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깊이있는 찍먹을 위한! 영화 소스 디핑입니다.
영화 얘기보다 영화를 핑계로 그 내막에 있는 여러 가지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길 더 좋아하는 괴짜즈 디핑. 지난 주에 이어서 영화 <알라딘>에 대한 소스를 준비했습니다. 에디터 개인 사정으로 발송이 늦어졌어요. 기다리셨을 님, 죄송합니다.
그간 디즈니에서 만든 실사 영화는 기존 애니메이션 원작의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오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말레피센트>를 시작으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특히 오늘의 주제 영화 <알라딘(2019)>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 해석을 가져왔는데요. 디핑에서는 이번 기회에, 조금씩 변화해 온 디즈니의 모습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디즈니 여성 캐릭터의 변화
<알라딘>으로 보는 달라진 디즈니
여자 술탄은 존재했을까
최초의 컬러 애니메이션 영화인 <백설공주>를 시작으로 곧 개봉할 <엔칸토: 마법의 세계>에 오기까지, 디즈니의 시리즈를 대표하는 것은 공주들이었습니다. 90년대 그 주인공들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은 것이 바로 '디즈니 프린세스'라는 라인업이에요. 사실은 팔아먹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긴 한데요... 디즈니 프린세스는 출범 당시 단 3년만에 연간 매출 10억달러(약 1조 1483억원)을 기록했다고 해요. 현재도 전세계 미디어믹스 프랜차이즈 중 매출 순위권에 들고 있을 정도입니다.
1937년 <백설공주>로 시작된 디즈니의 공주 이야기, 시대가 지남에 따라 그리는 모습이 달라져 왔어요. 마침 초창기의 디즈니 프린세스 조합과 이후 추가된 공주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그 모습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초기에 만들어졌던 오리지널 디즈니 프린세스의 멤버는 전통적으로 디즈니 공주 하면 생각나는 캐릭터들입니다. 사진 순서대로 백설공주, 오로라 공주(잠자는 숲속의 공주), 자스민(알라딘), 에리얼(인어공주), 벨(미녀와 야수), 신데렐라로 총 6명인데요. 자스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백인입니다. 자스민도 유럽과 가까운 중동 지역의 인물이고요.
공주들에게 주어지는 이야기는 보통 왕자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혹은 바깥의 세상을 궁금해 하는 정도에서 끝이 나기 마련이었어요. 그들이 겪는 문제는 왕자와의 사랑을 통해 해결이 됩니다.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수동적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여섯명의 공주 중, 벨은 살짝 달라요. <미녀와 야수>는 여자 주인공(벨)이 저주에 걸린 야수의 내면을 발견하고 사랑하여 남자 주인공을 구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전의 작품에서 보통 왕자가 공주를 사랑하여 마법처럼 문제를 해결해 온 것과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줬어요.
점점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디즈니 프린세스에도 기존과는 다른 공주들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사진 속 순서대로 뮬란, 티아나(공주와 개구리), 라푼젤, 모아나, 메리다(메리다와 마법의 숲), 포카혼타스가 디즈니 프린세스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이후 엘사와 안나(겨울왕국)도 디즈니 프린세스에 포함되었고 아직 정식 합류는 하지 않았지만 라야(라야와 마지막 드래곤)도 곧 추가될 것으로 보여요.
자스민 이후 디즈니 프린세스는 인종적으로 다양해졌습니다. 포카혼타스는 인디언 추장의 딸이며 티아나는 최초의 아프리카계 공주였습니다. 인종과 국적이 다양해진 만큼, 프린세스 라인업 가운데 역설적이게도 '공주'가 아닌 캐릭터도 등장했지요. 동양계 캐릭터로 인기있는 뮬란의 경우, 전쟁터에서 활약한 중국의 전쟁영웅입니다. 특히 '메리다'를 기점으로 기존의 공주 서사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하는데요. 메리다가 누구지? 잘 모르실 것 같아서, 디핑이 준비했어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2012년 픽사와 디즈니가 합작한 작품인데요. 자신의 실수로 곰으로 변한 엄마를 되돌리기 위한 메리다 공주의 모험과 성장 이야기입니다. 작품 속 메리다 공주는 다른 공주와 달리 평범한 외모를 지녔으며, 처음으로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 전개를 보여요. 여러모로 기존과 다른 공주를 만들어보려 한 시도였지만, 아쉽게도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만들진 못해 호평을 받진 못했습니다. 과도기에 있는 작품이랄까요.
