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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유진 Dec 16. 2024

미술관에서 마주한 나

미술치료와의 첫 만남


“나는 영혼에 물을 주러 미술관을 찾는다. 피부에 물이 차오르듯, 영혼이 촉촉해지는 순간을 느낄 때가 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그림과의 대화는 내게 말을 건넨다. 어떤 현자의 말도, 어떤 물질적 보상도 대신할 수 없는 이 대화는 내 영혼을 살찌우고 치유한다. 삶의 무게에 지친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셀프 치유법이 필요하다. 고단한 하루 끝에서 나를 안아줄 무언가를 찾는 그 과정은, 어쩌면 신이 내린 선물을 발견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그린 그림 앞에 서서 한 번 더 묵상한다. Art therapy와 Art in therapy, 그 경계 속에서 그림을 완성해가는 나를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를 치유하지 못한 그림은 다른 누구도 치유할 수 없다. 그림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언어다.


“당신은 오늘, 당신의 영혼에 물을 주었나요?”

미술관을 찾는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매일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에게는 스스로를 안아줄 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다.



미술, 나를 치유로 이끈 운명적인 만남


나는 미술 감상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내면의 균형을 회복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술 작품 앞에 서면 마치 그 그림이 나와 대화하듯, 나의 감정을 건드리고,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대신 표현해주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러한 순간은 내게 심리적 안정과 위안을 준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감상이 아닌 치유의 과정임을 깨닫게 했고, 그것이 내가 미술치료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내가 미술치료와 처음 만난 순간은 한편으로는 우연처럼 느껴졌지만, 돌이켜보면 운명에 가까웠다. 대학 시절,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때에 한 전시회에 우연히 발길을 옮겼다.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색감과 형태가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았고, 대단히 유명한 작품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마치 나의 깊은 내면을 꿰뚫어보고, “괜찮아, 이 또한 지나갈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내가 그때까지 겪었던 그 어떤 조언이나 위로보다 강렬했다.


그날 이후로 미술이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미술작품은 나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되었고, 억눌린 감정을 안전하게 풀어낼 수 있는 창구가 되었다. 이 경험이 나로 하여금 미술의 치유적 힘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해보고 싶게 만들었다. 그 후 미술치료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며 내가 느꼈던 그 치유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다는 소명이 생겼다.


미술치료와의 만남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부르고, 나를 그 길로 이끌었다. 미술치료를 통해 나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은 그 과정을 아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과 나누고 있다.


나는 믿는다. 미술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며, 그 힘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붓 한 자루, 캔버스 한 장만 있어도 된다. 아니, 그저 미술관에 가서 그림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그림이 내게 해준 것처럼, 미술은 누구의 마음도 어루만질 수 있다. 이 깨달음이 나를 미술치료의 길로 인도했듯이, 나는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여정을 함께하길 바란다.


미술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나를 치유했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만남을 영원히 간직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미술로 마음을 나누고, 치유의 순간을 만들어갈 것이다.

https://www.instagram.com/reel/DDn9VZIyIDV/?igsh=aWppdjM3cTdqaW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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