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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의미 Feb 19. 2024

글쓰기가 잘 되지 않아도

증오를 유지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매일 정해진 양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자신을 탓해야 하는가? 그 누구도 탓하지 말라.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오늘 정해진 양을 채우지 못했다고 해서 다음날에 가중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부담은 스트레스가 되어 나를 누른다. 그것이 쌓이면 자기 비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거울을 보며 그 안에 있는 사람을 향해 비난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큰 힘을 발휘하지만 그 거센 불길은 나를 떠나 주변까지 쉽게 번진다.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 스스로를 몰아넣을 것이 아니라 환경을 정돈하는 것이 우선이다. 눈에 불을 켜고 잘못한 놈을 찾아서 따질 필요가 없다. 어차피 세상은 반쯤 지옥이다. 제발 오늘 한 자라도 쓰지 못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선언은 하지 말자.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어떻게 자유로운 생각이 나올 수 있을까. 어려운 건 알지만 쉽게 하려고 하고, 괴로운 건 알지만 즐겁게 하려고 하자.


마음을 발휘할 곳은 따로 있다. 어차피 생각한 대로 다 되지 않는다. 화낸다고 안 되던 것이 되고, 웃는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괜히 마음을 쓰지 말고 생각한 것이 가능하도록 방향을 맞추고 준비하여 행동하는 것이 좀 더 낫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 인정받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건 나와 상관이 없다. 사람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외부적인 요소일 뿐이다. 개인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만족이다. 만족은 내면의 동기다. 타인은 내면의 동기까지 존중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렇게 반대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것들로 자신의 마음을 채우려고 해도 내면 깊숙한 곳까지는 채우지 못한다. 뭔가를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그 자체로 동기일지는 모르나, 바라는 것 이상으로 강박과 괴로움이 따른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상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 잘하려고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당신이 천애고독한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다면 최대한 고통스럽게 글을 쓰면 된다. 나를 부수지 못하는 건 나를 강하게 한다고 니체가 자신만만하게 그러지 않았는가? 진정으로 세상과 싸워보겠다면 절대로 웃어선 안 된다. 진정한 예술에는 완벽도 완성도 없으니 인간으로서의 행복은 버려야 한다. 그건 신이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영원히 떠돌다가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진정한 예술가라면 타인의 인정 따위는 구하지 않을 것이니) 책상에 엎드려 죽을 뿐이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조금이라도 웃을 일을 늘리는 것이 낫다. 안그래도 답답한 세상에 슬픔을 휘두를 필요는 없다.


때로는 그마저도 필요할지 모른다.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웃음을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나 지켜야 할 것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슬픔을 절망으로 발전시킬 짓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독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글쓰기는 활발해진다. 때로는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인지, 단지 그런 상태를 이용하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 


아무리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감정까지 이용해서는 안될 일이다. 어떤 불행은 나에게 좋은 글감일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불행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오해는 그런 식으로 생겨나고 증오는 그런 식으로 커져간다.




이미지 출처 (© jamie452,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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