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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서영 Jan 18. 2023

즐거움의 논리

허무와 의미에 대해서

  허무는 의식의 시간에 찾아온다. 정신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는 잠자코 있다가 조금이라도 의식이 활동하기 시작하면 자리를 깔고 떠나가지 않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라는 고립적이고 특수한 상황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할 일이라곤 생각하는 일밖에 없던 시기에,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의미를 의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처음은 인간관계와 나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었다. 친구들이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다면, 내 모든 인간관계는 쓸모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과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그렇게 될 수 없다면, 내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인가. 생각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깊은 허무에 빠질 수밖에 없었기에,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곧 괴로운 일이 돼버렸다.



  어찌할 줄 몰랐던 내가 가장 처음 시도했던 방법은 단순히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허무가 찾아오기 전에 내가 먼저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나는 나를 생각하게 하는 행동들을 그만뒀다. 책을 읽지 않았고 영화를 보지 않았으며 글도 쓰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우울이 들이닥칠 세면 유튜브를 켜서 단속적인 영상을 보는데 몇 시간을 썼다. 생각하지 않으니 고통도 없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했다. 생각의 단절은 허무뿐만이 아니라 내가 애정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단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나 자신과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취미가 뭐냐는 간단한 질문에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자아 상실이라는 예상치 못한 고통을 앓으면서 생각하지 않는 방법은 실패로 끝났다.



  '허무'가 어떤 것이 쓸모가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이것을 쓸모 있다고 고치는 것에서 두 번째 방법을 시도했다. 이 시기에 내가 주로 쓸모가 없다고 느꼈던 것은 '환상'이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타나는 '환상'들과 거기서 비롯되는 즐거움 말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납득할만한 의미를 찾지 못했다. '환상'이 현실을 투영해서 주는 깨달음의 이득보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도 같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 더 컸다. 결국 환상은 나에게 결코 닿을 수 없는 낭만에 그쳤다. 내 현실이 소설이나 영화 속 환상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비루하다는 사실에서 허무는 커졌고, 나는 환상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르면서 두 번째 시도 또한 실패로 끝났다.



  이처럼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서 내가 고안한 방법들을 무너뜨렸다. 결국 나는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가장 견고한 논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됐다. 마지막으로 찾은 논리는 두 번째 시도의 실패에서 나온 의문에서 출발했다. 어떤 일이 꼭 쓸모가 있어야 할까?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축구' 하나만 생각해봐도, 직접 뛰는 것도 아닌데 경기를 왜 보냐, 선수가 되지도 못하는데 운동을 왜 하냐, 공 하나를 차려고 22명이 90분 동안 뛰어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이런 식의 주장을 끝도 없이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생각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막으며, 공감성을 극도로 결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여기에 제시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재밌으니까.' 더 이상 쓸모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즐거움만으로도 의미를 얻기에 충분함을 우리는 경험으로써 알고 있다. 친구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함께 있는 시간의 즐거움만으로 의미를 얻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 모든 노력은 나의 즐거움에 기반한다. 환상을 경험할 수 없대도 상관없다. 나는 경험할 수 없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즐거움의 논리는 내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일이 없는 한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즐거움에까지 회의감을 느끼기엔 지금 마주하고 있는 삶만으로도 벅찬 현실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즐거움을 최대한 다양하고 깊이 누릴 수 있도록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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