃는 얼굴과 쌍따봉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요즘은 어딜 가나 웬만한 관광지에서는 영어가 당연하게 쓰인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에서, 쇼핑몰이 아닌 재래시장에서, 젊은 친구들이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그저 한두 단어뿐이더라도 현지어를 건냈을 때 돌아왔던 환한 미소를 기억하는 나는 이번에도 터키 한달살기를 준비하며 간단한 터키어를 공부하고 있다.



"Hello" 대신 "Merhaba [멜하바]" 라고,

"Thank you" 대신 "Teşekkür ederim [테셰큘에데림]" 이라고 말 해야지.



서울 한복판에서 마주친 국적 모를 외국인이 어색한 발음으로 "아뇽하세요" "캄사합니다" 라고 말할 때 어딘지 모르게 다정한 마음이 생기는 나처럼,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터키인 중 누군가는 조금은 더 따뜻한 눈으로 우리를 대해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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