솔로 타이틀 곡에서도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유튜브 링크로 소개합니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 솔로 타이틀 넘버, 'Touch the Sky' 감상!
명실상부 디즈니의 대표영화가 된 <겨울왕국>은 메리다를 통해 변화한 디즈니의 여성관을 이어갑니다. 가장 큰 변화는 엘사가 처음부터 왕위 계승자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엘사는 결혼을 하지 않고 왕위에 오릅니다. 그런 엘사가 내면의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고, 이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겨울왕국 2>에서도 같은 도식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이후 나온 모아나(폴리네시아 지역 추장의 딸, 이후 지도자가 됨)와 라야(최초의 동남아시아계 공주)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죠. 남자 캐릭터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리더로 진화하는 여주인공의 모험과 성장 이야기를 담은 것이 주요 흐름입니다.
이번 디핑에서는 디즈니 프린세스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었는데요. 범위를 좀 더 확장하여, 디즈니의 여자 주/조연 캐릭터들 전반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이야기하는 칼럼을 소개합니다. [시대별 여성 캐릭터 변화로 알아보는 디즈니 작품 '변천사'] 칼럼 읽기!
✔ 자스민, 변화한 여성상
디즈니의 변화는 실사 영화에서도 볼 수 있어요. <신데렐라(2015)>, <미녀와 야수(2017)>와 같이 기존 내용을 충실히 재현하여 실사 버전으로 옮긴 영화도 있지만, <말레피센트(2014)>와 <크루엘라(2021)>는 기존의 작품에서 조연급으로 묘사되던 여성 악당을 서사가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부활시켰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알라딘>도 디즈니의 새로운 방향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애니메이션 판 <알라딘(1992)>에서, 자스민은 세상 밖을 궁금해하는 전형적인 화초같은 공주로 그려졌어요. 디즈니는 알라딘을 각색하면서 자스민의 이야기를 메인 스토리로 가져왔는데요. 세상을 궁금해하는 것을 넘어서 여자라는 이유로 술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관습에 용기있게 부딪히는 캐릭터로 변화하였어요. 남성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닌, 자신의 문제를 직접 마주하고 해결하려는 주체적인 캐릭터로 바뀐 것이죠. 실사판 리메이크에서 추가된 자스민의 테마곡 Speechless는 폭풍우가 몰아쳐도 침묵하지 않겠다는 자스민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어요. 영화가 흥행한 이유로 화려한 볼거리와 성공적인 실사화를 꼽을 수도 있지만, 영화 개봉 이후 쏟아진 수많은 Speechless 커버와 대중적인 열풍으로 미루어 볼 때... 관객들은 변화한 자스민 캐릭터에도 크게 호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변화한 자스민 캐릭터가 가지는 의미는 주체적 여성상의 등장 외에도 다양하게 읽어볼 수 있습니다. 디핑이 곁들여 소개하려는 것은 바로 저항이라는 키워드예요. 영화 속에서 여성의 저항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그러한 맥락이 현재 한국 여성들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좋은 칼럼이 있어 님께 소개합니다.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여성의 저항, 한국의 저항 영화 <알라딘> 보러가기
✔ 디즈니의 고질병, 화이트워싱
알라딘이 호평을 받았던 것 중 하나, 바로 캐스팅 문제였어요. 그간 할리우드와 디즈니는 유색인종 배역에도 백인을 캐스팅(화이트워싱)하며 큰 비난을 받았는데요. 디즈니는 실사판 <알라딘>을 통해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 뿐 아니라 이와 같은 다문화적 감수성에 있어서도 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알라딘' 배역에는 캐나다 국적을 가진 이집트계 신인 배우 메나 마수드를 영입하였고, '자스민' 캐스팅에는 인도계 어머니를 둔 영국 가수 겸 배우인 나오미 스콧이 발탁되었어요. 말 많았던 '지니'는 흑인 배우인 윌 스미스가 맡게 되었죠. 그 외에도 최대한 중동 지역 출신이나 혈통을 가진 배우들을 캐스팅했습니다. 알라딘에 출연한 백인 배우는 앵무새 이아고의 목소리 역과, 자스민과의 정략혼을 위해 방문한 '안데르스 왕자'역의 빌리 매그너슨 정도였다고 해요.
아마존 프라임에서 제작하는 실사판 <신데렐라> 트레일러!
