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세르비아 청년’ 그거 맞죠
얼마 전 폐막한 도쿄올림픽에서 우리 여자배구팀이 세르비아와 두 번이나 경기를 했다. 외국에서는 저작권 문제때문에 한국 올림픽 중계를 볼 수 없어 이번 올림픽에 대한 나의 관심과 열정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지만, 세르비아와의 여자배구 경기에 만큼은 어쩔 수 없이 관심이 갔다. (물론 시차때문에 경기를 보진 못했다.) 세르비아전 전후로 한국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카톡도 많이 받았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세르비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 세르비아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 역시 이곳에 오기 전까지 마찬가지였다. 테니스를 치지 않아 유명하다는 세르비아 선수 조코비치도 잘 몰랐던 나의 경우, 세르비아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지식은 중학교 사회시간 세계 1차 대전에 대해 배운 것이었다. 아마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건 이후 1차 대전이 일어났다”고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사라예보가 어딘지(세르비아가 아니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땅이다.), 세르비아 청년의 이름은 뭔지(가브릴로 프란치프였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는 왜 살해한건지(되게 복잡하다.) 등등 맥락은 없이, 저 한 문장만 내 머릿속에 박혔고, 세르비아에 간다고 하니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아무튼 나는 직장때문에 당분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살고 있고, 약 6개월 간 살아본 경험으로는, 세르비아는 안전하고 매력이 많은 나라다. 내륙국가라 바다가 없어 관광객은 많이 없지만, 대신에 산이 많아서 요새 코로나19 때문인지 한국서 유행이 된 ‘숲캉스’를 할 수 있다. (물론 세르비아에서 제천 리솜포레스트처럼 모두 갖춘 깨끗한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음식은 소금 빼고 요리해달라고 하지 않으면 간이 세긴 하지만, 인당 5-7만원이면 파인 다이닝에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 물가가 싸다. (특히 술! 고기!) 세르비아 사람들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사실 친절하고, 약간 정직하기도 하다. 그리고 편리한 점은, 쇼핑몰, 음식점, 마트 어디를 가도 대체로 영어가 잘 통한다.
세르비아는 무엇보다 와인이 맛있고, 싸다. 한국에는 세르비아 뿐만 아니라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등 발칸 반도에서 생산된 와인이 거의 수입되지 않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지만, 와인 생산에 적합한 토양과 기후를 가진 세르비아 와인들은 저렴한 가격을 고려하기 이전에 일단 맛이 좋다. 여기서는 한 병에 우리 돈 2만원 정도 되면 선물용으로 꽤 괜찮은 와인으로 보기 때문에 좋은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참 많다. 덕분에 한국에서 소맥마시던 것처럼 세르비아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다.
세르비아 코로나19 상황은 어떨까? 작년 말 한때 일일 신규확진자가 8천명(세르비아 전체 인구는 7백만이 채 안된다.)에 이르기도 했다지만, 다행히 내가 세르비아에 온 올해 2월부터는 신규 확진자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고, 백신 접종률도 약 40%로 꽤나 높은 수준이었다. 최근까지 코로나19가 거의 종식되는 분위기였는데, 몬테네그로, 그리스, 크로아티아 등등 바닷가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온 사람들 중심으로 다시 유행이 번져서, 오늘 내일 중 신규 확진자가 몇 개월만에 다시 천 명이 넘을 것 같다. 천 명이 넘으면 가게 영업시간도 제한하고 술집, 클럽도 다 닫는다고 하는데, 어차피 지금도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많은 곳을 즐겨찾진 않지만 괜히 심란하다.
어쨌든, 인생을 살면서 세르비아라는 (우리 입장에서는) 흔치 않은 나라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내 삶을 기록도 할겸, 세르비아와 발칸 반도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는 마음에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앞으로 내가 살고 있는 세르비아와 주변 나라들의 흥미로운 점들, 특이한 점들, 어딘가 이상한 점들, 배울 점들, 느낀 점들을 적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