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발 자전거
20년 전 네발자전거를 처음 선물 받았다.
처음부터 두 발 자전거는 중심을 잡기도 힘들고 자주 넘어지고 다친다 해서 집에서 보조 바퀴가 달려있는 네발 자전거를 사주셨다. 근데 그 자전거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난생처음 타보는 자전거였으니 속력을 내는 것도 무서웠지만 속력을 낸다고 해도 옆에 있는 보조바퀴가 덜그럭 거려서 자전거를 타는데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점차 타다 보니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생겨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친구들도 다들 자전거 한 대씩은 가지고 있었는데 나 빼고 다들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내가 타고 있는 자전거보다 앞으로 빠르게 나가고 나는 뒤처지면서 같이 가자고 소리치는 상황이 매일같이 보였다. 그러던 중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넌 왜 아직도 네발 자전거를 타??”
“안전하니까! 너네처럼 넘어질 일도 없고!”
“나도 네발 자전거 타다가 두 발 자전거로 바꿨는데 네발 자전거 탈 때 보다 훨씬 빠르고 편해 맨날 뒤에서 뒤처져있어서 같이 가자고 소리치지만 말고 너도 한번 보조바퀴 때고 두발로 바꿔봐”
‘이제야 막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진 내가 보조바퀴를 때고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넘어지지 않을까? 다치지 않을까? 이제야 네발 자전거에 익숙해졌는데..'
하지만 어린 8살 인생. 나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 맨날 뒤에서? 뒤쳐져있어? 나를 뭘로 보고... 나는 달려 나가는 친구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두 발 자전거 타면 너보다 훨씬 앞에서 갈 텐데 잘 따라올 수나 있어?”
생각해보니 한참 자전거를 오래 타봤고 자신감도 생겨서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에 그날 저녁 집에 들어가 양옆에 있는 보조바퀴를 때 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괜찮겠어? 타기 힘들 텐데?” 말씀하셨고 나는 친구들에 놀림에 자존심이 상해 멋도 모르고 생떼를 쓰며 말했다. “괜찮아요! 친구들도 다 보조바퀴 때단 말이에요... 빨리 때 주세요!!” 그렇게 내 자전거는 두 발 자전거가 되었다. 바뀐 거라곤 보조바퀴만 제거한 거뿐인데 뭔가 내 자전거가 한층 더 멋있어 보였다. 잠들기 전 누워 ‘나도 이제 두 발 자전거를 탄다! 나도 이제 앞으로 씽씽 나갈 수 있겠지? 뒤에서 같이 가자고 소리치는 나야 이제는 안녕!!’ 신나고 설레 잠을 쉽게 이루지도 못했다. 그렇게 다음날이 밝았고 두 발 자전거를 타려고 했다.
대참사였다. 양 중심을 잡아주던 보조바퀴가 없으니 페달을 밟다가 넘어지는 건 다반사. 앞으로 나아가다가 땅바닥에 처박혀 무르팍이 까지고 팔꿈치는 쓸린 자국에 피가 나기도 했다. 다시 보조바퀴를 달기에는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생떼를 썼는데... 어린 나의 자존심이 문제였다. 자전거를 타기만 하면 넘어지고 다치기 일쑤였으니 자전거 타기가 무서워졌다. 점차 타는 횟수는 줄어들고 결국 자전거는 타는 날 보다 창고에 처박혀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친구들이 자전거는 어딨냐고 물어봤을 때 차마 “두 발 자전거로 바꿨는데 못 타겠어”라는 말은 못 하겠으니 바퀴가 펑크가 나서 수리해야 한다고 얼버무리면서 넘기는 게 일상이었다. 왜 해달래서 해줬더니 안타냐고 나를 놀리는 할아버지는 야속하고 밉기까지 했다.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니 나도 타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그 비싼 자전거를 창고에 처박아놓는 게 맘에 안 들었던 할머니는 계속 타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안장에 뭍은 먼지를 닦고 내 자전거는 다시 창고에서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보조바퀴를 없애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내 자전거 뒤편에서 꼬리를 잡아 넘어지지 않게 도와주셨다.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했다. 이미 친구들은 다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친구들과 같이 놀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씩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물론 넘어지면 다치고 아프니 보호대를 차긴 했지만 그래도 상처가 나는 건 피하지 못했다.
매일매일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면서 뒤에서 잘 잡아야 해, 놓으면 안 돼 소리치면서 계속 연습했다. 자전거를 타다가 불안해 뒤를 돌아보며 잘 잡고 있지?라고 물으면 잘 잡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앞만 보라는 할아버지 대답과 함께.
정말 뻔하디 뻔한 결말이지만 어느 순간 할아버지는 뒤에서 내 꼬리를 잡지 않으셨다. 처음 네발자전거를 탔을 때 중심을 잡아주던 보조바퀴 없이 난 두 발 자전거를 자유롭게 탈 수 있게 됐다.
어릴 적 자전거를 처음탄 과거를 생각해보니 지금도 인생이란 자전거를 타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중심을 잡아주던 보조바퀴도, 넘어지지 않게 뒤에서 꼬리를 잡아주는 사람도 없는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어른이 되니 땅에 처박혀 무릎이 까지고 팔꿈치가 쓸리며 피가 나는 게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픈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인생을 창고에 처박아놓을 순 없는 노릇이다. 지금도 주변 사람들은 달리고 있고 그 사람들에게 뒤져치지 않기 위해선 자전거를 타야 한다. 중심을 잡아주는 바퀴가 없어도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땅에 처박혀 무릎이 까지고 팔꿈치가 쓸려도 이 자전거는 결국은 타야 한다. 가끔씩 힘들 때 네발 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로 바꾸며 수많은 시련을 겪었던 때를 생각한다. 뻔한 결말이었지만 결국 잘 타게 됐으니 인생이란 자전거도 수없이 도전하고 일어난다면 결국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뒤처지지 않으려면 타내야 한다. 인생이란 자전거를 창고에 처박는 건 너무나도 어리석다. 넘어지고 다쳐도 두려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나 스스로 힘차게 페달을 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