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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의미 Feb 15. 2024

모르는 상태에서 글쓰기

탐구심은 알려고 할 때 생긴다

책을 많이 읽으면 교만해지기 쉽다. 남의 것을 쉽게 읽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몇 달, 몇 년을 고생하여 만든 책은 중고책이라면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지식들과 깨달음을 어떤 괴로움도 없이 쉽게 얻을 수 있다. 그게 과연 공부가 되는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글쓰기에서만큼은 가장 이기적인 이유가 결과적으로 남을 위하는 것이 된다. 내가 글쓰기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남들을 위하는 글을 쓸 수 있다.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 때 비로소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나라는 하나의 케이스를 가볍게 여기지 말자. 어떤 책에서는 나라는 존재는 클리셰가 아니라고 했다. 나를 무시하고 남들을 위해 글을 쓰겠다는 것은 어쩌면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남을 위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


작가는 과학자와 비슷하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한다. 모든 것이 시도할 수 있는 주제이자 목표가 된다. 그래서 호기심이 없이는 글을 쓰기가 어렵고, 아는 것만 쓰는 것은 호기심을 잃게 만드는 길이다.


글쓰기는 깨달음을 얻는 길이다.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하며 탐구하는 수행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수행자라는 생각은 없을지 모르지만, 한 장씩 끝도 없이 써지는 글을 보면서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느낀다. 여러 의미로 끝이 없다. 그래서 잘 생각해야 한다. 끝도 없는 길이 즐거움이 될지, 절망이 될지.


주제에 대한 키워드를 생각나는 대로 다 적고, 그것들을 공부하며 채워나가는 식으로 글을 쓰는 것도 좋다. 뭔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깊게 알고 싶다면 글쓰기가 제일이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다. 아무것도 몰라도 글을 쓸 수 있다. 일단 글을 쓰면 모르는 것이 저절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초고를 쓰고 고치다 보면 왜 초고를 먼저 써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완전히 모르는 상태가 오히려 배우기 쉽다.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는 사실이 상황에 따라서는 틀릴 수도 있다. 아는 것이 늘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는 것을 부정하는 일도 있다. 즉, 어떤 지식이 다수의 의견으로 옳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이유가 없어도 쓰면서 찾을 수 있다. 뭔가를 계속 이어나간다는 건 그 자체로 성실한 노력이다. 왜 글쓰기에 매달리는지, 무엇을 원해서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끝까지 써봐야 알 수 있다.


할 일로서 글쓰기보다 궁금해하는 글쓰기가 더 낫다. 할 일이 있다는 위안보다 차라리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쪽으로 행동하는 것이 낫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성취를 바라는 것일까? 노력에 대한 인정일까, 단순한 의미부여일까. 결국 다 인정받기 위한 일에 불과하다는 것일까. 적어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없어서는 계속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지 출처(© claybanks,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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