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깊이있는 찍먹을 위한! 영화 소스 디핑입니다.
영화 얘기보다 영화를 핑계로 그 내막에 있는 여러 가지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길 더 좋아하는 괴짜즈 디핑. 지난 번에 이어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대한 소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영화 <삼토반>의 모티브가 되는 여러 인물과 사건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이 있죠. 바로 주인공들의 회사에서 시골 마을에 페놀을 몰래 유출시킨 것이었어요. 지난 번에 소개해드린 이자영 캐릭터의 모티브와 마찬가지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요. 감독의 인터뷰에서, 해당 사건을 가져와 이야기를 이은 까닭을 밝히고 있어요.
Q : 영화에 등장하는 페놀 방류 사건은 실화인가요?
A : 영화에서 자영이 목격하는 폐수 방류 사건은 지난 1991년 3월 세상에 알려진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은 경상북도 구미시에 위치한 두산전자의 페놀원액 저장 탱크에서 30톤의 페놀원액이 낙동강 상수원으로 흘러들어 수돗물을 오염시킨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당시 환경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커졌고, 두산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는 듯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고 한다. 감독은 90년대에 불기 시작한 세계화의 이면에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다가 페놀 사건을 가져왔다. 폐수가 펑 터져 나오는 이미지가 중요했다고.
오늘 디핑은 바로 이 사건을 따라가 볼까 합니다. 그와 동시에, <삼토반>의 주인공들이 자처해야 했던 내부고발자에 대한 최근의 이야기도 함께 보려고 해요.
두산전자 페놀 무단 방류 사건
세상을 바꾸는 내부 고발자들
✔ 두산전자 페놀 무단 방류 사건
1991년 3월 14일의 경북 구미. 시민들은 수돗물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취를 느끼게 됩니다. 문제를 신고했으나 취수장 측은 원인을 제대로 찾지도 않은 채 염소를 다량 투입*합니다. 뒤늦게 밝혀진 원인은 두산 전자의 페놀수 유출이었어요.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며 페놀수가 유출되고 만 것이죠. 무려 8시간이 넘도록 새어 나왔으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페놀 자체는 향긋한 냄새를 풍긴다고 해요. 하지만 페놀과 염소가 결합하면 클로로페놀이라는 물질이 형성되는데, 이 물질의 냄새가 아주 불쾌하거든요. 원인을 초기에 발견하지 못해 사건을 더욱 악화시킨 셈입니다.
정부에선 페놀 사건이 단순 과실일 뿐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20일 만에 중단되었던 조업의 재개를 허용합니다. 하지만 4월 22일, 페놀 송출 파이프가 또다시 파열되며 페놀 원액 2톤 가량이 낙동강에 유입되는 2차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1차 사건보다 훨씬 다량의 유출이 발생한 만큼, 낙동강을 식수로 이용하는 영남 지역 전체로 문제가 확대되었는데요. 충격적인 것은, 그날의 사건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조사 결과, 두산전자가 90년 10월부터 페놀이 다량 함유된 악성 폐수 325톤을 무단 방류해 온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어요.
이 사건은 단순 수돗물 악취소동으로 넘어갈 뻔했으나, KBS에서 특종으로 보도되며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어요. 특종을 취재한 사람은 바로 당시 KBS 대구방송총국 기자였던 류희림 기자(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였습니다. 당시엔 상수도 정화 시스템이 낙후되어 있어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는 류의 신고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페놀 사건 때는 평소와 달리 제보와 항의 전화가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에, 결국 취재팀이 현장에 나가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환경청 출입 기자였던 류 기자님은 페놀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잘 알고 있었기에, 원인이 페놀임이 밝혀지자마자 사안의 심각성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낮 뉴스부터 단독 특종을 내보낼 수 있었어요. 해당 페놀 사건의 특종 보도로 류희림 기자님은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특종상과 KBS 보도 금상을 수상하셨다고 합니다.
✔ 사건이 가지는 의의
먼저 들고 일어난 것은 환경단체였습니다. 사건이 한창이던 3월 29일, 환경단체들은 두산전자가 속한 두산그룹의 오비(OB)맥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였어요. 분노한 국민들도 함께 참여했죠. 이로 인해 두산그룹의 주요 상품 매출액이 총 1천억 원 이상 감소했으며, 당시 업계 1위였던 OB맥주는 청정암반수를 내세운 후발주자 하이트 맥주에 1위를 내주며 밀려납니다. 이 불매운동은 기업에 시민 여론의 영향력을 각인시켜주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불매운동에서 그친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을 통해, 국민들 전체가 본격적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되었어요. 환경단체, 피해자 그리고 주민들이 연대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해요. 이후 환경운동 연합이 생기고 운동이 대중화되는 등, 현재 환경운동의 모태가 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어요.
