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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May 28. 2024

내 마음 좀 들어 볼래?

“엄마, 교복 나왔어요.”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큰아들의 교복이 드디어 나왔다. 지내는 곳이 농촌이라 그런지 여기는 교복집이 나주에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교복집 사장님께서 나주, 영암의 중학교를 하나씩 순회하며 직접 아이들 치수를 재러 다니시고 교복이 완성이 되면 학교로 보내주시는데 드디어 아들의 학교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 아들의 교복을 보며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입학하기 전 교복을 맞추는 것이 큰 행사였다. 어느 집이 교복 치마를 짧게 해 준다더라, 어디가 허리 라인을 좀 더 예쁘게 잡아준다더라 하는 소식을 서로 나누며 제일 예쁘게 맞춰준다는 곳을, 떨리는 마음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라떼는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딱 붙는 교복이 유행이었는데 엄마는 한 번 맞추면 조금이라도 오래 입히려고 넉넉하게 맞추려고 했고 나는 조금이라도 짧으면서 더 타이트한 교복을 맞추기 위해 실랑이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는 교복집도 많았지만 학생수가 워낙 많았기에 교복을 맞추고 3주 정도 기다려야 받을 수 있었는데 그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빛깔 반지르르한 교복을 받아 본 순간 예쁘게 입고 입학식에 갈 생각에 설레며 밤잠 설치던 그 시절. 아들의 교복을 보니 풋풋하면서도 싱그러웠던 그 시절이 생각나 괜스레 마음이 말랑말랑 해 진다. 우리 학교 교복은 예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터라 교복만 입으면 어깨가 으쓱했었는데.. 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이런 엄마의 마음과는 달리 정작 옷의 주인은 교복을 봐도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윈드오케스트라가 특색사업으로 있어 전교생이 단복을 절기마다 하나씩 받는다. 게다가 체육복은 무려 흰색 선 세개가 반듯하게 그려진 때깔 좋은 체육복이다. 교복뿐만 아니라 요즘은 아이들의 활동의 편의를 위해 생활복도 있다. 학교에 입고 갈 옷이 이렇게 차고 넘치니 교복을 맞추고도 일 년에 몇 번 안 입는 애들도 있다고 하고 등하교하는 아이들을 봐도 교복을 단정히 입고 다니는 아이들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체육복 입고 등교했다간 교문 앞에서 학주에게 끌려가 군인이 연병장을 돌 듯 운동장을 열심히 돌았었는데, 요즘 아이들의 옷차림이 자유분방한 것을 보며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아무튼 아들의 교복을 보며 내일 아침 멋지게 교복 입은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첫 교복샷을 찍어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날을 기다렸는데...




교복을 입고 그 위에 체육복 점퍼를 걸치고 나타난 아들. 그렇게 외투를 챙겨 입으라고 할 때는 귀찮다고 입지도 않고, 때에 맞지 않는 얇은 점퍼를 입고 다녀서 속 시끄럽게 하더니 더운 날씨에 왜 굳이 점퍼까지 갖춰 입고 다니는 건지 원.

출근 준비로 너무 바쁘지만 그래도 아들의 첫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아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핸드폰을 찾아들고는 아들을 향해 가져다 댄다.

“아들, 교복 입은 첫 모습 좀 남기게 체육복 좀 벗어봐.”

“아, 사진 좀 찍지 마!”

두둥! 뭣이라고? 

아들의 짧고 강한 그 한마디가 그 어느 때보다 비수가 되어 마음에 꽂힌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카메라만 들면 자기 사진 찍어 달라며 얼굴을 들이밀고, 예쁜 표정, 웃긴 표정을 지어주던 아이였는데... 작년 2학기 공개수업 때 사진 찍지 말라는 아들의 단호한 말에 아, 이젠 내 맘대로 사진을 찍을 수도 없는 때가 왔구나 싶었다. 아들의 생각을 존중했고, 본인이 사진 찍고 싶지 않다는데 내 욕심을 차리자고 아들과 실랑이하고 싶지 않아서 내 핸드폰 속 큰 아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 찍더라도 뒷모습만 몰래몰래 찍거나 얼굴이 나오지 않게 찍어 아들에게 확인을 시켜주고 아들이 허락하는 사진만 저장할 수 있었다.

그런 생활을 한 지 오랜데 오늘은 왜 이렇게 속상하고 서운한 건지.

“야, 엄마가 너 교복 처음 입은 모습 간직하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맘스다이어리에 오늘 일을 기록할 때 사진도 함께 넣으려고 하는 거고. 너 진짜 좀 너무 하다.”

엄마의 서운하다는 말에도 아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본인 볼일만 보고는 쿨하게 방을 나간다.

서운하다. 너무 서운하다. 이게 뭐라고, 어디 공개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좀 간직하고 싶다는데, 교복 입은 듬직한 아들, 멋진 아들 사진으로 좀 남기고 싶다는데 이게 그렇게까지 버럭 할 일인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엄마, 저 학교 다녀올게요.”

대답하기 싫어서 못 들은 척했는데 두 번째는 차마 그럴 수 없어서 얼굴을 쳐다도 보지 않고 “응”이라고 가볍게 대꾸해 준다.      


미소가 참 예뻤던 아들. 이 미소...어디로 간거니


오전 내내 기분이 별로다. 나는 또 왜 이러는 걸까. 아들이 싫다고 하면 ‘싫음 말아라.’ 라며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인데 왜 하루 종일 이리도 마음이 쓰이고 속상하고 서운한 걸까.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 빨리 크는 것 같아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전에는 막내가 크는 모습이 아까워서 ‘조금만 천천히 커라’ 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큰 아이 커가는 모습이 아깝고 아쉽다. 꼬꼬마 아가였던 아이가 이제는 키도 나만큼 커지고, 몸무게도 나보다 많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앳되었던 목소리가 이제는 제법 굵은 목소리를 내는 아들을 보며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놓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시간을 붙잡을 수 없으니 지금 이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카메라를 든다는 것을 아이는 모르겠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이 시간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데, 어제 내가 뭘 했는지조차 더듬더듬 기억해 내야 하는 나이가 된 엄마가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선 카메라는 드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아이는 모르겠지.    



“네 마음을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엄마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 그러니까 네 마음을 좀 솔직히 엄마에게 이야기해 줘.”

늘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이제는 내가 큰아이에게 조금 솔직히 이야기 해도 될까? 한 순간 한 순간 너와 함께 하는 이 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너무 빨리 커버리는 것 같아 아쉽고 아깝다고. 넌 나에게 그런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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