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필요한 건 상상력

보이지 않는 생각 위에서 돌아가는 세상

by 데브 마인드

이 개발자의 사고방식 #3


상상이란 단어의 한자는 想像이다. 생각할 상(想), 코끼리 상(象).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머릿속에 먼저 존재하게 만드는 글자다. 보이지 않는 걸 보고, 없는 걸 있는 것처럼 다루는 능력이다. 어느 직업에나 상상력은 필요하겠지만, 개발과 기획 쪽에서는 그 비중이 압도적이다.


왜냐하면 아직, 아무것도 만들어진 게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건 없고, 머릿속에만 있다. 기획자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 설계도를 그린다. 하지만 상상만 하다가 설계도가 한 번에 뚝딱 나오는 일은 없다. 그래서 스케치를 한다. 어느 순간 뭔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상상은 더 거칠어지고 더 구체화된다. 잘못된 게 보이고, 미진한 게 보이고,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다시 고치고, 다시 그리고, 다시 상상한다. 그렇게 해서 기획서가 만들어진다. 그건 종이 한 장이 아니라 수십 번의 생각과 수정이 쌓인 흔적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개발자는 자기가 상상하지 않은 문서를 보고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기획자의 모든 배경지식이 문서에 다 들어 있을 수는 없다. 각자의 경험, 각자의 사고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같은 문서를 보고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다.


상상도 못 할 질문 속에, 기획자는 “이걸 내가 다 써줘야 하나…”라는 말이 목까지 차오른다. 솔직히 말하면 모든 판을 뒤엎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웃으면서 다시 설명한다. 그러다 보면 기획서의 구멍이 보이고, 즉석에서 메울 때도 있고, 못 메우면 다음 회의로 미뤄지고 시간은 또 흐른다. 충분히 이야기했다고 느껴질 때, 그제야 작업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냥 키보드를 두드리면 결과가 나오는 일은 없다. 두드리다 보면 만들어지는 매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코드를 치기 전에 머릿속에서 구조를 다시 그린다. 어떤 구조가 맞는지, 어떤 기술을 쓸지, 외부 모듈을 쓸지, 직접 만들지, 이게 맞는지, 저게 더 나은지 계속 상상하고 부정하고 다시 상상한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십 번의 설계와 파기가 반복된 뒤에야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제야 세상에 뭔가가 나온다. 상상 속에 있던 그 ‘상(象)’이.


그래서 상상이란 건 멋진 단어가 아니라 노동이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일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먹는다.

아무 생각 없이 만든 것은 아무 의미 없이 무너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루 동안 거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눈 뜨고, 씻고, 출근하고, 일하고, 밥 먹고, 또 일하고, 집에 온다. 뭘 볼까, 뭘 먹을까, 어디 갈까는 생각하지만 “무엇을 만들어 낼까”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이 중요하다는 말을 누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생각하는 법을 훈련시켜 주는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생각은 힘들기 때문이다. 집중해야 하고, 불편하고, 머리가 아프고, 결과가 바로 나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다들 피한다. 하지만 상상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건 절대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누군가의 생각 없이 만들어진 적은 없다.


오히려 상상력을 키우면 키울수록, 더 그럴듯한 상(象)이 세상에 나온다. 그 정교한 형체를 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머리를 싸매는 것이다.


왕도는 없다. 눈을 감고 다른 걸 다 치우고 단 5분이라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무엇이 하나 더 나타나면 좋을까.”


5분을 견디면 10분을 버틸 수 있고, 10분을 버티면 30분, 1시간이 된다. 그때부터 그 사람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창조자의 영역에 들어선다.

요즘은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지만 생각할, 시간은 없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생각을 안 하기로 선택하고 있을 뿐이다.


생각은 노동이다. 그래서 가치가 있다.


오늘, 지금 딱 5분만 아무것도 하지 말고 머릿속에 무언가를 그려보자.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생각 위에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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