91년 당시(1991.03.29.) 동아일보 사설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번 페놀사태에 대한 국민적 응징은 전국 규모라는 점에서, 그리고 해당 공해 기업의 전 제품을 대상으로 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환경운동 사상 최초의 대규모 저항으로 기록될 듯하며 앞으로도 환경보전 시민운동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사건은 법적인 변화 또한 가져왔습니다. 정부는 15조 가량의 예산을 상하수도 시설 개선 등에 투입하며, 관련 업무의 소관부처를 건설부(현 국가교통부)에서 환경처(현 환경부)로 이전했어요. 정수장과 수돗물 생산 관리, 하수도 관리 및 처리 업무를 '시설'보다 '환경' 차원에서 접근하기로 한 셈입니다. 또한 환경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처음으로 제정되고, 공장 설립 시 적용되는 환경 기준이 강화되는 실질적 결과도 낳았습니다.
내부고발이라는 것...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닙니다. 개인이 기업 혹은 국가와 싸운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 과정에서 각종 루머에 시달리며, 주변 사람들과 네티즌들에게 수많은 질타를 받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용기를 내는 사람들 덕분에 사회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어요. <삼토반>의 세 주인공들이 그러했듯이요.
✔ 페이스북이 일부러 갈등을 부추겼다고?
최근 페이스북이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바로 유해 콘텐츠를 일부러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인데요. 이것은 전 페이스북 프로덕트 매니저인 프랜시스 하우건을 통해 폭로되었어요. 그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혐오, 폭력, 가짜뉴스 등의 콘텐츠를 걸러내지 못합니다. 더욱 악의적인 사실은... 페이스북이 이 점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거예요. 해결은 커녕, 오히려 그러한 콘텐츠들이 더 많이 노출되게끔 하고 있어요. 계열사인 인스타그램에서도 유사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는데요. 인스타그램의 콘텐츠들이 10대의 불안감과 자살 충동 등을 부추기는 것을 알면서도, 기업의 이윤을 위해 그 악영향을 그대로 방치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잠깐, 그게 어떻게 이익이 되는데? : 페이스북의 매출 구조를 보면, 광고를 통한 수익의 비중이 98.5%로 압도적입니다. 광고 매출은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서비스에 얼마나 자주 접속하는지에 달려있어요. 광고가 이용자들에게 많이 노출되어야 하니까요. 여기서 콘텐츠가 가진 자극적인 요소들(분노와 혐오, 가짜뉴스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페이스북을 더욱 자주 방문하게 만듭니다. 만약 그러한 자극이 없다면, 반대로 매출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죠.
사실 문제가 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에요. AI의 성능에 대한 잡음은 꾸준히 나오고 있었습니다. 2019년 3월,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 2곳에서 50여 명을 살해한 테러리스트가 자신의 범행 장면을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한 사건이 있었어요. 이를 계기로 페이스북은 업로드되는 콘텐츠들 가운데에서 1인칭 총격 영상을 걸러내려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죠. 당시에도 페이스북의 인공지능은 총격 게임 영상과 세차 동영상을 1인칭 총격 영상으로 오인하고, 닭싸움과 차량 충돌 사고를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정도에 그치는 성능을 보였습니다.
[관련 뉴스] 닭싸움을 교통사고로 분류... '페이스북 AI'는 무용지물?
페이스북은 이러한 논란에 즉시 반박했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페이스북의 사태가 기사화*된 이후로 쭉 주가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사태로 미국 내에서 빅테크 규제에 관한 본격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해요. 페이스북은 그전에도 정치적인 이슈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있어왔거든요. 미국 상원의원들은 IT기업들을 상대로 한 규제를 강화하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개인정보 보호, 반독점법, 온라인상 아동보호, SNS 알고리즘 투명성 문제, 플랫폼 문제 등에 대한 책임 강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어요.
페이스북 관련 논란을 둘러싼 자료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최초 폭로한 페이스북 논란 관련 기사와, 일련의 사건을 잘 정리한 국내의 기사가 있어 먼저 소개드립니다.
제보자였던 프랜시스 하우건은 페이스북을 떠나며 가져온 여러 자료들을 월스트리트 저널에 제공했다고 해요. 해당 기사화 이후, 미국 상원 청문회(Senate Committee on Commerce, Science & Transportation)에 출석하여 관련 증언을 한 영상이 있는데요. 자막 없이 3시간이 넘는 영상입니다만, 혹시 궁금하신 분을 위해 가져와 봤어요. 그가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올린 청문회 개회 성명서를 참고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디핑이 시험삼아 번역기를 돌려봤는데... 내용을 파악하는 데 무리가 없는 것 같아요.)
