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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Aug 22. 2023

'세계의 극한직업'을 보면 박정희가 생각난다


아프리카 서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시에라리온의 한 시골마을. 10살 꼬마부터 60대 어른까지 수십여 명이 아침에 일어나면 승용차부터 버스, 대형트럭이 왕래하는 마을 인근 황톳길에 모인다. 이들이 하는 일은 고온다습한 날씨에 비까지 내리면 질퍽질퍽한 도로를 삽질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차가 잘 다니도록 도로를 정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물이 고인 웅덩이를 더욱 깊게 파 차들이 빠지게 만드는 일을 한다. 특히 대형트럭은 웅덩이에 한번 바퀴가 빠지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럴 때 운전사가 마을 주민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이들은 얼마를 지불할 수 있을지 흥정한다. 그리고 만족할 만큼 돈을 받으면 여러 명이 달라붙어 트럭을 꺼내준다. 이들은 하루종일 이런 일만 한다. 이들도 처음엔 좋은 뜻으로 시작했으나 사례금을 주자 돈 맛에 들어 아예 함정을 파놓은 것이다.

간신히 차를 빼내 다시 울퉁불퉁한 황톳길로 나선 운전사는 “가족과 함께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저렇게 빼앗기는 돈도 쾌 많다”며 “정부는 대체 무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쉰다. 시에라리온뿐만 아니다. 이런 일은 중남미에서도 흔하다.


요즘 가끔 재방송되는 리얼다큐 ‘세계의 극한직업’에 나온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간혹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 이 프로그램을 보면 ‘내가 복에 겨워 투정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EBS에 하는 ‘극한직업’도 있지만 ‘극한’의 차원이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우리나라 극한직업은 선택이지만 세계의 극한직업은 그 나라의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가 사회간접시설 개선과  경제개발을 외면해 개인의 삶을 극한으로 내몰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다.


세계의 극한직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놀라울 정도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아프리카 가나에선 여섯 명의 아이를 둔 30대 후반의 어머니가 남편을 잃고 빗물이 새는 손바닥만 한 움막에서 산다. 그의 직업은 채석장에서 돌을 깨는 일이다. 그것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젓먹이는 등에 업고 다섯 아이와 함께 온종일 돌을 깬다. 아이들은 학교 갈 꿈도 못 꾼다.

 

남미 페루에선 섬에 들어가 비료의 원료가 되는 엄청난 양의 새 배설물을 옮기는 남자들도 있다. 배설물이 부패되면서 지독한 악취를 풍기지만 이들은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하루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 일을 마칠 때까지는 뭍으로 나갈 수가 없어 삭막한 환경의 야전침대에서 숙식한다.



이밖에도 한쪽다리를 잃은 남자가 도로를 수선하는 일로 팁을 받아 가족이 먹고살거나 수백 척의 고기잡이 배가 들어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치는 것처럼 수백 명이 목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속에서 양동이로 생선을 나르는 직업도 나온다. 고물어선이 뒤집어지기라도 하면 수십 명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헌데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것은 트럭과 버스 운전사 등 ‘길 위의 인생’이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등 상당수 나라들의 주요 도로는 우리나라 50년대 만도 못하다. 마치 일부러 운전자의 인내심과 차량 성능을 심어하듯 최악의 도로상태에 100km를 가는데 2박 3일이 걸리는 곳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목숨을 걸고 길을 나선 운전사들의 험난한 여정과 열악한 삶을 보여준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운전대를 잡은 그들의 고행길을 보면 선풍기를 켜놓고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자세로 TV를 시청하는 내 손에 땀이 날 만큼 스릴 있다. 

협곡의 벼랑 끝에 매달린 듯한 1차선 도로는 수시로 바위가 떨어지고 폭우가 쏟아지면 그 벼랑길이 유실돼 임시로 이어 붙인 통나무(그것도 양측 바뀌아래 두개씩) 위를 곡예하듯 지나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한 차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 나라들은 대체로 수시로 비가 쏟아지는 고온다습한 기후라 좁은 황톳길 진수렁에 버스나 대형트럭이 빠지면 5시간 이상 도로가 완전히 차단되는 곳도 있다. 더구나 차들이 모두 수십년된 형편없는 고물이다 보니 꼼짝달싹하지 못한다. 

산간벽지의 얘기가 아니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그렇다. 포장된 도로는 극히 일부다. 이들 운전사들에게 고속도로는 언감생심이다. 도로도 아스팔트 포장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도로정비만 해줘도 감지덕지한다고 했다.

난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생각했다. 국가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를 비롯해 전국에 거미줄처럼 깔려있는 도로인프라를 갖춰놓지 못했다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문턱은 커녕 세계의 극한직업 한국 편이 나왔을 수도  있다. 마치 북한처럼.


박정희는 1964년 독일을 방문해 아우토반을 보며 경제적 효용성을 인식하고 고속도로 건설을 결심했다. 당시 야당과 언론은 물론 정부 고위층에서도 극렬히 반대했지만 그는 고속도로 건설에 꽂혀 경부고속도로 추진에 올인했다. 1968면 2월 착공한 경부고속도로는 완공목표를 거의 1년이나 앞당긴 1970년 7월에 개통됐다.


1960년대는 시골에선 식량이 없어 ‘보릿고개’라는 말이 나올 만큼 우리나라가 최빈국이었던 시절이다. 후에 ‘누더기 고속도로’라는 말도 나왔지만 당시 가난한 나라살림에 허술하게나마 고속도로를 만든 덕분에 경제발전의 기틀이 마련됐다.


이후 도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못지않은 거미줄 같은 사통팔달의 도로인프라를 갖췄다. 도로가 닦이고 산업기반시설이 전국 각지에 들어서고 물류운송이 쉬워지면서 차량의 속도만큼 경제도 빠르게 성장했다. 지도자의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이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의 경제적 역량을 바꾼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도로가 낙후돼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데도 변화가 없는 나라가 잘살리 만무하다. 세계의 극한직업엔 전 세계 행복지수 1등이라는 부탄의 한 운전사의 사례도 소개됐다. 


그는 영업용 SUV차량에 사람도 싣고 생선도 실어 나른다. 좁은 공간에 7명이 탄 SUV차는 늘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도로사정이 엉망이라 비가 조금만 쏟아져도 산길이 침수돼 진흙탕에 빠지면 승객들이 밀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온갖 역경을 헤치고 목적지에 도착한 운전기사는 “부탄의 행복지수가 1등이라는 말을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다”며 “다른 것은 물라도 나라가 방치한 도로에서 고생을 겪는 국민들이 과연 행복을 느끼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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