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가들 - 프롤로그
기록가들에서 주제 글쓰기를 시작한다.
이전까지는 늘 주제를 발제하고, 그에 대한 글을 써서 나누어왔다. 이번에는 스스로 쓰고 싶은 주제와 소주제를 정하고, 연재 형식으로 글을 써간다. 처음 시도해보는 형식의 글쓰기 모임이라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역시나 새로운 시작 앞에서는 설렘이 걱정을 압도한다.
요즘은 배우는 삶과 불안의 조화를 찾아 마음이 너무 평화롭다. 조급함을 언어화하지 않으니 마치 없던 일 같다.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고 어떡해 라는 말을 버릇처럼 달고 살 때는 정말 큰일 난 것만 같았는데. 마음이 오늘에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다른 사람들은 늘 이런 상황에서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부러워진다.
최근에 박참새 시인의 정신머리를 읽고
"
내가 나의 아군이라면
나의 마음을 속이지 않고
나의 부족함을 미워하거나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포장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해 인생을 살겠지
나는 나의 아군으로 살아야겠다
"
라는 문장을 썼다.
이 문장을 쓴 후로 나는 아주 많이 자유로워졌다.
나는 지금껏 완벽을 기하다 못해 틀리는 나를 견딜 수 없었다. 내가 헷갈리는 답과 정답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다 내가 고른 답이 오답이라면, 그냥 눈 꾹 감고 맞다고 치부해버리며 찝찝한 동그라미를 긋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에게도 틀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정신머리>의 첫 머리, 시인의 말을 읽고 그 한 문장에 나의 아군이 되기로 결심했다. 나를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포장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순간 지금 못하는 나도 너무 괜찮아졌다.
책 속의 활자를 한참 곱씹다가 나는 조금 더 괜찮은 내가 된다.
배우는 일은 왜 이렇게나 즐거울까?
배우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완전히 나 그자체로만 존재할 수 있다. 무엇을 배우는 지를 떠나 그 자체로 너무 충만하고 기쁜 경험이다. 영원히 반복되는 무지와 앎의 순간이 좋다.
나의 무지를 알아챌 수 있는 앎이 좋고, 세상의 진리라는 것에 조금은 가까워 질 수 있는 진보의 순간이 기쁘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기쁨을 안겨주는
책과 읽는 나를 주제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배우는 주체는 나였으나
가르침을 준 건 늘 내 주변의 책이었으므로
내 키만큼 쌓여있는 책들이 나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지금껏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배움을 얻고 살아왔는지,
무슨 이유에서 그 책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는지
책을 통해 나를 투영해 보고 싶다.
나를 키운 책에게 그런 글을 남길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