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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의미 Mar 06. 2024

맞춰지지 않는 무한의 조각들

보이는 모든 것을 주워 담을 수는 없다

필요할 것 같은 건 아직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필요 없는 것이다. 물론 내가 필요한 정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살펴봐도 주제에 맞는 내용이 있으면 관련이 없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재료가 많다고 해서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상과 이론과 문장은 늘 사람들의 주인이다. 사람과 정보라는 주종관계에서 사람은 늘 종을 자처한다. 책만 보아도 그것을 읽고 활용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보다 책을 선전하기 바쁜 사람들이 많다. 정보는 가만히 있을 뿐이다.



정보라는 재료로 뭔가를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다.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정보가 유용하든 권위가 있든 무엇이 목적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 삶에 필요해서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지, 어떤 사상을 숭배하기 위해 내 삶을 바칠 필요는 없다.


책에서 유용한 내용이 많아 추려내기 힘들다면 책을 구입해서 여러 번 보는 것이 낫다. 이미 책이라는 정돈된 규격과 매체에 필요한 내용들이 담겨있는데, 똑같은 내용을 굳이 보기 좋게 옮기는 것은 정보를 완전히 소유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것이고 이중으로 시간을 들이는 일이다.



필요한 책을 사야 되는 이유는 내가 모르는 것과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의 흔적이 적은 책은 굳이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중요한 것은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과 자연스럽게 남게 되는 기억이다. 아무리 머릿속에 억지로 집어넣어도 그런 식으로 기억한 것은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차피 그런 식으로 외웠기 때문이다. 뇌는 사람이 정보를 어떤 식으로 다루었는지 기억한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뭔가를 읽고 공부하는 것은 문장을 수집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이 항상 책으로 출판되고 인터넷에 포스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라는 강박은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요즘의 독서는 이해하는 과정을 너무 축소하고 있다. 지식이라는 관점보다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자료로 사용한다. 모든 것을 인증해야 하는 시대의 흐름인가.



한 입만 베어 물고 내던져버린 사과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정보에 침식당한 사람들의 모습은 가히 그 사과와 동등하거나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sloppyperfectionist,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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