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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Aug 04. 2023

너 인터넷에 글 올리니?


어느 날, 검찰청에서 함께 근무했었던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라 반가움반 놀라움반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일상적인 안부인사 뒤에 동기가 내뱉은 말이 충격적이었다. 



너 혹시 인터넷에 글 올려?


[나] "무슨 글?"

[동기] 브런치인가? 네가 검찰청에서 있었던 일 올렸던걸 후배가 나한테 보내주더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읽어보면 너인지 다 알잖아.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이었다. 

나는 이미 그들에게 잊힌 존재였을 테고, 나름 익명성을 지키며 글을 썼음에도 어떻게 찾아낸 것인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까마득히 먼 후배 기수의 수사관들이 '나'의 존재를 찾아내어 타고 타고 동기에게까지 연락을 한 것이었다. 클로버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가슴이 잔뜩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나의 글의 요지는 꼭 그런 류의 일이 있었다가 핵심은 아니었으며, 그 이야기는 글의 일부분일 뿐이었으나 그들에게는 그 사건이 꽤나 재미있는(?) 사건처럼 퍼진듯했다. 이미 A선배에게까지 글이 공유되었다니 그야말로 볼 사람은 다 본 것이었다.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에 맺혀있던 것들을 풀어쓰다 보니 자연스레 나왔던 것들이, 왠지 뒷구멍(?)에서 몰래 쓴 글이 되어 들킨 것처럼 된 상황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탐정놀이하듯 나를 유추해 냈을까? 

술자리에서 나를 안주삼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해댈까? 글에 나온 사람들은 주변에 뭐라고 했을까? 


아는 사람들에게 나의 치부까지 들킨 느낌이라 수치스러움이 몰려왔다.




브런치에 내 공간을 만들고 직접 글을 쓴 것도 나다.

익명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교감할 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런데 그 감정을 수치스러움이라는 밀물과 같은 감정이 뒤집어 삼켜버렸다.  


그러나 한참을 나의 브런치 공간을 방치한 채 지낸 나의 결론은 더 이상 피하지 않겠다는 것. 


이제 뒷구멍이 아니라 앞구멍으로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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