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직장
첫 직장에서 근무한 지 1년 정도 되던 무렵, 상당수의 동기들이 여러 이유로 퇴사 및 이직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한 번에 나간 것은 아니고 순차적으로 한, 두 명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회사의 한 과장님은 코로나 때 열리지 않던 공고 때문에 살짝 오버스펙인 인재들이 입지가 더 좋은 자리를 찾아 떠난 것이 아니겠냐는 가설이 꽤나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한 동기 형이 이직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 가장 큰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다니면서 큰 문제가 없었기에 괜찮다고 생각했으나, 당시 친하게 지내던 과장님과 몇몇 인원이 충분히 더 좋은 곳을 노려볼 만하다고 조언해 주었기에 이직에 대한 다짐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월급은 꽤 높은 편이었기에 기왕 돈은 덜 받더라도 수도권이나 최소 큰 도시권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공고를 필터링하여 이직 시도를 하였고, 서너 번 지원을 한 후에 지금 다니는 서울 소재의 대기업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직무는 이전에 하던 업무와 어느 정도 연계할 수 있었기에 열심히 어필하여 옮겼으나, 정작 와서 근무를 시작해 보니 업무를 처음부터 정말 새롭게 배워야 했었다. 중고신입으로 입사하였기에 신입이라는 이미지를 방패로 한동안은 사수 아래에서 일을 열심히 배웠다. 내 위의 사수는 당시 정년을 얼마 앞둔 부장급으로, 일적으로는 굉장히 전문적인 사람이었다. 덕분에 나름 빠르게 일을 습득할 수 있었다. 입사 이후로 조직이 몇 번 바뀌기도 했으나, 하는 일은 그대로 어찌어찌 일을 해 나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직 후 서울로 올라와 본가에 들어가지 않고 어머니께서 쓰시던 공부방에서 자취를 했다. 장거리 연애를 하던 전 여자친구와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으나, 심적인 골이 너무 파여 도저히 회복이 되지 않았고 결국 헤어졌다. 사실 그 당시 이직 전부터 심리적으로 너무 불안정하고 힘들어 서울시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해주는 상담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열심히 섰던 바도 크다. 상담을 받으며 스스로가 "자신의 이상"을 바탕으로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직업적으로 연애적으로나 그런 면이 있었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전 연애는 깔끔하게 정리하고 내가 더 좋아하고 날 더 좋아해 주는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