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히드로 다이어리’ 중에서
몇 년간 나에게 공항은,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긴장의 시간이자 배고픔과 피곤함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첫째 아이의 여름방학 시작에 맞추어 한국에 가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나는 금식에 돌입했다. 5살 아이를 한 손에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짐을 들고 2살 아이를 아기띠로 메고 혼자 비행기를 타러 가면서 나는 여러 가지 돌발상황(아기띠에 매달려 있기 싫어 발버둥 치는 둘째라든가, 수속을 위해 줄을 서는 상황에서 첫째가 갑자기 화장실을 가야겠다든가 하는 등등)에 대처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나는 나의 생리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되는 돌발상황은 막아야 했기에 단식을 선택했다. 나의 단식은 비행기에서도 계속된다. 기내식은 물론 가능하면 물도 마시지 않았다. 아이 둘만 남겨두고 화장실을 갈만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굶고 한국에 도착하면 나는 안도했고 기진맥진했다.
알랭드 보통은 공항에서 일주일을 실제로 체류하면서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라는 책을 썼다. 출발부터 게이트 너머에서, 도착에 이르기까지의 공항의 다양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 공항을 찾은 사람들을 만나며 공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적고 있다.
그중 공항에서 나 같이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허둥지둥하며 불안한 얼굴로 있는 엄마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알랭드 보통의 글은 공항이라는 장소에 새로운 시선과 의미를 부여해 주기에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이제는 아이들도 엄마가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기다릴 수 있는 정도로 컸으니 나도 느긋한 마음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며 공항의 이곳저곳을 훑어보며 알랭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터미널 스크린을 보며 공항의 매력이 집중된 것임을 공감할 날이 올 것인가…? 궁금하다.
알랭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히드로 다이어리’ 중에서
터미널에는 곧 하늘로 올라갈 비행기의 여행일정을 알리는 스크린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다. 의도적으로 직공 같은 느낌을 주는 글자체를 사용한 이 스크린처럼 공항의 매력이 집중된 곳은 없다. 이 스크린은 무한하고 직접적인 가능성의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충동적으로 매표구에 다가가, 몇 시간 안에 창에 셔터를 내린 하얀 회반죽 집들 위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외침이 울려 퍼지는 나라, 우리가 전혀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 우리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나라고 떠나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목적지의 세부 정보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초점이 맞지 않은 노스탤지어와 갈망의 이미지들이 흔들리며 떠오르기 시작한다. 텔아비브, 트리폴리, 샹트페테르부르크, 마이애미, 아부다비 경유 무스카트, 알제, 나소 경유 그랜드 케이만……밀실공포증과 정체의 느낌이 닥쳐오는 순간마다 우리가 매달리는 다른 삶에 대한 이 모든 약속들.