✔ '땅콩 회항', 흐름을 바꾼 내부 고발자
여러분, 땅콩 회항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벌써 6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해당 사건으로 인해 갑질이란 개념이 본격적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을 정도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이었지요. 재벌 개인의 갑질에서 시작된 논란은, 사건을 은폐하려는 대한항공의 대처로 인하여 더욱 큰 대중의 분노를 야기했습니다.
대한항공 086번 회항 사건이란?
일명 '땅콩 회항'이라 불리는 일이지요. 2014년 12월 5일,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여객기 내부에서 당시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이 객실승무원의 마카다미아 서비스를 문제삼아 항공기를 유턴시켜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기장이 회항하며, 항공기 여정이 총 46분 가량 지연된 사건입니다.
초기 국토부의 조사에서는 '조현아 전 부사장은 욕설을 한 바가 없으며, 부하 직원의 실수에 질책을 한 정도'였다는 대한항공 측의 진술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박창진 전 사무장이 방송사 및 언론 매체를 통해 사건의 전모를 폭로하며 진실이 밝혀졌어요. 대한항공은 사무장을 비롯하여 사건과 관련된 승무원들에게 회사가 원하는 대로 진술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폭로를 통해 사건을 은폐 및 축소하려던 대한항공의 임원과 국토부 조사관이 증거조작으로 문제가 되었어요. 이후 조사과정에서 여러 건의 문자들이 발견되었고, 검찰은 거짓 진술에 참가한 여러 인물들을 기소합니다. 최종적으로 국토부 조사관 1명과 조현아 전 부사장은 실형을 선고받았죠.(다만 이후 조현아 부사장은 항소하여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마무리되나 싶었던 사건... 내부자였던 박창진 전 사무장에게는 끝난 일이 아니었어요. 복직 후 그에게 돌아온 자리는 기존의 사무장 직책이 아닌 신입 승무원의 역할이었습니다. 또한 일상에서도 수많은 사람의 질타를 견뎌야 했어요. 그가 돈과 승진에 대한 야욕으로 인해 내부 사정을 폭로했다는 루머들, 프레임을 씌우는 각종 가짜뉴스, 무분별한 네티즌들의 악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내 익명게시판에도 그를 비방하는 글이 넘쳐났다고 해요. 심지어는 그에게 실제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내부고발자에 대한 법적인 보호의 테두리는 있습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이라는 법률인데요. 해당 법에서는 신고자 신변 보호는 물론이고 공익신고와 관련된 공익신고자의 불법행위도 감면합니다. 발생한 피해에 대한 금전적 보상도 받을 수 있고요. 공익신고사례로 국가 혹은 지자체의 수입이 증대되었다면 최대 30억까지도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고자의 신변이 밝혀졌을 경우, 고발자들은 배신자라는 낙인과 함께 직장내 괴롭힘, 동종업계 취업시 얻게 되는 불이익 등 현실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게 됩니다.
아래는 박창진 전 사무관님이 남겨주신 인터뷰의 한 대목입니다. 함께 읽어봄직한 내용이라, 마무리로 소개해 드릴게요.
우리 사회는 내부고발자를 위태롭다고 생각하고 계속 제거해왔다. 지금도 그렇다. 정이 많아 나를 안타깝게 여기는 분은 많지만 내가 뭔가를 가져가는 순간부터 싫어한다. 사건 직후 회사에서 나를 두고 '그는 1억 연봉자다'라고 말했다. 사실이 아니지만 그래야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설사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건 나쁜 게 아니고 피해를 보았다는 게 중요하지 않나. 갈등을 조장하는 게 잘 먹혀들기 때문에 기득권이 이용하는 것 같다. 내가 더 잘되면 좋겠지만 적어도 더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 안은 죽은 거나 매한가지다. "왜 나대느냐"는 비난의 말이 맞는 건지도 모른다. 생명력을 내 안에서 찾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강구해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참 슬프다.
[박창진, ‘땅콩 회항’ 후 5년의 고통을 말하다] 시사IN 인터뷰 기사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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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적 보호가 있다곤 하나... 박창진 전 사무장님의 사례와 고충들로 미루어 보아, 실제로 잘 보장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삼토반> 속 삼총사가 당당하게 바로 설 수 있었던 장면들이 오롯이 판타지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현실에는 조금 더 실질적인 울타리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