또한 디즈니에서 만들진 않았지만, 아마존 프라임에서 제작된 <신데렐라> 실사판의 주연은 멕시코-쿠바계의 가수 카밀라 카베요입니다. 주연배우 캐스팅 외에도, 흑인이 요정으로 등장하기도 하며 불편한 드레스 대신 정장을 입어보거나 유리구두가 불편하니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는 설정 또한 등장합니다.
이외에도 2023년 개봉 예정인 <인어공주> 실사판은 인어공주 역에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하며, 실사판 리메이크 최초로 흑인 공주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백설공주> 등 여러 기존 프랜차이즈 작품들이 실사화를 앞두고 있는데요. 과연 디즈니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낼까요?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는 디즈니의 변화하는 감수성을 기대합니다.
<알라딘>과 화이트워싱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던 중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본래 설화 속 알라딘은 중국인이었다는 것인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알라딘은 결국 할리우드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였다고 해요. 그렇다면... 실제 알라딘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요?
[세계일보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알라딘은 중국인? 기사 보러가
<알라딘>을 보고나니 그런 생각이 났습니다. 여성 술탄은 역사적으로 존재했을까?
술탄이란 이슬람 국교 국가에서 군주의 의미로 쓰인 단어입니다. 특히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오스만 제국에서는 정치, 행정, 군사의 최고 권력자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 권위 또한 동시에 가진 지배자였어요. 그 외에도 다양한 국가에서 사용하였습니다.
여성 술탄을 지칭하는 말은 술타나입니다. 역사상 여자 술탄은 전 세계에 약 10명 정도가 존재했다고 해요. 하지만 대부분 권력을 확고히 하지 못하여 정치적으로 희생당했습니다.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초대 술탄은 바로 여성인 '샤자르 알 두르'였습니다. 그녀는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술탄으로 여겨지는데요. 통치자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술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인식과 주변국들과의 정치적인 이유가 맞물려 결국 결혼을 통해 술탄 자리를 남편에게 넘겨주어야만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오스만 제국에는 여성 술탄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술탄의 자리는 아니었으나... 여성들이 긴 시간동안 권력을 가진 시대가 있었는데요. 바로 하세키들의 시대였습니다.
하세키 술탄은 '술탄에게만 속한 자'라는 뜻으로, 술탄의 첩들 중 으뜸에게 주어진 작위였습니다. 본래 오스만 제국에서는 황후를 두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렘의 여자들은 잡혀온 노예들이었으며, 그들이 낳은 아들들은 경쟁을 통해 다른 왕자들을 모두 죽이고 술탄 자리에 올라야 했죠. 하지만 이를 깬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쉴레이만 1세의 황후가 된 휘렘 술탄(록셀라나)입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술탄의 황후 자리에 앉은 인물로, 여성들도 황실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으며 정치적 행사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어요. 그 뒤의 하세키들에게는 휘렘 술탄과 같은 로맨스나 정치적 위치는 주어지지 못하였지만, 자신의 아이를 술탄 자리에 올리며 술탄의 어머니로서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였죠. 마치 기황후, 인수대비, 서태후와 같은 여인들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터키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는데요. <위대한 세기>라는 이름의 대하 서사극으로 시즌 4까지 제작되어(무려 139화나!) 터키 드라마 중 세계적으로 히트친 인기 드라마 라고 해요. 국내에서도 왓챠와 티빙에서 시청 가능하니, 오늘의 디핑 소스로 여성 권력자의 역사에 관심이 생긴 분들이라면 이번 주말, 터키 드라마에 도전해보는건 어떨까요?
여러분은 재스민(jasmine) 혁명을 아시나요? 튀니지에서 일어난 민주화 혁명으로, 튀니지의 국화인 재스민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재스민 혁명은 아랍-아프리카 지역에서 처음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으며 이후 아랍 다른 지역의 민주화운동(아랍의 봄)을 확산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죠. 이름이 같아서인지, 오늘의 주제 영화 <알라딘> 속 변화하는 아그라바를 이끌 자스민의 행보와 겹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알라딘의 실제 이야기에서 자스민 공주의 이름은 '바두르 올바두르'라고 해요. 하지만 이야기가 서구사회로 넘어와 영화화되면서, 영어권에 보다 익숙한 이름인 자스민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자스민이란 이름은 페르시아에서 시작해 아랍과 터키지역으로 퍼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디핑 소스는 여기까지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디핑을 구독해 주세요. 참고로 저희는 뉴스레터도 함께 하고 있답니다.
카카오 뷰를 통해서도 새 글 소식을 받아 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