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로 시작하자면, 내 MBTI는 ISTJ이다. 나는 내향적이고, 실존적인 생각을 많이 하며, 감성보다는 이성에 충실하고, 되도록 계획적으로 행동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극히 효율적인 것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내 기준에서 쓸데없다고 판단되는 것이면 관심을 잘 갖지 않는 성격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에게 다소 냉정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지 않았다. 환자들과 보호자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기는 하였으나, 내 기준에서 보았을 때 부질없다고 여겨지는 걱정이나 의문을 마주칠 때면, 그들을 안심시켜 줄 도의적 의무가 나에게 있음을 의식함과 동시에, 왜들 저럴까 하는 생각이 꼭 한 번씩은 고개를 들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또 생각나는 다른 점 하나는, 나는 내 곁을 떠나간 환자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법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퇴원을 하였거나, 아니면 재활치료를 지속하기 위해 다른 병원으로 전원한 사람들에 대해 다시 떠올려 보고 먼저 궁금해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계속되는 와중에 내 눈앞에 있는 환자들에게 집중했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주변의 동료 의사들 중에는 퇴원한 환자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먼저 알아보기도 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나에게 그 정도 여유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성격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적인 의료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으로서 지나간 환자들을 돌아보는 것이 의무는 아니지만, 이런 글을 적는 이유는 시간이 생기면서 약간의 죄의식 비슷한 것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 나는 환자들이 불편해하고 걱정하는 것들 중의 최대한을 해결해 주고자 최선을 다하였지만, 떠나가는 즉시 관심을 거두어버리게 된다면,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진정으로 대한 것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고는 하는 것이다.
사실 부끄러운 점이 하나 더 있는데, 나를 좀 힘들게 했던 사람들일수록 떠나간 이후에 신경을 덜 쓰게 되는 경향이 더 심해지지 않았나 싶다. 치료과정에 잘 따르지 않거나, 보호자가 극성이거나 하는 경우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그들이 퇴원할 날만 기다리며 도피를 꿈꾸지는 않았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여기에 모든 내용을 적어낼 수는 없지만, 당시에 그런 환자들을 대할 때에는 솔직히 너무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흐른 지금은 가끔 그분들이 떠오르는데, 이제는 그분들이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조금은 이해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난 후이기 때문에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나는 제삼자처럼 보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헤어짐과 동시에 관심을 바로 꺼버리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이해를 해 보았다면 지금의 마음이 더 편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한 달 전쯤인가, 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들을 강하게 하게 된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눈에 익숙한 한 중년 여성이 버스에 올랐었다. 그때 나는 운전석에 가까운 위치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기에 그 여성이 버스에 타며 나를 아주 가까이 지나쳤고, 서로 눈도 마주쳤으나, 나는 강한 기시감만 느낀 채로 그냥 서 있었다. 몇 분이 흐른 후 곰곰이 되짚어 보다, 그분이 내가 맡은 소아 환자의 부모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여러 군데에서 재활치료를 받느라 저분도 계속 고생이 많겠군, 하는 생각을 하며, 인사를 한번 드려볼까 하다가 속으로 관두었다. 그 아이의 입원치료 당시에도 보호자와 나 사이에 힘든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인사를 드린다고 그 보호자분이 그 기억을 가지고 싫어하지는 않을 것을 알았지만, 괜히 나 스스로, 내가 그 보호자분 때문에 힘들어했고 그와 더불어 바로 잊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왠지 모를 죄의식이 들어 다가가기 힘들었던 것이다.
사실 이번에 쓴 얘기는 굉장히 모호하고 어찌 보면 부질없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이 글을 읽고 뭐 그런 것을 다 신경 쓰느냐 할지도 모르겠고, 나도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지난 일을 빨리 잊어버리는 게 눈앞의 일을 마주하는 데에는 더 효율적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말로, 적당히는, 지나간 일을 반추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 나조차도 모르겠지만, 내가 사람들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그저 그런 일터의 시간으로만 남기를 바라지는 않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