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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Jun 15. 2024

생일은 몇 살까지 축하받을 수 있을까?


나의 생일이었다.

남편은 해외출장으로 전 날 주말 가볍게 생일파티를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냥 즐겁지만도 않고, 어릴 때처럼 설레지 않는 생일이지만, 그래도 이런 날을 핑계로 바쁘게 살던 친구. 지인들과 연락하니 그런 의미로 어른의 생일은 또 다른 기쁨인 듯하다. (물론 생일선물로 카톡 기프티콘을 주고받는 게 품앗이라고는 하나,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데 사는 게 바빠 좀처럼 연락하기 힘든 지인들과는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열흘간의 출장을 마치고 남편이 돌아왔다.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데 시가 쪽 사람들 중 누구 하나 나에게 축하한다는 연락 한 통 없었던 게 생각이 났다. 내가 작년 시누 생일을 챙기지 않았나? 싶어 찾아보니 역시나 주고받은 메시지가 있다. 시부모님은 찾아뵀는지 연락을 드렸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당연히 전화드리고 용돈을 보내드렸다.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나?


슬프게도 이전의 일들이 있으니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갑자기 아무도 연락이 없으니 찜찜한 기분이었다. 남편은 너무 한다며 본인이 연락을 해보겠다 했지만, 사실 '왜 내 생일 안 챙겨주었냐?'라고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 그냥 넘기자했다.


하지만 남편 역시 시부모님이 우리에게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으니 그걸 풀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안부인사로 가볍게 대화를 하던 남편이 말했다.


[남편] "아버지, 이번에 클로버 생일에 아무도 축하한다는 연락 한통 없었다는데... 제가 더 서운하네요."
[시아버지] "아, 잊어브렀다. 그리고 니들 결혼한 지도 꽤 됐고 나이도 먹었는데 뭐 축하해줘야 하나?"
[남편] "아니.. 이번에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길래 저희에게 뭔가 서운한 게 있으신가 했어요."
[시아버지] "XX야, 니 와이프가 우리한테 잘하는 줄 아나? 우리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른 집이랑 비교해 보면 어디다 말도 못 한다.
[남편]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거리가 멀어서 자주 찾아뵙진 못해도 연락도 드리고 잘 지내고 있었잖아요.."
[시아버지] "그건, 내가 이전에 니네들한테 말했듯이 너희들에게 완~전 무관심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 속이 편하다! 니들한테 무관심하니까. 근데 말이 나오니 하는 말인데.."


시아버지는 니들한테 무관심하니 속이 편하다는 말을 반복하시더니 갑자기 다다다- 나의 잘못을 지적했다. 내가 통화를 할 때 남편과 같이 하고, 이번에 시어머니가 여행 가셨는데 집에 있는 시아버지에게 연락한 통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본인이 입원했을 때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니들한테 무관심하니 속이 편하다고 끝맺음하셨다.




우리 집에 연락할 때도 남편과 함께 드린다.

어쩌다가 남편 출장과 겹치게 시어머니가 여행을 가셨다는 말을 듣고는 바로 연락을 드렸다. 


'사진이 너무 잘 나와서 프사감이에요~몸은 괜찮으세요? 다음에는 저희랑 같이 가요!' 


그런데 집에 있는 시아버지에게까지 연락을 드릴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이 짧은 건가?

시아버지가 지병과 같은 질환으로 입원하셨을 때 남편과 함께 간다고 하니 시어머니가 못 오게 하셨다. 시가 쪽 개인적인 사정이 있기도 하고 오빠만 오라고 하셔서 나는 연락만 드렸다.



결국은 또 그놈의 '연락'이 문제인 것이다.



생신, 명절, 어버이날은 당연하고 함께 드리는 안부인사는 우리 집과 비슷하다. 결혼 초기처럼 시가문제를 부부싸움으로 만들고 싶지 않기에 '그렇구나' 하고 시아버지의 말을 넘기기로 했다.


남편에게 장난으로 이번에 시아버지 생신 때 내가 잊어버렸다고 연락 안 드리면 뭐라 하실까? 30~40대 생일은 안 챙겨도 되고, 50~60대는 꼭 챙겨야 하나? 얘기하긴 했다. 남편은 꼭 그렇게 복수(?)를 하고 싶냐고 했지만 내가 마음이 쪼잔한 건지 시가 때문에 남편까지 살짝 미워지려는 걸 그런 농담으로 넘겼다.






생일이야 당연히 잊어버릴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시아버지의 답변에 마음이 아팠다. 너희들에게 '무관심'하다? 왜 굳이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에게 "난 너희에게 무관심하게 지내니 내 마음이 편해!"라는 말을 하는 걸까. 우리는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잘 지내기로 했던 게 아니었나? 생각에 화도 났다.


이제는 나도 결혼한 지 거의 10년이 되었고 '젊음'이라는 단어와 점점 멀어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결혼 초기 몇 년을 시가문제로 남편과 매일같이 싸웠던 일은 절대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쉽지 않지만) 남편과 시부모님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나는 내가 정한 방식대로 살 것이다. 그래서 이번일로 인해 예쁨 받으려 더 자주 연락드리거나, 서운해서 연락을 끊거나.. 나와 다른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가족에게 상처받지 않기로 다짐했으니까.


다만 시부모님은 본인들의 행동에 따라, 내가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텐데.. 그걸 왜 모르는지, 같은 시기를 겪어왔음에도 며느리가 생기면 잊어버리는지 참 안타깝다.




'귀한 집 남의 자식'을 끝으로 이런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했는데 할 곳이 없으니 또 글을 써버렸다. 모든 귀한 집 나의 자식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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